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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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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8월 03일 (토) 21:16:49 [조회수 :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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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장 1-3절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가.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

2절,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 본문은 신앙의 ‘초보’(아르케)에 머물러 있지 말고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이다. 신앙에도 기초적인 단계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신앙의 기초가 튼튼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완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튼튼한 기초 위에 온전한 신앙의 집을 지어야 한다.

* 성도의 ‘완전’(텔레이오테스)은 의의 말씀에 익숙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단계에 이른 것을 말한다. 신앙의 어린아이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아페이로스, 익숙한) 못한 자”(히5:13)라고 하였다. 성도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히5:14)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함으로 완전의 본을 보여주셨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히5:7-8)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히12:2)를 바라보고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나. 신앙의 초보에 머무르면 안 된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 성도가 완전한 데로 나아가려면 신앙의 초보적인 단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본문에서는 신앙의 초보를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1-2절)들이라고 하였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필수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초보적인 단계에서 만족하고 머무르면 안 된다.

* 신앙의 초보적인 단계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믿음’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본문 2절에 있는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에서 ‘닦다’(카타발로, 중간태, 놓다)는 신앙생활의 목표를 자신에게 두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서는 기복신앙과 마찬가지로 성도의 완전을 이루지 못한다.

* 성숙한 성도는 자신의 유익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주님을 이끌고 다니다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그의 필요에 따라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초보적 신앙에 머무르면 안 된다.

 

다.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하라.

3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 성도의 완전은 사실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한계성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성도의 완전을 포기하면 안 된다. 본문에서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수동)”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힘쓰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천사처럼 완전하게 될 수는 없지만 성도의 완전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 한다.

*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은혜를 기다리라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은혜를 기다리는 정적주의는 도움이이 되지 않는다. 죤 웨슬리는 예배를 비롯하여 기도회, 금식, 성찬식, 사경회와 같은 은혜의 수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권하였다. 은혜 없이는 완전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하시도록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은혜 주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은혜를 수용하고 순종할 준비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은혜를 허락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온전히 따를 때에 그의 은혜 안에서 완전에 이르게 된다.

 

라. 완전이 약속을 기업으로 받게 한다.

11-12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

* 본문의 말씀이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중도에 탈락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간절히 권면한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다(15절, 창17:1참조)).

* 본문에서 ‘완전’(텔레이오테스)은 히브리어 ‘탐’을 번역한 말이다. 야곱은 ‘조용한’(탐)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완전한’ 또는 ‘고결한’ 사람이라는 뜻이다(창25:27참조). 야곱은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서 형 에서를 제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물려받은 사람이 되었다.

* 노아도 신실한 사람으로서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창6:7). 그는 의인이었으며 당대에 ‘완전한’(타밈)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창6:8).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할 때 그와 그의 식구들은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가운데 큰 영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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