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최재석 칼럼
고인의 영정은 우상인가?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9년 06월 21일 (금) 03:42:26
최종편집 : 2019년 08월 01일 (목) 12:31:35 [조회수 : 3222]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고인의 영정 앞에서 절하는 장로”를 <당당뉴스>에 올렸더니 그것은 우상숭배를 부추기는 글이라고 댓글을 단 분이 있었다.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교회에서는 고인의 영정 앞에서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니 그 앞에서 절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인의 영정은 정말 우상인가?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신으로 경배한 것처럼 어느 대상을 신으로 모시는 것을 말한다. 십계명에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기 말라”고 말한다. 기독교에서 우상 숭배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돌에도 나무에도 혹은 산에도 신이 있다고 믿고 거기에 절했다. 그것은 분명 우상숭배다.

따라서 우상숭배라고 말할 때 우리가 절하며 경배하는 대상을 신으로 생각하느냐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자동차를 산 사람이 자동차 앞에 돼지머리를 놓고 귀신에게 무사운행을 빈다든지, 산행하는 사람들이 연초에 산에 가서 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대상에게 존경을 표하되 그 대상을 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대상에게 절을 하더라도 그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존경하는 스승이나 부모 앞에서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은 단지 그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일 뿐이다.

나는 전에 어느 목사가 중학교 학생들에게 일장기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니까 절대로 일장기에게 절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실화를 <당당뉴스>에서 소개한 일이 있다. 학생들은 목사의 가르침대로 일장기에게 절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그들을 퇴학시켰다. 그런데 그들이 장성했을 때 목사님은 당신이 일장기를 우상으로 보았던 것은 상징을 잘못 이해한 결과였다고 자신의 실수를 실토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에 신사참배가 강요되자 그 우상숭배에 대해서 교회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발했고 일본의 국기에 절하는 것조차 우상숭배로 간주했다. 그러나 일장기는 일본을 상징하는 상징물에 불과하다. 일본 당국자들이 한국인들에게 일장기에게 절하라고 요구한 것은 일본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장기에 절하는 것은 이렇게 정치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을 종교적으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 그 정치적인 일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마치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을 보고 놀라는 격이다. 그 목사님은 뒤늦게야 그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일장기에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면 지금 우리가 애국가를 들으면서 태극기에 대해서 경례하는 것도 우상숭배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태극기는 한국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지 신이 아니기 때문에 태극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장기 앞에서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믿었던 분들은 태극기에 대한 경례도 우상숭배라고 주장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상징과 우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착각이다.

어느 보수 교단에서는 십자가를 우상으로 보고 예배당의 전면에 십자가를 세우지 말라고 지시한 일이 있었다. 정말 십자가가 우상인가?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구속을 마음에 새긴다. 그런데 그 귀중한 기독교의 상징을 우상으로 보다니 그것은 상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저지른 큰 실수였다. 그 지시가 실수였다는 것은 지금 각 교회에서 교회의 첨탑에도 교회 내부에도 십자가를 세우는 데서 드러난다.

한때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초상화는 우상이니 그것을 걸어놓지 말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상이 아니고 상징이다. 우리는 그 사진을 보면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묵상할 뿐 그 사진 자체를 신으로 섬기지 않는다. 기독교인의 가정마다 예수님의 사진을 걸어놓은 때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사진을 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묵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 아닐까?

십자가나 예수님의 사진을 우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것이 개혁자들의 뜻을 따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개혁자들은 성당 안의 성인들의 조형물이나 예수님의 생애를 형상화한 채색유리가 우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들을 철거하라고 했다. 지금 예배당 안에 조형물을 설치하는 교회는 없지만 예배당의 내부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채색유리 장식을 한 교회가 많다.

이것은 교회에서 그런 상징이나 장식이 우상화할 염려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시대를 사는 교인들의 상징에 대한 이해가 개혁주의자들의 시대와는 현격하게 달라졌다. 문학을 외면하던 교회가 문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지금 신학자들이 이야기 신학을 내세우고, 은유신학을 말하고, 기독교의 언어는 상징의 언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교인들의 문학적 소양이 향상되어서 우상과 상징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상징물이 신으로 둔갑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고인의 사진은 단지 상주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상주는 그 사진을 보면서 돌아가신 분의 생전의 삶을 생각하고 그분의 죽음을 애달파한다. 그리고 조문객이 그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행동이다.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사랑에 감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십자가 앞에 엎드릴 수도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고인의 사진에 대해서만은 그것이 우상이라고, 그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문상 때에 고인의 사진 앞에서 절하지 말라는 것은 그것이 전통적인 제사 때에 제사상 앞에서 절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상에게 제사하는 사람들은 조상의 혼백이 그 자리에 와서 음식을 먹는다고, 조상을 잘 모시면 조상이 자손에게 복을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제사상을 정성스럽게 차릴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와 있을 조상의 혼백에게 절한다. 따라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계명에 입각해서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말할 만하다.

