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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일편단심(一片丹心)” (다니엘서 제1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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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5월 12일 (일) 16:46:31 [조회수 :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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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일편단심(一片丹心)” (다니엘서 제1장)

 

0. 다니엘 1장 요약

바벨론의 포로가 된 다니엘은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의 인생궤적과 유사하다.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의 나라는 환경과 상황에 달려 있지 않다. 비록 그들의 현실은 바벨론과 애굽이었지만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경외했고 말씀대로 준행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심으로 마침내 승리했다. 심플한 삶의 원리(경외-준행-동행-승리)를 증거한다.

삶에서 만나는 위기는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다. 고난에는 숨은 뜻이 있다. 고난에서 벗어나기만 구하기보다 고난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닫기를 간구해야 한다. 고난을 모면하고 회피하기보다 하나님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고난 중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을 도우시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신다.

 

 

1. 다니엘의 세 친구들

 

➀ (1절~2절)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 고대국가들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다. 누가 진짜 하나님(세상의 주관자, 삶의 주관자)의 싸움이다. 남유다와 바벨론의 전쟁의 배후에는 유다의 신 ‘여호와 하나님’과 바벨론의 신은 ‘마르둑(벨, 므로닥)’의 싸움이다. 남유다의 왕인 여호야김(여호와께서 일으키신다)과 바벨론의 왕은 느부갓네살(느보가 왕권을 수호한다)이다. 마르둑의 아들 느보가 지키는 왕에 의해서 여호와께서 일으키시는 왕이 굴욕을 당하는 현실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루살렘성전의 기구들이 마르둑의 신전으로 옮겨지는 치욕의 상황이다. 여호야김이 패하고 느부갓네살이 이기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마르둑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처럼 보인다.

▶ 그러나 ‘주께서...붙이시매’ 여호와 하나님이 여전히 역사의 주관자, 삶의 주관자 되심을 증거 한다. 증인들의 삶을 통해 증거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재판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심을 전한다. 이 말씀은 모든 시대와 상황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같은 절망 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변함없는 위로와 믿음을 전한다. 다니엘서는 오늘날 돈이 왕노릇하는 세상에서 물질만능주의(황금만능주의)을 신봉하고 배금주의를 선택하는 현대인들에게 오직 하나님만 하나님 되심,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② (3절~5절)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 오게 하였고...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라”

▶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데려간 이유는 지배권을 드러내기 위한 볼모와 조공이다.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인재등용의 수단이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고’ 학문과 언어는 정신문화의 통제수단이다. ‘진미와 포도주’ 공급은 온 몸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파라오가 이집트 노예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듯 바벨론이 피지배층의 정신과 육체, 곧 삶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③ (6절~7절)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름을 바꾼다. 이름은 존재 자체 곧 정체성이다. 마치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으로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을 한 것과 같다. ‘다니엘’(하나님의 심판)은 ‘벨드사살’(벨이여 영원하라), ‘하나냐’(주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사드락’(월신의 명령), ‘미사엘’(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인가)은 메삭(므로닥과 같은 이가 누구인가), ‘아사랴’(여호와는 돕는 자이시다)는 ‘아벳느고’(마르둑의 아들인 느보의 종)으로 강제개명을 당한다. 다니엘 1장~7장까지 비록 나라와 신분을 빼앗기고 이름을 개명 당하는 현실에서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의 믿음 즉 오로지 한 곳으로 향한, 한 조각의 붉은 마음, 한결같은 변치 않는 참된 마음,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을 전한다. 존재(환경과 상황)가 삶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마음(정신과 영혼)에서 삶이 나온다.

 

 

2. 다니엘의 일편단심(一片丹心)

 

➀ (8절~10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내린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한 것은 ‘떡보다 말씀’ 즉 소유가치보다 존재가치를 선택한 것이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첫 번째 시험과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삶은 어디서 오는가?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오늘날 말씀(언약)보다 떡(물질)을 좇아 살아간다. (잠15:16~17)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다니엘은 눈앞에 물질적인 가치보다 보이지 않지만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선택했다.

▶ (9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피할 길을 내시고 돕는 손길을 보내신다. (창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따라서 삶의 문제와 고난당할 때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한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리라’

 

② (11절~16절) “열흘 후에 그들이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보다 나아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 믿음은 삶으로 증명된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지고 판가름 난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진다. 오늘날 몸에 대한 관심은 지나치게 많지만 마음(영혼)에는 무관심하다. (눅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세례요한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자녀들의 몸보다 마음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심령이 강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 심령은 빈 들(광야)에서 강해진다. 시험이 없는 순탄한 삶을 구하지 말고 시험을 이길 힘을 주소서 기도해야한다.

 

 

3. 다니엘의 최후승리

 

➀ (17절)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 바벨론 왕의 산해진미를 거부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실 뿐만 아니라 지식, 학문, 재주에 명철하게 하셨다. 그 뿐 아니라 특별한 은사 즉 이상과 몽조까지 아는 능력을 부어 주셨다. (눅4:13~14)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가니라.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예수께서는 시험 받으시고 파김치가 되신 것이 아니라 권능을 받으셨다. 시험을 이겨내면 더 큰 성령의 능력을 얻는다.

▶ 하나님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마6:30~3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제자들) 이르노니...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불의한 바벨론 왕도 자기 수하를 위해 먹이고 입히는데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좇는 제자들을 내버려두시겠나? 그 정도 믿음도 없이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할까?

 

➁ (18절~20절)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 아니라”

▶ 하나님께서는 친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무리 중에 빼어나고 탁월하게 하신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쉐마의 정신은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철학이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란 말은 물질, 성공, 명예, 쾌락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라는데 있다.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마음, 성품, 힘을 다하여(100%)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결코 세상에 뒤처지지 않고 빼어나게 하시고 높여 주신다.

 

③ (21절) “다니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 고레스왕 원년이란 회복의 날 곧 구원의 날이다. 고난에는 끝이 있다. 의의최후승리가 있다. (에스라1:1~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아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원하노라’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며 끝까지 견디는 이들에게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의 승리를 누리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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