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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거룩한 제사장입니까?” (에스겔 42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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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3월 17일 (일) 21:12:40
최종편집 : 2019년 03월 17일 (일) 21:13:35 [조회수 :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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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거룩한 제사장입니까?” (에스겔 42장)

 

0. 에스겔 42장 요약

에스겔42장은 성소에 있는 ‘제사장의 방’을 기록하며 성경에 등장하는 제사장의 본래적인 역할과 사명은 무엇인지 증거한다. 제사장은 지위와 특권이 아니라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다.

- 다양한 성직제도(감독제, 장로제, 회중제)들의 의미와 차이는 무엇인가?

- 루터가 주장했던 ‘만인사제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무엇인가?

- 한국감리교회에 장로제도가 도입된 역사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제사장의 사명은 성전의 거룩성을 유지하고 지키는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다. 땅의 것, 세속적인 가치가 아니라 하늘의 것,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세속화를 막아내고 교회의 거룩성을 보존하는 사명은 교회의 지도자들인 성직자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과제라는 사실이다. 만인사제설은 이런 차원에서 적용되고 해석해야 마땅하다.

과연 당신은 거룩한 제사장인가?

 

*동영상

 

1. 제사장의 방(Priest Chamber)

 

➀ (1절~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북편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남편 골방 뜰 맞은 편과 남편 건물 맞은 편에서도 방이 둘이 있는데”

 ▶ 성소 옆 북쪽과 남쪽에 있는 제사장의 방을 자세히 기록한다. 제사장은 누구인가?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자,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 책무를 맡기 위해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다. 제사장의 현대적 의미는 예배를 주관하고 수행하는 역할과 영적인 직임에 전무하는 성직자다. 특수한 역할을 전담해 온 전통적인 직제임에 틀림없지만 직무에 따른 기능과 역할일 뿐 권위나 신분이 아니다. 오늘날 마치 중세시대의 교황처럼 교권을 전횡하는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은 공감하지만 성직자체를 부정하고 경멸하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만인사제설의 정신은 성직제도 자체에 대한 무용론이나 모든 사람이 사제(성직자)라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터와 칼빈은 성직 남용은 거부했지만 교회의 직제와 치리를 위한 성직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➁ 교회들의 다양한 직제(감독제, 장로제, 회중제)에 대한 이해

(※ 참고 : 교회론의 변천사 E.G.제이 저 | 주재용 역 | 대한기독교서회 | 2002.03.30.)

▶ 만인사제설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의 정신은 중세의 교황적인 군주제(유일한 중보자, 성경해석권한)에 의한 특권의식을 거부하며 공의회에 의해서 선출된 지도자들(감독과 장로)에 의해 견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학교의 교사와 같은 제사장(사제)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누가 제사장인가, 성직자(사제)의 필요 있음과 필요 없음에 대해서 이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일치된 적이 없다. 프로테스탄트교회들 조차도 교파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주교제(감독제-성직), 장로제(원로제-절충), 회중제(분리주의-없음)로 구분된다.

- 주교제(감독제) : 고교회(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회)와 개신교파 가운데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등이다. 세 가지 형태의 직제에 따라 주교(Bishop : 감독), 사제(Priest : elder pastor), 부제(Deacon : deacon pastor)로 성직자의 직제를 가지고 있으며 평신도의 직분은 없다. * 한국감리교회는 독특하게 평신도 직분(장로,권사,집사)이 존재하는 데 여기에는 특수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41년 일제는 감리교회의 연회를 해산하고 일명 혁신교단(기독교조선감리교단)을 세우고 교직의 명칭과 조직을 일본식 재편했다. 1945년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장로교와 감리교 등 교단을 강제로 통합한다. 감리교회는 해방 후 복흥파(친일)와 재건파(항일) 분열되었다가 1967년 장로제도를 공식화하고 1975년 장로안수도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참고 : 한국감리교 수난 백년사 | 윤춘병 감독 저 |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교육국 | 1988.)

- 장로제(원로제) : 칼빈은 ‘교회의 직제와 질서는 인정했지만 성직남용은 거부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에서 선발된 장로들의 치리 하는 장로제를 이상적인 교회의 직제로 세웠다. 개혁교단, 장로교, 성결교 등으로 성직을 맡는 목사는 장로들 중의 한 명이다. 행정과 목회를 구분하여 ‘치리장로(elder)’와 ‘설교장로(elder)인 목사’로 구분한다. 목사는 장로의 한 사람으로써 특별히 목회의 성직을 수행한다. 목사(설교장로)와 치리장로, 안수집사(예비장로)로 구분된다.