그런데 자손들이 제사를 드리면서 절하는 것과 문상객이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사진에 절하는 것은 그 의미가 아주 다르다. 제사에서는 자손들이 그들에게 복을 내려줄 조상의 혼백을 생각하지만, 조문하면서 고인의 혼백이 그에게 복을 내려줄 것을 바라는 조문객은 없다. 복을 내려주는 것은 조상과 자손의 관계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조문은 단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상주를 위로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고인의 혼백이 끼어들지 않는다.

문상객이 고인의 사진을 신격화하지도 않고 그것을 고인의 혼백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사진 앞에서 절한다고 해도 그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조문객에 있어서 고인의 사진은 고인을 나타내는 상징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고인의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일 뿐이다.

제사에서 하는 절과 장례식에서의 절의 차이는 신사참배에서 하는 절과 일장기에게 절하는 것 의 차이와 다르지 않다. 제사나 신사참배에서의 절은 우상숭배지만, 일장기나 고인의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볼 수 없다. 우상숭배는 신의 형상을 만들어 놓거나 대상을 신으로 믿고 그 앞에서 절하는 것인 반면,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에 대한 절은 정치적인 것이고 고인의 사진 앞에서의 절은 단지 죽은 이에 대한 정성어린 애도의 표시일 뿐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고인의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을 금하면서, 고인의 사진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묵념하라고 한다. 그때 묵념은 순국선열에게 묵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행위다. 결국 고인의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과 묵념하는 것은 동작이 다를 뿐 그 취지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하나는 금하고 다른 하나는 허용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가?

국기가 상징이고, 십자가가 상징이고, 예수님의 사진이 상징이듯이, 고인의 사진 역시 우상이 아니고 상징이다.


 

최재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9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3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김경환 (222.100.38.174)
2019-06-21 16:37:54
영정에 절하라고 권고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본문 글에 일장기를 예로 들었는데... 日章旗는 괜찮고 旭日旗는 안 된다는 한국인이 많다. 일장기와 욱일기를 달리 보는 건 한국 특유의 현상일 뿐이고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가 아니다. 일본과 피터지 전쟁을 벌인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 동남아 각국 등은 욱일기에 대해 거부반응이 없다. 심지어 일제시대에 대만계 일본인 자격으로 일본과 함께 손잡고 연합국에 대항한 일본의 식민지였던 자유중국(대만)조차도 욱일기에 대해 거부반응이 없다. 대만과 같은 조건으로 일본천황 휘하에서 연합국에 대항한 한국인만 유일하게 욱일기에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국제사회에 “당신네들도 욱일기를 거부하라!”라고 고래고래 고함치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하켄크로이츠旗는 나치패잔병들이 숨어든 南美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로 거부되고 있다. 하켄크로이츠旗를 공공연하게 게양하면 처벌까지 하는 나라도 있다. 도대체 국제사회가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旗를 차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해하는 한국인이 많겠지만... 하켄크로이츠旗는 독일제3제국의 대표깃발이고 그 휘하에 육군전투기, 해군전투기, 공군전투기 등 엄청나게 많은 하위깃발이 있다. 하켄크로이츠旗를 부정하면 그로부터 파생된 그 휘하의 하위깃발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욱일기는 일장기의 하위깃발이다. 일장기 자체는 존중하면서 그 하위깃발인 海軍旗 격인 욱일기만을 거부하는 건 논리적으로도 모순된다. 거부하려면 하켄크로이츠旗를 거부하듯이 아예 일장기를 거부하자는 캠페인을 벌여야지 일장기는 놔두고 일장기의 아우격인 욱일기만 꼭 집어서 거부하자고 하니 국제사회에서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욱일기 들고 침략전쟁 벌인 일본은 안 되고, 일장기 들고 침략전쟁 벌인 일본은 된다.”는 코미디를 연출하게 된다.

우상숭배 문제도 자칫 잘못 건드리면 “욱일기는 안되고, 일장기는 된다!”라는 식의 코미디를 연출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회로서는 영정 관련하여 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교인들이 궁금해서 물어보면 교회가 답을 내놓아야하니까... 우상숭배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어떤 것은 허용하고 어떤 것은 허용되지 않는가? 하는 지침(교리)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게 집단생활하는 교회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이니까.

