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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복음적 설교론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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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5월 11일 (토) 22:48:00
최종편집 : 2019년 05월 15일 (수) 19:22:22 [조회수 :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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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사거리에서 야외 복음전도 설교하는 웨슬리

웨슬리의 복음적 설교론

노 종 해(CM리서치)

    존 웨슬리는 1738년5월24일 회심 이후 야외복음 전도(Open Air Preaching)에 나섰다. 복음전도에서 웨슬리가 힘쓴 것은 무엇보다도 설교였다. 웨슬리 자신은 설교를 기뻐하였으며, “나는 진정 설교로 산다”고 하였고, 설교를 전하지 않느니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다.(서신 1776.6.26. John Smith에게) 웨슬리는 영국 교회의 까운과 제복을 입고 단정한 복장으로 성경을 오른손에 들고(일기 1773.9.9.) 열정적으로 확신 가지고 설교하였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1시간 기도와 성경연구로 준비하고 새벽 5시에는 전도설교를 하였다. 왜냐하면 노동자, 주물공장원, 광산광부, 제분소 등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 새벽설교를 “감리교인들의 영광”이라 하였고, 포기할 수 없는 것으로 강조하였다.

    웨슬리는 그의 전도인들에게도 언제나 오전 4시에 기상하여 묵상과 기도에 일부 쓰고, 성경과 실용적인 신학서를 읽을 것을 권하였다.(1745년. 제2회 연회록) 1784년 스트루움에서 새벽집회가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이것을 포기하라 그러면 감리교는 다만 어떤 특정한 의견과 예배형식을 지닌 분파로 전락할 것”이라 하였다. 그는 회심 후 50년 이상 말을 타고 23만 마일 전도여행과 4만2천 번 이상 설교하였다. 웨슬리의 개척전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설교였고, 웨슬리도 설교에 관한 교훈과 권고를 수차 기회 있을 때마다 하였다.

 

   
▲ 웨슬리의 개인 기도실/열정적인 야외 전도설교

1. 웨슬리의 복음 설교 이해

    첫째, 웨슬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심을 믿었다. 즉, 설교자 뒤엔 강력한 영적인 힘이 있음을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력히 열정적으로 설교할 수 있었다. 웨슬리의 일기 어느 곳을 보아도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체험 하였고 믿었음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이끄시는 것임으로 설교 후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었다. 웨슬리는 미쳐 날뛰는 여인을 보고 전도하고픈 강한 욕망을 느꼈고, “나사렛 예수께서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고 말해 주는 동안 여인은 잠잠해지며 그 여인의 눈물이 뺨에 흐르는 것을 보았고, 그는 “저녁에는 폭풍과도 같이 영혼이 불안한 3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때 즉시 평온함을 얻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로 역사하심이 나의 확신이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는 설교에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할 줄 믿고 낙심치 않고 한 곳에서 120변이나 설교하여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둘째, 설교는 복음전도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설교의 목적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영혼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교야말로 복음전도의 우선적인 방법인 것이다. 웨슬리의 멧세지는 죄의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음이었고, 여기에 결심한 사람들은 계속 훈련시키고 믿음으로 살게 하기 위해 “신도회”를 조직케 되었다. 감옥의 죄수들이 변하여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술주정뱅이, 방탕자, 성매매 문란자들, 폭력배, 도둑질 하던 자들 등 갖가지 죄악의 사슬에 얽매인 자들의 변화에 대해서 밝히기도 하였다. 그는 런던주교 깁슨(Gibson)에게 “우리의 단 한가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죄에서 회개로 변화시키는 것, 악마의 종노릇하던 자들을 살아계신 진리의 하나님의 종 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하여서 감리회의 모임이 곳곳에 설립되었다.

 

2. 웨슬리의 복음적 설교란 무엇인가?

    웨슬리의 “복음적 목회자에 관한 소고”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복음적 설교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청중의 실생활과 양심까지 연결해 주지 못하고 단순히 교리적인 설명에 그치는 것을 말한다. 즉 영원한 섭리,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의와 피 등을 설교한다고 복음적 설교가 아니며, 죄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전환시키려고 감미롭고 부드러운 표현을 수천 번 반복해도 복음적 설교가 될 수 없다. 신앙에 의한 의인을 설교한다고 다 복음적 설교일 수 도 없다.

