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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토디스트’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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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5월 25일 (토) 22:53:10 [조회수 : 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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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광화문의 여름이 무척 달아오른 것이 엊그제 같다. 그가 세월호 천막을 찾아 무기한 금식하던 어느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던 모습 때문에 사람들의 가슴은 더 뜨거워졌다.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보여준 ‘그리스도인다운 의리’에서 꾸밈없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열렬한 환영인파는 복음적 삶에 대한 지지와 공감, 동행하려는 모습일 것이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걸음의 행동에 주목한 이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거침없는 행보에 비해 전임 교황은 지극히 보수적으로 평가받는다. 직전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인데, 그는 생전에 교황의 직위를 현재의 후계자에게 넘겨주었다. 쉽지 않은 결단이다. 교황은 성향이나 스타일과 무관하게 가톨릭교인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기 때문이다.

  이를 실감할 기회가 있었다. 2007년 12월 초, 바티칸을 방문하여 당시 교황이 강론하는 행사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에큐메니칼 순례란 이름으로 한국의 정교회, 천주교, 개신교회가 함께 각 교회의 총본산인 제네바, 로마, 이스탄불을 차례로 방문하던 길이었다.

  매주 목요일에 교황은 바티칸을 방문한 여행자들과 함께 예배드린다. 세계 각국에서 온 참석자들은 교황에게 가까이 다가 가 사진을 찍으려고, 혹은 눈길이라도 마주치려고 앞 다투었다. 그 열기는 웬만한 아이돌 가수 공연장의 진풍경을 방불케 한다. 한국에서 방문한 우리 일행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 행사장의 맨 앞줄에 앉는 호사를 누렸다.

  줄을 잘 선 덕분에 나는 일행 중 선택받아 예배를 마치고 퇴장하는 교황과 악수하고, 간단한 인사말까지 나누게 되었다. 독일인인 베네딕토 교황에게 눈치껏 독일어로 인사했더니 더욱 친밀감을 표시하였다. 그 날, 교황에게 나를 지목하여 소개한 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우리 순례단의 대표격인 한국천주교 광주대교구 김희중 주교는 교황에게 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메토디스트(Methodist)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메토디스트’임을 실감하였다. 다양한 그리스도인 정체성 가운데 ‘메토디스트’라고 불리니 듣기 좋았다. 마치 ‘메토디스트’를 대표한 것과 같은 착각이 들만큼 으쓱하였다. 이어서 방문한 교황청 교리성 장관 발터 카스퍼 추기경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당당히 ‘메토디스트’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2006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감리교대회(WMC)에 참석하여 가톨릭교회와 감리교회가 함께 한 의화교리에 대한 공동선언을 상기하였다.

  나는 오래도록 감리교인이지만 그 정체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무심하였다. 그러다가 로마 여행 중에 비로소 ‘메토디스트’임을 실감한 것이다. 물론 한동안 유럽에 살면서 자신이 어떤 그리스도교회의 신앙과 고백을 지니고 있는지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교단이 크거나 작거나, 뿌리가 깊거나 짧거나 하는 규모의 논리가 아니었다. 정체성에 대한 자각의 문제였고, 이는 저 마다 고유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가 였다.

  과연 ‘메토디스트’라면 그 이름에 걸 맞는 경건, 전통, 사회적 태도가 중요하였다. 감리교인 다움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믿음과 생활이 일치하는 ‘신실(信實)한 사람’일 것이다. 그 신실함은 내적으로 경건하며, 외적으로는 그런 경건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첫 ‘메토디스트’ 존 웨슬리는 그의 철저한 믿음과 삶을 통해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원칙주의자 혹은 규칙쟁이란 뜻의 ‘메토디스트’란 유별난 별명으로 불린 것이다.

  규칙쟁이 존 웨슬리는 ‘교리와 훈련’(Doctrine and Discipline)을 함께 강조하였다. 믿고 있는 그대로 사는 방식이다. 미 연합감리회(UMC)는 이를 웨슬리식으로 살아가기란 ‘세 가지 생활수칙’(Three Simple Rules)으로 요약하고 있다. 1739년, 존 웨슬리가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선택한 처음 감리교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윤리로 살라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 가지 생활규칙’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원리와 다름없다. 바울이 정리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윤리(롬 12-15장)에 대한 요약이기도 하다. ‘첫째, 해를 끼치지 말라(Do No Harm). 둘째, 선을 행하라(Do Good). 셋째, 하나님과 함께 사랑 안에 거하라(Stay in Love with God).’

  2010년에 새 교회를 시작하면서 초대교회 신앙과 개신교회 정신 그리고 존 웨슬리의 메토디스트 유산을 강조하였다. 감리교회를 첫 머리에 앞세우지 않은 까닭은 교파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처음 만든 전도지에 이렇게 적었다. “담임목사는 존 웨슬리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을 지닌 평균치 감리교 목회자입니다.”

  본래 감리교회는 ‘뜨거운 가슴과 정직한 생활로 복음전도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였다. ‘영혼구원과 이웃사랑’을 자전거 앞바퀴와 뒷바퀴로 생각한다. 사실 감리교회만큼 신앙과 인간에 대해 관용과 사랑이 넘치고, 사회 및 역사와 소통하는 신학과 전통을 지닌 이만한 그리스도교 교파를 찾기는 쉽지 않다. 도그마에 갇혀있는 보수적 신앙에 비해 한결 자유롭고, 공동체적이며, 믿음과 행함에 있어서 진보적이다.

  애초에 ‘메토디스트’는 고지식한 경건적 태도 태문에 조롱받던 별명이었지만, 한동안 자랑스러운 명함으로서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이젠 한물간 브랜드 취급을 받는 실정이다. 그런 아쉬움 때문일까? 오늘 존 웨슬리 회심기념주일 만큼은 마치 3.1절이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듯 그렇게 낮은 목소리일망정 변호하고 싶은 미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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