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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십자가 찾기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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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8월 04일 (일) 01:33:54 [조회수 : 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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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십자가를 찾는다. 처음에는 반경이 내가 살던 동네였지만, 조금씩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아마 성에 차지 않아서 일 것이다. 소문난 어린이 학습만화 ‘살아남기’ 혹은 ‘보물찾기’ 시리즈(미래엔 아이세움)처럼 나도 쿠바 아바나에서, 중국의 숭선진에서 심지어 백두산 등산로에서도 십자가를 찾았다.

  십자가를 찾는 이유가 있다. 십자가는 그 자체로 풍성한 생명의 의미를 담은 복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에 살든지 십자가를 빚었고, 그 상징을 경건하게 다룰 줄 알았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흔적이 알려지지 않은 의외의 곳에서도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뜨거운 여름, 한반도와 중국 사이 압록강과 두만강 변의 길을 따라 종주한 일이 있다. 전세 버스로 이동하는 ‘조-중 국경 답사’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백두산을 두 차례 오른 후 산 아래 첫 마을인 숭선진에서 민박을 하였다. 그곳은 두만강 폭이 가장 좁아 북한을 곁에서 지켜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밤늦게 도착한 마을에서 우리 일행을 맞아 준 것은 쏟아지는 별들이고, 마을 한 복판의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였다.

  다음날 새벽, 교회를 찾아갔다. ‘화룡현숭선진교회’로 할머니 두 분이 조용히 기도 중이었다. 아침 식사 전에 민박집 남자에게 교회에 대해 물었더니 “목사는 연변 화룡시에서 주일예배에만 오는데, 일반 사람은 교회에 안다니고 병신, 머저리, 집안일이 안 풀리는 사람들만 다닌다”면서 못마땅해 한다. 교회의 존재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려고 드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정말 예수교회네” 라고 대꾸해 주었다.

  1970년대 중반 크리스찬아카데미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한스 뤼디 웨버 박사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십자가를 찾았다. 당시 급속하게 부흥하던 한국교회가 품고 있는 십자가의 상징성을 보려고 했던 것이 분명하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관심을 만족시킬만한 십자가는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가 쓴 십자가 묵상집 ‘금요일 정오’(On a Friday Noon)에는 한국을 상징할만한 십자가 이미지를 담아내지 못하였다.

  2015년 쿠바를 방문하였다. 당연히 십자가의 상징을 쫒았다. 쿠바 종교의 성물을 한군데 보아둔 상점은 그야말로 쿠바인들의 종교심을 엿볼 수 있는 전시장이었다. 가는 곳마다 진열한 대표적인 기념품은 성모자상인데 이를 ‘까리다 데 꼬브라’(carida de cobra)라고 불렀다. 쿠바에서 발현한 마리아를 의미하는데,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위에는 십자가, 아래에는 배를 탄 세 명의 어부를 형상화하였다. 마치 위기에 처한 인간의 보호자처럼 느껴졌다.

  눈길을 끈 것은 구 시가지 중심광장에서 타로 점을 보던 두 명의 흑인여성이었다. 자판을 펼치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데 점술이 으레 그렇듯이 사람들에게는 관광 상품일 뿐 특별한 기대가 없었다. 다만 두 여성은 쿠바의 토속종교인 산테리아교의 여성 사제처럼 화려하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좌판 앞에 걸어둔 십자가이다. 그것을 흥정해 구입했는데,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십자가를 구할 수 있었다. 금박십자가에 작고 둥근 유리 거울을 촘촘히 박은 것이다. 십자가는 가톨릭 교회가 아프리카의 토속신앙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산테리아교는 노예들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왔는데, 쿠바 가톨릭과 70퍼센트 이상 그 내용을 공유한다고 들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는 사람들은 커다란 철 십자가를 중심으로 돌들로 언덕을 이룬 풍경을 본다. ‘페로의 크루즈’이다. 순례자들은 이곳에 자신을 억누르는 고뇌와 함께 돌을 내버린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의 시울라이 언덕은 5만 여개의 십자가로 숲을 이룬다. 구 소련 당시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공산당식 전제정치에 맞섰던 저항의 현장이었다.

  인도의 십자가는 십자가 사방 끝에 연꽃 봉오리를 형상화한 둥근 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를 도마십자가라고 부른다. 인도 서남부 말라바르 지역에는 사도 도마로부터 복음을 전래받았다는 도마교회가 존재한다. 도마 십자가는 그 안에 인도의 국화인 연꽃을 피워냈다. 연꽃을 배경으로 한 십자가는 중국에서도 발견되는데 주후 635년, 중국에 들어온 경교(네스토리우스교) 기념비석(대진경교유행중국비) 위에 새긴 십자가는 연화대 위에 놓여있다. 옛 도교에서 변신한 홍콩 도풍산 크리스찬센터의 십자가도 연꽃 받침을 한다.

  우리나라의 옛 이름에 담긴 십자가의 존재도 이색적이다. 조선(朝鮮)의 ‘아침 조’(朝)자를 파자풀이하면 ‘십자가(十), 날일(日), 십자가(十), 달월(月)’이다. 낮에도 십자가, 밤에도 십자가, 하루종일 십자가라는 뜻을 품고 있다. 게다가 ‘고울 선’(鮮)의 경우는 물고기(魚, 익투스)와 양(羊, 아뉴스 데이)이 합쳐진 단어다. 그 이름에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이 물씬 품겨난다.

  한스 뤼디 웨버 박사와 동행했던 고 김문환 교수는 “기호가 외부로부터 부여된 의미를 알려준다면, 상징은 그 자체가 생명이 있다... 십자가 연구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을 이해하고 또 상징으로 나타내는 작업들이다”라고 하였다. 본래 교회(바실리카)의 외적 모습은 십자가였다. 지하 묘지를 원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 불멸의 상징성 때문에 십자가마다 세상 곳곳에서 보물을 찾듯 생명의 풍성함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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