영정에 절하다보면 자칫 잘못하면 우상숭배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아예 절하지 않는 게 上策라고 교회는 교인에게 권고해야만 한다. 즉 영정도 우상숭배에 속할 ‘蓋然性’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사 절은 no, 영정 절은 ok" 하는 건 제사 상에도 영정이 있는 데 이는 어쩔 건가? 하는 물음이 또 물음을 낳아 마치 “일장기는 되고, 욱일기는 안 된다”는 식으로 價値가 顚倒될 우려가 있다.

이런 커다란 흐름 속에서 각자가 주위의 눈초리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영정에 절을 한다든지, 절에서 치르는 장례에 참석한 경우 알아서 합장을 한다든지 하는 ‘個別性’에 대해선 너그럽고 열린 마음을 가져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법에는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의 예외가 있는 데 예외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법 원칙이 形骸化될 우려가 있다. 가령 “살인하지 말라!” 라는 원칙이 있는 데 이 원칙은 누구나 따라한다. “전쟁터에서 살인하는 건 괜찮다!”는 예외가 있다. 이 예외는 예외대로 놔두고, 원칙은 원칙대로 두어야지 원칙 자체를 허물면 성경말씀 그 자체도 허물어진다.

원칙은 원칙답게 존재하고, 예외는 예외답게 존재해야지 옳은 것이지 예외가 원칙을 잡아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리플달기
5 4
김상구 (1.254.130.226)
2019-06-21 13:26:40
우상숭배는 사람의 마음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기준이다.
필자는 우상숭배란 절하는 사람이 신이라 생각할 때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결코 사람의 마음으로 우상숭배를 판단하지 않는다. 우상숭배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에 따라 우상숭배자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아무리 거룩하게 만들더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라면 결국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 역사를 보더라도 사사기 시대에 미가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거룩하게 우상을 만들고 난 후에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 주실 줄을 믿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미가가 아무리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거룩하게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우상숭배를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우상숭배의 기준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영정에 절하는 것이 신이라 생각하지 않기에 결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것은 필자의 마음과 생각일 뿐이다. 옛날 고린도교회에서도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마음에 전혀 우상을 섬기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상의 제물을 먹은 사람들이 있었다. 고린도교회에서 뛰어난 지식을 가진 자들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살아계신 신이 없음을 알았기에 우상의 제물을 마음껏 먹었다. 그런데 사도 바울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믿는 자들은 결코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가르치신 이유는 믿는 자들의 몸이 단순히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 된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 된 믿는 자가 성찬도 먹고 우상의 제물도 먹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 하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가 우상과 하나가 되는 것은 곧 간음한 여인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들은 영정 앞에서 절해선 안 된다. 왜냐 하면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은 자에게 절하는 것은 곧 죽은 자와 한 몸이 되는 것으로 하나님께선 여기기 때문이다. 말하는 자들은 죽은 자에게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진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지만 그 말 그대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사진에 불과한 것이다.
필자는 절하는 것이나 묵념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라고 한다. 이것에 대하여 우상이라면 치를 떠는 유대인들이 망자의 무덤을 찾아 모자를 벗고 가슴에 손을 모아 애도하는 것과 오늘날 성도들이 묵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성경에는 절하는 것이 主 앞에 절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고인의 영정 앞에 절하는 것은 주 앞에 절하게 되는 것으로 결코 혼자는 지식을 따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 앞에 권할 일이 절대 아니다.
필자는 영정을 단지 상징물로 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필자와 같이 지식이 있고 순수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이 단순한 사진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까운 예로 북한의 김부자 사진이 우상숭배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또 한국교회의 이단들이 교주와 부인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성도들로 하여금 지극정성으로 섬기도록 하는 것이 우상숭배의 모습이다. 따라서 사진이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우상숭배의 도구로 쓰이는 시기에 죽은 자의 영정이 단순히 사진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필자와는 달리 믿음이 좋지 못하고 지식도 없는 사람들 중에 세상 사람들에게 믿는 자로서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사람들이 하는 핑계와 불과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에서 믿는 자들이 죽은 자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아무리 오래된 유서 깊은 불신자의 가문이라도 지인 중에 믿음의 사람들이 찾아와 영정 앞에 절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문제 삼을 사람들이 없다. 왜냐 하면 믿는 자들은 결코 죽은 자 앞에 절하지 않는 것을 그들은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가 정착된 시기에 굳이 고인을 잃은 유족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영정 앞에 절하는 것이 결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리플달기
5 5
최진영 (222.111.191.155)
2021-09-26 13:03:36
자신의 마음에 달린 일 같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믿지만 절합니다. 장례식장에 가서도 돌아가신 할머니 앞에서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은 일종의 우리나라 고유의 인사입니다. 제가 돌아가신 할머니께 절을 하는 건 할머니를 신적인 존재로 믿는다는 게 아니라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이 그렇기 떄문입니다. 반대로 불상 앞에선 절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칫 우상숭배로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도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 보시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리플달기
0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