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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박경양  |  kmpeace@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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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6월 07일 (금) 01:30:26 [조회수 : 4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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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국제 행복의 날을 맞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하는《세계행복보고서》는 갤럽이 실시하는 월드폴《캔트릴 사다리》조사를 통해 작성됩니다.《캔트릴 사다리》조사는 ①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②건강과 수명 ③약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 ④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⑤국가와 기업의 부패 등 사회청렴도 ⑥약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등 여섯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실시됩니다. 연구자들은 이 여섯 가지 요인이 나라 간 행복 차이의 4분의 3을 설명해준다고 말합니다.
 
조사는 이 여섯 가지 영역에 대해 10단계의 사다리를 설정한 후 “당신은 지금 개인적으로 인생의 사다리에서 몇 번째 계단에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결과 평가는 자신이 사다리의 꼭대기에 해당한다고 답할 경우 10점, 사다리의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한다고 답할 경우 0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사다리의 10단계에 이르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 1단계에 해당하면 최악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또 이 조사에 의하면 스스로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10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계인구의 3%, 중간 정도인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4-9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계 인구의 50%, 스스로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1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계인구의 3%입니다.

지난 3월 20일 국제 행복의 날을 맞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2019 세계행복보고서》가 공개됐습니다.《캔트릴 사다리》조사방법에 따라 15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핀란드였고, 가장 낮은 나라는 남수단이었습니다. 미국, 영역, 독일, 일본, 중국 등 세계경제 강국 중 행복성적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나라는 없습니다. 국가의 경제력과 국민이 느끼는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또 가장 행복한 열 개 나라의 공통점은 약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관대함이 크고, 누구든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는 나라, 즉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한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7위인데 반해 사회적 지원과 지지는 156개국 중 91위, 사회청렴도 100위.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144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종합순위는 지난 해 57위에서 3단계 오른 54위였습니다.

《세계행복보고서》는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소유의 크기나 물질적 풍요 여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세계 27임에도 불구하고 행복 순위는 54위라는 점과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 중 상위권을 차지한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우리가 더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누군가는 너무 많이 소유하고, 누군가는 너무 적게 소유유하는 소득불평등과 사회적 격차, 부실한 사회안전망과 약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관대함의 부족, 공직사회와 기업의 부정과 부패, 특권층의 타락 등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사회적 환경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더 행복한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우리 스스로 약자에 대한 지지와 관대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히 세우고, 부정부패와 타락을 척결하며,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하는 정부를 세우고, 이에 관심하는 이를 국민의 대표로 선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2019 세계행복보고서》가 한국교회에 보내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에 주목합니다. 한국교회가 이 시대에 정작 해야 할 일은 신자를 늘려 교회를 키우는 데 골몰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와 좌파척결 등 사회적 갈등과 분열에 앞장서는 것이 아닙니다. 세습과 성직매매 등 신앙을 물질화하는 것에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등을 통해 이미 실패가 증명된 장로대통령 만들기의 앞잡이로 전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서의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당신이 기뻐하는 단식은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이사야 58:6-7)라고 하셨던 뜻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새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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