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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로 돈 벌 생각 마라” (에스겔 44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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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3월 31일 (일) 23:13:46
최종편집 : 2019년 03월 31일 (일) 23:14:36 [조회수 :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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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로 돈 벌 생각 마라” (에스겔 44장)

 

0. 에스겔 44장 요약

 

에스겔 44장은 하나님이 들어오신 동편 문에 대한 출입제한으로 시작된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와 바벨탑사건처럼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철저하게 구별하고 있다. 속도제한이 운전자의 안전운행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한계 곧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실존을 아는 것은 에덴의 조건, 곧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이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예배의 타락이었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에 달려있다. 제사장에게 엄격한 자격을 요구하시는 까닭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가 바로 예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에게 본래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책무가 있음을 밝히며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제사장은 목회로 돈 벌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예배자는 제사장이 고유에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마땅히 힘써야 한다.

 

 

1.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리

 

➀ (1절~3절)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찌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찌니라’

▶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 문을 통해 성소에 임재하신 후에 문은 폐쇄 되고 ‘아무 사람도’ 출입하지 못하게 제한되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은 하나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곧 인간의 한계를 증거 한다.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선악과 사건(창3:5)과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려했던’ 바벨탑 사건(창11:4)은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 노릇하려는 인간의 교만으로 인한 실낙원의 근본원인을 고발한다. 속도제한의 목적이 운전자의 안전운행에 있는 것처럼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을 구분하는 지혜가 행복한 삶의 조건임을 증거 한다. 3절 ‘왕인 까닭에’는 왕에 대한 예외규정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권세자조차도 하나님의 문으로는 출입할 수 없음을 나타내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➁ (4절~5절)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가 말하는바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

▶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시기로’ 제사장이며 대언자인 에스겔조차 출입제한 규정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인간이 취할 마땅한 자세다. ‘전심으로 주목하여 전심으로 주의하고’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예배자인 인간의 관계 곧 에스겔 성전이 전하는 메시지는 참고사항이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전심으로 주목해야만 하는 생사가 달린 필수사항임을 경계한다.

 

 

2. 레위인의 패역

 

➀ (6절~9절)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 이스라엘의 타락은 예배의 타락이었고 예배의 타락은 성전과 그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타락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에서 범한 추악하고 역겨운 짓을 세 가지로 기록한다. (7절)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을 성소에 들인 것, (8절)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한 것, (9절)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한 것 등이다. (막11: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누구나 성소에 들어갈 길이 열려있지만 아무나 성소의 일을 감당할 순 없다. 자기부인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무자격자들에 의해 예배가 타락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예배를 안 드린 것이 아니다. 온전하고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➁ (10절~11절)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 (출32:1~4)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의 우상은 백성들의 강요로 시작되었다. (출32:21~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아론은 우상숭배의 원인을 백성들의 완악함으로 돌려 책임을 전가하려 했지만 백성의 타락은 지도자인 제사장의 과실에 있었다. 한국교회의 기복주의와 성장주의는 타락한 제사장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대로 지도자들을 길들이는 타락한 백성들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책임은 백성들을 무분별하게 추종했던 타락한 제사장들에게 있다.

 

③ (12절~14절)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내 성물 곧 지성물을 가까이 못하게 하리니...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 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 레위인들은 본래 성물과 지성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백성들을 견인하지 못한 우상숭배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본래적인 역할은 박탈되고 역할이 강등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회를 주시지만 부르심에 합당하지 못하면 그 책임과 죄과를 면할 수 없다.

 

 

3. 제사장의 자격

 

➀ (15절)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

▶ 고위공직자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요구되는 이유와 제사장의 철저한 자격을 강조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공정한 국가를 위해 공정한 관리의 등용이 요구되는 것처럼 거룩한 성전의 회복은 거룩한 제사장들의 출현에 달려있다. 제사장의 자격을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는 ‘예배’다. 예배의 회복은 제사장들에게서 시작된다. 사람(제사장)이 아니라 역할(예배)의 중요성이다. 제사장은 세속적인 권위나 특권이 아니라 고유한 역할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막중한 권한과 지위를 행사하는 고위공직자(공무원)에 대한 철저하고 엄격한 규제와 자격이 요구되는 것처럼 거룩하고 중요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필수다.

 

➁ (16절~19절)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을 것이니...그들이 바깥뜰 백성들에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찌니’

▶ 제사장은 값 비싸고 사치스러운 의복이 아니라 사무엘처럼 세마포 에봇을 입는 청빈함과 백의종군하는 겸비한 태도가 요구된다. 제사장의 예복에 대한 환복의 규례는 성전 안에서 예배의 목적으로만 써야지 자기자랑이나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스톨과 클러지셔츠)

 

③ (20절~27절)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시체를 가까이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 단순히 헤어스타일이 아니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단정함, 절제(포도주), 결혼, 가르치며, 규례대로, 절기를 지킬 것을 강조한다. 솔선수범은 모든 지도자의 기본 자질이다. 제사장은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본보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삶으로 전하는 것만 남는다. 직분이 아니라 직분에 합당한 삶 곧 인격(도덕성)과 역량(자질), 기준(자격)을 요구한다. 겉만 번듯한 함량미달의 거짓선지자를 분별하는 기준은 열매(삶)로 나무를 알 수 있다. 말이 아니라 삶을 보면 숨은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4. 제사장의 생업 – “목사로 돈 벌 생각 하지 마라”

 

➀ ‘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나는 그 산업이 되리라’

