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건치아동 치아 수난사
조진호  |  jino-jo@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9년 07월 06일 (토) 11:16:42 [조회수 : 27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대전시 치과의사 협회에서 주관한 검진에서 저는 전교생 중에서 가장 치아가 예쁘고 튼튼한 건치아동으로 뽑혔습니다. 이빨이 튼튼하다는 이유로 이삼천 명 되는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오히려 창피했던 기억만이 남아 있는데, 그 이빨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것과 치아 때문에 고생하기 시작한 최근에서야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건강한 치아가 얼마나 커다란 복이며,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아 마땅한 영광이었음을 깨닫다니 저는 참 미련한 사람입니다. 

첫 목회지에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아직 낭만주의 시대에 머물러 세상에서 붕 뜬 채로 살았던 전직 음악가가  사람들과 날것의 관계를 맺어나가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서툴렀습니다. 목회지를 옮겨야 하는 시점에서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을 때 목회자가 떠나고 홀로 덩그러니 남은 가난한 동네 지하교회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커지려 하지 말고 높아지려 하지 말고 시냇물처럼, 예수님처럼 생명을 품고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라’고 설교했던 저의 목소리가 양심을 이끌어 결국 그곳으로 부임했습니다.

성탄절을 삼일 앞둔 겨울 날 기대에 찬 마음으로 교회의 문을 처음 열었을 때, 교회 바닥에 온통 물이 차 있었습니다. 1층 하수구가 막혀 건물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온 하숫물이었습니다. 동료 목사님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물을 빼내고 홀로 남아 걸레질을 했습니다. 교회 구석구석을 닦아주며 저는 마음 깊이 회개했습니다. 뭔가 대단한 결정을 한 듯, 속으로 교만하고 지하교회를 들어오기도 전에 내심 얼른 더 좋은 곳으로 키워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저의 마음을 주님은 간파하셨던 것입니다.

“이곳은 나의 몸, 내가 사랑하는 교회란다 먼저 이곳을 사랑하고 닦아 주거라”

그 이후로 여전히 교회는 지하에 있고 성도 수는 늘 그대로이고 때로는 가족끼리만 예배를 드릴 때도 있지만 늘 은혜 가운데 기쁘고 평안하고 뚝심 있는 목회를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영혼의 상태와는 별개로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몸과 마음은 고생이 심했나봅니다. 이가 아파오더니 얼마 가지 않아 이빨 하나가 빠져 버렸습니다. 건치아동의 이빨 하나가 그토록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건치아동이었기에 그것은 단지 이빨 하나가 빠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건치아동의 영광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때마다 혀끝으로 스치는 이빨 사이의 빈 공간은 실패와 원망과 두려움의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내가 얼른 임플란트를 하라고 수차례 강권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우선 그냥 두고 싶었습니다. 그 빈 공간을 때마다 느끼고 싶었습니다. 와신상담의 마음이 들 때도 있었고 때론 훈장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수개월 치 사례비를 이빨 하나에 쓸 염치가 없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빠진 이의 반대쪽 부분이 2년 전 그때처럼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가 더 빠질까 걱정이 되어 최대한 빨리 치과를 찾아가려 하고 있을 때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는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신앙이 깊고 마음이 착한 그 친구는 췌장암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어떤 집사님을 위한 기도를 제게 부탁했습니다.  전화통화를 한 뒤 그 친구 아버지가 치과의사였다는 생각이 올라서 실력 있고 차분한 치과의사를 소개해 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 동네 최원장님 병원은 찾을 때 마다 왠지 죄인이 된 느낌이 들어 불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소개한 치과의사는 본인의 남편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집에서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남세진 원장님은 외할아버지가 목사이셨으며 쌍둥이 형도 목회를 하고 있는 신앙 명문가의 자제였습니다. 환자의 마음과 의술과 의료봉사에만 관심일 두고 사시는 천직 의사였습니다. 친구 남편 앞에서 저의 치부(齒部?)를 보여야 하고 친구의 남편이라는 애매한 관계로 인해 엄살을 부릴 수 없다는 불편함 외에는 모든 것이 만족하고 편안한 치료였습니다. 아팠던 이도 잇몸 치료를 통해 다시금 튼튼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원장님은 제 빠진 이가 있던 자리에 새 이빨을 심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한 마음보다 민망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저 좋은 의사를 만나고 싶어 부탁한 건데 결과적으로 부담을 안겨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부부의 깊은 신앙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감사히 잘 받는 게 도리라 생각하여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서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원장님 부부의 사랑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일찌감치 임플란트를 했더라면 비록 새 이빨이 그 자리에 있다한들 그 자리는 여전히 실패와 원망과 두려움의 자리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원장님 부부의 사랑과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이빨이 심겨졌을 때 그 자리는 기쁨과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신음하던 엘리야를 어루만지신 그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참 섬세하시고 놀라우신 분입니다. 우리 마음의 깊은 생각을 아시고 바로잡아 주시며 마음 깊은 곳 꽁꽁 숨겨둔 아픔과 실패와 두려움의 기억들을 모두 살피시며 어루만지시고 치유해주시는 분입니다. 세월이 가고 목회를 해 나가는 가운데 건치아동의 이빨은 계속해서 수난을 당하겠지요. 그래도 이젠 괜찮습니다. 섬세하신 하나님이 곁에 계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 곁에 있으니 말입니다.

 

조진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