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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단이 증거하는 대속의 복음” (에스겔 43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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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3월 24일 (일) 18:13:01 [조회수 :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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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단이 증거하는 대속의 복음” (에스겔 43장)

 

0. 에스겔 43장 요약

에스겔 43장은 동편 문을 통해 성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재하시는 장면을 기록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에스겔서의 대망이다. 하나님의 임재(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내주하심, 함께하심, 주와 동행, 임마누엘)은 신앙의 최고의 경지다.

이어서 성전의 중앙에 위치한 번제단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며 번제단을 정결케 하는 과정을 통해서 번제의 참된 의미를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번제단과 그곳에 행해지는 예식은 복음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하고 있다.

 

 

1. 여호와의 영광

 

➀ (1절~3절)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과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 같기로”

▶ 에스겔은 ‘여호와의 형상의 영광’을 세 가지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고’ ‘성읍을 멸하려 올 때 보던 이상 같고(겔8장)’, ‘그발하숫가에서 보던 이상 같기로(겔1장)’ 세 번째 목도한 하나님의 영광을 ‘~같고’라는 말로 명확하지 않다.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하나님의 영광은 다 볼 수도 다 알 수도 없고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날에는 확실히 보고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은 여호와의 형상의 영광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하려고 애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멸시(무시)하고 하나님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시대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우리 눈에 다 보이지 않아도 확실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있다.

▶ 에스겔이 본 ‘여호와의 형상의 영광’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발 강가에서 본 이상 (겔1장 26절)은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 곧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하심을 증거한다.

둘째, 성읍을 멸하려올 때 본 이상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증거 한다. (겔9장 3절~4절)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떡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겔10장 2절)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위에 흩으라’ 참고적으로 계시록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주관자를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라고 증거 한다.

셋째, 많은 물소리를 내는 하나님의 음성은 그 주위에 네 생물들의 날개소리다. (겔10:20) ‘그것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본바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들인 줄을 내가 아0니라’ 케룹(cherub), 복수형 케루빔(cherubim)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는 천군과 천사들이다. 네 생물의 세부적인 모양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이들의 권위와 속성을 증거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가브리엘(단8:16, 눅1-메신저), 미카엘(단10:13 유1:9-천사장 미카엘), 라파엘(토비트서-치료의 천사)이다.

 

➁ (4절~5절) “성신이 나를 데리고 안 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 여호와의 형상의 영광(보좌와 천군천사)을 본 이들은 네 사람이다.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 사도요한이다. 그 영광을 언제 보았나? 이사야는 앗수르의 침공, 에스겔과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기, 사도요한 로마제국의 박해 곧 극심한 환란과 절망의 순간에 영광의 보좌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통치와 승리를 통한 위로를 주시기 위함이다.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다.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봐야 한다.

 

 

2.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성전은 어디인가?)

 

➀ (6절~9절)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서 거하리라”

▶ 여호와의 영광은 어디에 임재 하시는가? 성전은 특정한 장소나 공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이 성전이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신 이유는 ‘우상숭배’ 곧 행음 때문이었다(겔8장) 이와 반대로 다시 임하시는 조건은 정결과 회개다.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께선 성령을 부어주시기도 하지만 성령을 거두시기도 하신다. 성령충만의 비결은 마치 자력처럼 성령을 구하면 성령이 임하고 육체의 소욕을 구하면 성령은 떠나신다. (갈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5:16)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반비례한다.

 

➁ (10절~11절)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 에스겔의 성전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족속들이 뉘우치고 스스로 측량(check) 하기 위함이다. ‘담(세속화), 문지기와 빈방들(합당한 자), 북문(희생제사), 지성소(하나님의 자리), 성소 안나무제단(오직 은혜), 제사장의 방(거룩한 직무) 등을 통해 마치 거울에 비췬 자아를 발견하듯 과연 나는 성전에 합당한 자인가? 나는 주님이 거하는 성전인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신다. 성전에 합당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다. 누가 정결한 사람인가? 안 씻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더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누가 의인인가? 회칠한 무덤처럼 의로운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더러운 죄악을 자백하는 사람이다.

 

 

3. 번제단이 전하는 메시지

 

➀ (13절~17절) “제단의 척수는 이러하니라”

▶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임재 후에 번제단에 관한 말씀이 이어진다. 출애굽기 40장 이후에 레위기 가 이어진다. 여기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하나님과의 동행 곧 성령충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을 번제단이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번제단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곧 예배의 본질을 전한다. 번제단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불살라 드리는 곳이다. 번제단의 의미를 알려면 레위기 1장에 기록된 번제에 대한 규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레위기에 따르면 제사의 형태에 따라 화제, 소제, 거제로 구분되고 내용에 따라 속죄제, 화목제, 속건제로 구분된다. (레1:2-9) 희생제물은 소, 양, 염소, 비둘기, 곡식 등으로 드린다. 반드시 흠 없고 온전한 것으로 잡아야(죽어야)하고 각이 떠지고(쪼개져야) 피가 뿌려져야 한다.

예배자와 제사장의 역할이 구분된다. 예배자가 할 일은 ‘머리에 안수’(그리하면 열납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잡을 것이요’(죽여야)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일’이다. 제사장이 할 일 :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불을 피우고’, ‘뜬각과 머리와 기름,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고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 신학자 우찌무라 간죠는 머리와 기름=지식, 판단, 의지, 내장=마음, 상한 심령, 정강이=실천과 삶으로 해석하며 제사에 바쳐진 제물은 예배자인 우리 자신 삶이라 역설했다.

 

➁ (18절~27절)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는 이러하니...이와 같이 칠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케 하며 봉헌할 것이요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 팔일에와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피를 뿌려서’ 번제단이 먼저 정결하게 봉헌되어야 했다.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를 위해 7일간 속죄제를 통해 정결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 번제단에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며 정결케 하는 수고를 칠일 동안이나 거듭하는 수고를 감당해야만 하나? 번제의 목적은 죄를 씻고(속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인데, 죄의 심각성과 관계의 회복이 이토록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24절)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변질을 상징하는 누룩과 대비되는 소금은 변하지 않는 언약을 뜻한다.

 

 

➂ 예수 그리스도 대속

▶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자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더 이상 7일간 번제단을 정결케 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릴 필요도 없다. 유월절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드려 단 번에 이루셨기 때문이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대속은 공짜가 아니라 예수께서 생을 내걸고 대신 죄 값을 치르신 갚을 수 없는 은혜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무섭고 잔혹한 모습은 우리 죄가 그토록 참혹하고 무서움을 잘 보여준다.

▶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주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완벽하게 씻겨 졌다.(총괄갱신, recapitulation) 진정으로 회개하면 온전하게 용서하신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된다. 우리 죄가 작아서가 아니라 은혜가 크기 때문이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더 이상 자책이나 죄책감에 빠져 죄 짐을 지고 살지 마라.

▶ (요8: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용서 받았으면 용서 받은 자다운 삶이 따라야 한다. 진정한 회개를 했다면 다시는 죄짓지 말아야 한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보배로운 피와 그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만 한다. 새로운 삶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 영화 밀양(벌레이야기)는 기독교가 전하는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타인에게 준 상처와 고통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각오로 진심어린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기독교의 용서는 무조건적 용서가 아니라 뉘우치는 자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는 긍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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