    그러면 복음적 설교란 무엇인가?-복음적 설교는 “이 모든 것을 청중들의 마음 속에 연결시키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와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함께 선포하여 하나님 말씀 전체에 이르러 ”복음전체 곧 의인과 성화를 설교하는 자만이 복음적 목회자이다“고 하였다. 즉 신앙과 생활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적 설교의 표준은 성경이며 웨슬리의 설교는 본문 중심의 설교였다. 이러한 복음적 설교는 4가지 구조를 갖는다. 1744년 제1회 연회 때 웨슬리는 ”초청하고(to invite), 확신시키고(to convince), 그리스도를 전달하고(to offer Christ), 굳게 세워 변화 시키는 것(to built up)이라 하였고, “이것은 어느 설교에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복음적 설교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그 고난 속에 인간의 참여,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과 심판의 두려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초청과 죄에 대한 깊은 참회, 신앙에 의한 칭의와 성화된 새로운 삶에 대한 성서적인 말씀이 선포되고 결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설교자에 대한 나의 가치 판단은 그의 회중이 퇴장할 때, ‘참으로 아름다운 설교이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어떠한 일을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말하는데 있다”하여 회중의 마음과 의지에 연결시켜 결단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 웨슬리 목사는 엡윗교회의 에부친 묘석상에 서서 설교(G.W. Brownlow 그림)

3. 웨슬리의 복음적 설교 방법

    첫째, 설교의 단순성-복음적 설교의 가장 중요한 점은 청중들이 이해하고 알아듣기 쉽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 흔히 쓰이는 평범한 용어로 성경 본문을 따라 설교하는 것이다. 1747년 제4회 연회 때 “설교에 관한 조언”에도, “설교에 쓸 성구는 가장 평이한 것을 택할 것”, “성경 본문에서 떠나 우왕좌왕하지 말고 본문에 집착하여 주목적을 향해 나갈 것”, “언제나 설교제목은 청중에 맞게 할 것”, “너무나 지나치게 비유적이거나 추상적으로 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웨슬리는 “나는 평민을 위해 평범한 진리로 설교한다. 나는 미끈하고 철학적인 사색을 금한다” 하였다. 엘리옷트-빈스(L.E. Elliott-Binns)는 이러한 방법이 종교개혁자들도 실행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루터로 독일 상인들의 용어를 사용하였고 자기 지방에 단순한 민화로 설명하였다고 분석하였다. 웨슬리는 “경험상 어떤 설교가 가장 은혜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청중의 생활에 가장 관계가 깊고 설득력 있고 실제적인 설교”라 하였다.

    둘째, 설교의 열정적 진지성-설교를 통한 구원의 확신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인 진지성은 꼭 필요한 것이다. 웨슬리는 빌링스게이트에서 두 여성이 싸우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세련 된 용어보다 더 강력한 용어가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서 웨슬리는 설교가 청중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대한 암시를 얻었다. 웨슬리의 열정적인 설교 모습은 그가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때든지 상관하지 않고 설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천막에서, 물통, 탁자, 의자, 말 등이건, 산에서 들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외쳤고, 엡윗 마을에서는 부친의 묘지판 위에 서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기회가 좋건 나쁘건 설교를 하였다.(딤후4:2)

    펜즈포드(Pensford)에서 설교할 때 폭도들이 황소를 끌고 와 회중 속에 몰아넣으려고 할 때도 웨슬리는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며 기다리기도 하였고,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샌드게이트(Sandgate)도 찾아가 거리입구에 서서 찬송을 부르고 무슨 일인가 모여든 청중들에게 설교하기도 하였으며, 폭풍우와 험한 길도 밤새도록 말을 타고 가 설교를 하였다. 웨슬리의 일기 어느 곳에서든지 그의 열정과 진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셋째, 설교의 실생활과 깊은 관련성-웨슬리의 설교는 사색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미사여구로 수식 된 아름다운 설교도 아니었다. 웨슬리의 설교는 가정적이어서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와 예화로 이루어졌다. 1743년 제2회 연회 때 “경험상 어떤 설교가 가장 은혜 끼쳤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웨슬리는 “청중의 생활과 관계 깊으며 설득력 있고 실제적인 설교”라 하였다. 이러한 실생활과 관계 된 설교를 하기 위해선 설교자 자신의 생활 속에 믿음으로 사는 체험이 있어야 하며 실천에서 오는 것이다.

