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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사물과의 대화'생태적 감수성 회복을 위한 강좌'에서 강연한 내용중 일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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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0월 08일 (일) 00:00:00 [조회수 : 3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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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자연을 최고의 스승이라 했다. 자연은 도를, 도는 하늘을, 하늘은 땅을
가르치고, 땅은 사람을 가르친다. 그러니 최고의 스승은 자연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선생 하면 사람을 떠올린다. 사실 사람한테 배우는 게
편하긴 하다. 돈이 좀 들어 그렇지, 참 쉽다. 자상하게 일러주고, 못 알아들으면 때리기도 하고.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은 크다. 사람인지라
선생들도 아집이 있다. 요놈을 가르쳐야되겠다 하는 마음을 못 버린다. 그게 화근이 된다.
자연한테 배우면 어떨까? 자연한테 배운다는
것은 해 버릇하지 않아서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는 아이들을 네 다섯 살 때부터 학교에 쳐넣고 가르치려 한다. 또 꼭 어딜 가서 학비 내고
선생한테 배워야 공부다 하는 의식이 꽉 차 있다. 자연한테 배우는 건 그렇게 용이한 게 아니다. 사실은 쉬운 것인데 어렵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공짜로 배울 수 있고, 속을 염려도 없다. 자연은 거짓말할 줄을 모른다. 자연은 자연이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아요. 더구나 믿음직스러운
건, 인간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는 거다.
주님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보다도 큰 선생님이 있다. 그건
자연이라고도 하는데, 네가 알아들을 말로 하면 하나님이다. 내가 하나도 내 맘대로 한 이야기는 없다. 전부 그 분한테 듣고 들은 대로 얘기한
거다. 그래 그때부터 사람 손이 가지 않은, 하나의 자연, 즉 물(物)을 통해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보게 됐어요.
한 번은
어느 수녀원에서 모임을 마치고 밤길로 숙소로 가는데 가로등도 안 켜놓고 깜깜해요. 더듬더듬 찾아가다 돌계단에 이르렀죠. 근데 그날 따라 어찌나
소변이 마려운지 마음이 급했고, 어렴풋하게 현관있는 데가 보이잖아요. 그래 가다가 얼마나 오지게 넘어졌는지… 내가 돌을 하나 밟았거든요.
동글동글한 돌에 탁 미끄러지면서 홱 돌아 넘어졌어요. 나중에 방에 들어와보니 바지가 찟어질 정도였고, 허벅지에선 피가 나오는 거에요. 밤새
아파하다가,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나 '도대체 어떤 놈이냐?' 하며 찾아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심문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너 땜에 꽝 넘어져 밤새 아팠다 … 말 좀 해봐라!" 돌맹이가 뭐 말을 합니까? 이때 자연한테 배우려면 성급하면 못 배웁니다.
사람은 누굴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예요. 누가 묻자마자 대답을 하죠. 심하면 묻지않아도 막 얘기해요. 자연은 안 그래요. 될 수 있으면 안 가르쳐
줘요. 될 수 있으면 말 안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들으려면 느긋하게.
"그래 할 말 있으면 해! 미안하지도 않냐? 그렇게 사람을
놀래켜 놓고."
한참 있으니까 "엊저녁에 뭔 일이 있었냐?"
"내가 너 밟아 가지고 넘어졌잖아. 꽝 하고."
"어 그래. 어제 어떤 놈이 날 밟았지. 근데, 내가 밟으라 그랬냐? 난들 어떡하냐. 내가 돌맹인데, 어떤 놈이 밟으니 안 밟힐
재간이 있냐? 내가 생긴 게 이렇게 생겨 가지고 한쪽을 밟아 놓으니 그럴 수밖에 더 있냐. 근데, 그게 너였구나. 내가 너한테 미안해 할 이유가
뭐가 있냐."