▶ 기업이나 산업은 ‘생업’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만 전무하는 제사장의 생계수단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겠다는 약속이다. 앞서 제사장으로써의 지엄한 책무와 더불어 그에 따른 제사장에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증거하고 있다. (고전9:7~14)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사도바울은 사역자들의 의무(헌신)만 강요하고 권리(생활)를 보장하지 않는 야박하고 이기적인 고린도교인들을 향해 전임사역자의 생존권을 역설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인 예배(제사장), 곧 영혼의 문제는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사역자는 필요이상의 것을 구하지 말고 자족해야 하고 공동체는 필요를 채워서 본연의 역할에 전무할 수 있는 책임을 담당해야 한다. 전임사역자의 사례는 교육공무원(교사) 수준이 적절하다.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말고 신앙생활에 초점을 두게 하고 교인들은 영혼의 교사인 목회자의 중요성을 알고 처지와 형편을 자신의 삶처럼 돌아보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➁ (29절~30절)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하라’

▶ 제사장과의 관계에서 복이 온다는 말은 제사장의 특권이 아니라 예배(제사장)가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성공은 삶의 성공으로 연결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말씀은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두라는 데 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리라’는 말씀은 마음(영혼)에서 참된 삶이 나온다는 말이다. 제사장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본뜻은 여기에 있다. 학교생활의 원칙은 교사를 신뢰하고 존중해야 배움이 있고 유익이 있다. 수업시간이 즐겁고 재미있어야 학습능률도 오른다. 제자훈련의 제1원칙 ‘지도자를 신뢰하고 존중하라 그렇지 않으면 별 유익이 없을 것이다’ 교사가 학습의 통로인 것처럼 목사와의 관계가 풍성한 신앙생활의 열쇠라는 의미다.

▶ (눅10:1~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고위공직자(공권력)의 권위가 본래적인 직무에만 국한 되듯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오직 보내신 분의 뜻만을 ‘그대로’ 전달하는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자기 생각과 판단, 사리사욕 내세우면 안 된다. 이것이 전제될 때 비로소 말씀을 전해 듣는 사람은 메신저의 말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말로 경청해야 한다.

 

③ ‘무릇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못할 것이니라’

▶ 유한양행의 설립자인 유일한박사의 조카 유승흠 이사장(한국의료지원재단)은 <유일한 정신의 행로> 라는 책을 소개하며 ‘의사로 돈 벌 생각마라’는 백부의 말씀을 늘 새겼다고 말한다. 재개발지역 건물매입으로 인한 청와대 대변인 사퇴는 일반인과의 구별되는 고위공직자의 엄중한 책무를 보여준다. 정치(공직)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본문이 전하는 제사장에 관한 모든 규례는 한마디로 ‘목회로 돈 벌 생각 말라’는 뜻이다.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생존의 본능이자 생존의 원칙이다. 목회자는 구별하여 감사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 믿음의 헌신으로 드려진 예물로 자족해야 한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자존감을 지키고 눈앞에 이익보다 자부심을 지켜내야 한다.

오늘날 목회현장의 비극은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 있는 제사장들이 판을 치는 까닭에 존중과 신뢰할 만한 목회자를 찾기 힘든 현실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예배)는 뒷전에 두고 장자의 축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에서’와 같은 신앙인들, 본래적인 사명을 망각한 세상일에만 빠져 있는 교인들이 더 많은 현실이다. 사도바울과 데살로니가교인들의 관계처럼 목회자는 교인들을 하나님 앞에 결산할 대상처럼 섬기고, 교인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이루어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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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길 (121.160.212.123)
2019-04-05 22:07:56
데후3장 7절~12절
7.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바울형님 본받고 싶은생각 없습니다
권리주장을 어디까지 할수있는지 모릅니다만 일하지 않고 먹고살아야 합니다. 물론 세금내지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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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김명섭 (182.221.41.246)
2019-04-05 09:22:03
고전9장 3절~14절
3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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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이성화 (175.214.79.146)
2019-04-05 00:21:00
목사로 돈 벌생각은 여전한데
그대들은 제사장도 고위공직자도 아닐지라
교사대우로 살기 원하거든 가서 (공직)교사가 되시길
성경교사는 대학교수들 아니런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바울이 결국 자신을 본받아
생계를 남에게 짐지우지 말라함이 결론임에
결론은 말아먹고
그대들은 어찌하여 하나같이 오늘도 곡식 밟아 떠는 소타령에 낯부끄러운줄 모르는가

어느 집사님 말씀대로 교회에 곡식 밟아 떠는 소가 목사뿐인가

-목회자는 구별하여 감사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 믿음의 헌신으로 드려진 예물로 자족해야 한다-
하나님이 수금하러 내려오나. 구원을 돈으로 사는가 자신들이 필요한것 아닌가
그것이 하나님게 바친것이면 누가 감히 하나님께 바친 돈을 생활비에 갖다 쓰는가

교회에 돈을 내는건 실제적 교회운영을 위해 모금과 연보에 동참하는것으로
다만 모든것을 하나님께하듯 겸허히 행한다는것일뿐이지
목사와 그 처자식까지 생계보장해주자고 하나님 믿고 교회다니는거 아닐세

세금은 일부에 대해서만 신고하고 퇴직금에대한 세금은 십분의 일에 대해서만 내시겠다고 ..

본문 그대로 사회적 노동에서 벗어나 품위나 지키고 있으면 되는 개신교 목회자들이 14만명.
신앙의 삶을 살고 싶으면 온전히 살아야 할것
죽을고비를 넘겨가며 전도하러 다니면서도 천막장사로 자신을 돌본 바울의 삶을 본받을 생각은 1도 없으면서
신.구약을 넘나들고 바울을 들먹이며 오늘도 성도들에게 목사로 생계보장을 요구하는 이런글은 이제 삼가하시길
그렇게 평생을 과도하게 보장할만한 직분도 아니며 한다한들 14만명씩은 필요하지도 않다

우리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이라.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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