 

4. 복음적 설교자의 유의사항

    웨슬리는 설교자의 자세에 대해 중요시 하였고 이에 대한 실제적인 권고를 하였다. 그는 1749년 “믿음과 몸짓에 관한 지침”(Directions Concerning Pronunciation and Gesture)을 발행하였다. 그는 어렵지 않고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들리게 말하고 쉽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부산한 태도, 쉰소리, 꾸미는 소리, 우는 소리 등의 오류를 피하라고 권고하였다. 또한 능력 부족을 몸짓으로 보상하려는 풍차적인 설교자들(Windmill preachers)을 피하고 품위 있는 자세를 지니도록 권고하였다.

    1747년 제4회 연회에서 “설교에 관하여 유익한 조언에 대한 물음에 대해, 1) 일정한 시간에 설교를 하고 그치라. 2) 자작 찬송을 부르지 말라. 3) 교중 앞에서 몸가짐을 근엄하게 하고 무겁게 그리고 엄숙하기를 힘쓰라. 4) 설교에 쓸 성구는 가장 평이한 것을 택하라. 5) 성경본문을 떠나 우왕좌왕하지 말고 본문에 집착하여 주목적을 향해 나가라. 6) 언제나 설교제목은 청주에 맞게 하라. 7) 너무 지나치고 비유적이나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라. 8) 몸가짐이나 발음에 거북스럽거나 부자연한 점이 없도록 주의하라. 9) 서로 사이에 결점이 발견하는 대로 충고하여 주라 하였다. 즉 이를 요약하면 시간엄수, 단순 평이하게 설교할 것, 신중한 자세를 지닐 것, 서로 충고하여 줄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웨슬리는 설교 후에 헤어지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소멸되지 않고 사탄의 역사함을 막기 위하여 설교 후에 조용히 말없이 흩어질 것을 특히 권하였다. 1759년8월30일 일기에 보면 교회에서 설교하는데 많이는 모였으나 설교 후 대단히 소란하고 조급한 사람들뿐임을 보고 설교 후의 태도에 대하여 2가지 사항을 주의시켰다. 즉 “첫째는 설교 끝난 후 마치 곰이 우리 안에서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싸다니며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것은 별로 신사다운 행동이 아니라는 것, 둘째로 설교가 끝나자마자 무리를 지어 예배당을 찻집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예절이다”고 권하고, “나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빠르고 조용하게 돌아갈 것을 바라고 있었다”라 하였으며, 이를 시정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고 썼다. 웨슬리는 설교 후 조용히 회중 가운데로 걸어 나가 흩어져 가는 것을 늘 보곤 하였다.

    웨슬리는 설교자가 늘 부지런히 준비하고 연구해야 할 것을 권고하였다. 웨슬리는 설교의 효과를 얻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설교자의 준비와 연구였다. 웨슬리는 설교문을 준비하여 설교하였으며, 인쇄하여 전도지와 초청 문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웨슬리는 설교자가 단순히 열열 할 것을 요구치 않았다. “오랫동안 설교에서 얻어진 나의 판단은 더욱 더 영향력 있는 설교가 될 때까지 설교하는 것이나 나는 적당히 설교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였고, 연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설교는 그 이상 성장치 못합니다. 그것은 2년 전과 꼭 같습니다. 깊이 없이 행해질 뿐입니다. 다양성도 없고 사상의 체계도 없습니다. 당신이 좋건 싫건 매일 독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모든 말들은 만담뿐이 될 것입니다.”고 충고하였다. 실제로 웨슬리 자신도 틈만 있으며 독서와 연구 하였고 말을 타고 전도여행하면서도 말고삐를 느슨하게 하고 독서를 하고 숙소에서 쉽 때 독후감을 쓰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전도자들이 읽어야할 도서목록을 작성하여 꼭 읽도록 권하며 확인키도 하였다.(rch)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내 은혜로우신 하나님 날도와 주시고, 그 크신 영광 널리 펴 다 알게 하소서.
내 주의 귀한 이름이 날 위로 하시고, 이 귀에 음악 같으니 참 희락 되도다.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 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써 곧 정케 하셨네. 아멘.

-웨슬리의 감리회 찬송-“만입이 내게 있으면”(O for a thousand tongues to sing)-

 

   
▲ 웨슬리의 주거지 거리에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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