아이 기르는 젊은 엄마를 보면, 애가 아장아장 걸어가다 걸려서 꽝 넘어지면 탁 치면서 "땠지, 요놈 나쁜 놈! 왜
우리 애기 넘어지게 해" 해요. 평평한데 가다가 넘어지면 땅 막 치죠. 사람들이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을 벌써 굉장히 빠르게 누군가에게
넘기잖아요. 그게 다 이 '땠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구요.
"니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지, 그렇다고 네 잘못도 아니야."
자연은요. 아주 묘해요. 제 잘못도 아니래요.
"그렇지 않냐? 깜깜한데, 니가 날 봤으면 밟았겠냐?"
"그럼 깜깜한
건 누구 잘못이냐?"
"그거야 밤인데, 깜깜하지." 내 잘못도 아니고, 도대체 누구 탓할 대상도 없는 거에요. 그 돌이 저한테
얘기하는 거에요. 아주 돌이 유식해요.
"중용에 보면, 군자는 '상불원천하고 하불인' 하는지라. 군자는 위로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늘 아래로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느니라. 소인배는 뭔 일이 잘못되면, 위로 하늘을 탓하고,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원망한다. 너는
소인배가 될래 군자가 될래? 굳이 때문에란 말을 꼭 하고 싶다면 이렇게는 해봐. '네가 어제 날 밟고 넘어진 것은, 아직도 니가 안 죽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밤 길을 가다가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죠?
"너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했구나. 고맙다." 이런 식의 대화가 짧은 시간에 오고갑니다. 제가 돌을 통해서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것이지요.
또 한 번은 서울에서 전철을 탔는데, 마침 제 자리 맞은 편 자리에 취객이 가더니 비집고 앉는 거예요.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아주
안색이 안 좋아지다가 참다 못해 일어났죠. 자리 하나 약탈한 거죠. 그리곤 자기 얼굴로 온갖 표정을 다 만드는 거에요. 눈 감고. 제가 넋을
잃고 봤어요. 근데, 이 친구가 갑자기 눈을 탁! 뜨는 거에요. 그러니까 나하고 눈이 딱 마주쳤죠. 내가 얼마나 미안합니까. 지금까지 제가 저를
보고 있었으니 들켰 잖아요. 나도 모르게 착 눈을 내리 깔았죠.
그런데 그 순간 그 얼굴이 저한테 말하는 거에요. 인간의 몸뚱이가
저한테 말을 하는 것이죠. 인간의 몸뚱이만큼 완벽한 자연은 없어요. 이 몸도 인간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어딜 가나 내 몸이 있다는 사실은 어딜
가나 완벽한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는 거에요. 몸한테서만 제대로 배우면 절대로 잘못 살 수가 없어요. 어쨌거나 그 얼굴이 얘기한다.
"재밌냐? 재밌지?"
"난 말이야,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별의 별 인간의 얼굴을 다
만들 수 있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저 눈 할켜 뜨고 간 년 저거, 저것도 내가 만든 얼굴이여. 니가 점잖게 빼고서 아주 도사처럼 쳐다보고
있는데, 네 낯짝도 내가 만든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왜 너 혼자 그렇게 모노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냐?"
"노는 거여."
"왜 노냐.?"
"애들은 놀면서 큰대."
"왜 싸우냐?"
"애들은 싸우면서 큰대."
"그래서 부시하고 라덴이 싸운데냐?"
"아니야 놀면서도 얼마든지 커."
"왜 싸우냐니까, 크느라고 싸운대." "꼭 싸워야 됩니까?"
그러나 싸우면서도 큰다. 애들은 싸우면서도 큰다. 근데
어른은 왜 싸우면서도 못 크나? 안타깝다. 뭐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모든 것에서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를 세상에 보내신, 노자가 말한 자연. 그 분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배운대로 사는 연습을 하는 것에 인생의 의미가 있다.
(인터넷 서핑
중, 기독교환경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가 주최한 '생태적 감수성 회복을 위한
강좌'에서 강연한 것 중 일부를 정수미님이 정리하여 어느 수필 사이트에 올려놓은 것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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