 

- 회중제(독립제) : 일체의 교권을 거부하고 회중들에 의한 개체교회의 평신도 중심의 직제로 운영되는 교회들이다. 성직자 개념이 없기에 평신도의 구분 또한 없다. 미국의 청교도전통, 침례교, 회중교회(무교회주의) 등으로 회중에서 선발된 목사(장로)가 목회를 전담한다. 오늘날에는 신학교에서 전문 목회자를 양성하고 회중들에서 목회자를 선임하는 형태가 혼재되기도 한다.

▶ 신학적 입장에 따라 감독제 교회는 온건적 만인제사장설 이해로 볼 수 있으며 회중제는 급진적 만인제사장설 이해로 볼 수 있다. 장로제는 중도적인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상 완벽하고 이상적인 교회제도는 존재하지 않기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직제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와 사도성의 빛 안에서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한다. 성직자(제사장, 사제, 성직자, 목사)에 대한 교단과 교파 간의 차이와 이해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내용적으로는 ‘하나님의 종(수종자)’이고, 형식적으로는 ‘전임사역자’다. 신분에 의한 특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전무하라는 공동체의 위임과 그에 따른 고유한 책무에 있다.

 

③ (44장 15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에스겔 성전의 모든 방은 비어있다. 제사장의 방도 비어있다. 타락한 자격미달의 제사장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제사장들로 채울 것을 예표한다. “사독의 자손들”, 사독이란 고결한, 의로운 이란 뜻이다. 제사장이라고 다 똑같은 제사장이 아니다. 부르심에 합당하지 못한 종은 직분을 파면하고 쫓아내시고 고결하고 의로운 제사장들로 교체하신다. (왕상2: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삼상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31절)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35절)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2. 거룩한 방

 

➀ (13절-a)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과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 방은 룸이 아니라 챔버(chamer)다. 챔버는 집무실, 사무실, 회의실 즉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공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제사장의 책무는 결코 사리사욕을 내세우는 사적인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 제사장들의 직무공간인 거룩한 방의 용도를 세 가지로 기록한다.

 

➁ (13절-b)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 (겔44:28) “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나는 그 산업이 됨이니라” 제사장(레위인)의 기업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족속의 책무는 제사(예배)에 전무하는 일이다. 레위인(제사장)들은 예배에만 전무하게 위해 특별히 뽑혀졌다. 레위인에게 제사장의 직임을 맡기고 전임하게 한 것은 예배의 중요성과 절박성 때문이다. 구약의 레위인과 안식일의 규례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였다. 신약에서 예수께서 70인을 전임사역자로 파송하시고 사도바울의 전임사역을 위해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섬겼던 것처럼 성도들은 전임사역자의 필요를 채우는 책임있고 전임사역자들은 오직 온전한 성직에 전무하며 사리사욕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문제는 한쪽에서는 배불러서 죽고(타락하고) 한쪽은 배고파서 죽는다.

 

③ (13절-c)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며”

▶ 제사장의 방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라는 점이다. 드려진 제물은 하나님의 것이다. 제사장은 단지 청지기(관리인)일 뿐이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사리사욕을 위해 착복하거나 사유화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것이 과연 제사장들만의 문제인가? 청지기정신은 성직을 전담하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된다.

 

④ (14절)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 제사장이 입는 예복의 목적은 인간적인 자랑과 세속적인 권위 아니다. (막12: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성직자의 스톨은 ‘멍에’다. 성직자의 클러지셔츠는 종(노예, 휘페리테스)을 상징한다. 거룩한 예복(성직과 직분)은 자기를 과시하는 외식의 도구가 아니라 구별된 삶이다. 문제는 제사장의 직책이 아니다. 제사장의 본래적인 사명과 역할을 망각한 것이다. 모든 교회의 직분은 목사답게, 장로답게, 권사답게, 집사답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3. 거룩한 것과 속된 것(교회의 세속화)

 

➀ (15절~20절)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과 광이 오백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 제사장의 방은 거룩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성전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된 이들이 바로 제사장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타락은 성직자(제사장)의 타락이다. 맛을 잃은 소금 같은 한국교회의 회복은 거룩한 제사장들의 출현이다. (눅1:5~6)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말라기시대 타락한 예배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실한 제사장 사가랴가 있었다. 꺼지지 않는 제단의 등불 같은 존재 사가랴를 통해 세례요한이 탄생한다. 엘리의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의 시대에 한나를 통해 사무엘과 같은 신실한 일꾼을 세우신다. 주여 신실한 일꾼을 보내주소서.

 

➁ (막10:42~44)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 예수께서는 누가 크냐는 문제로 갈등하는 사도들에게 세속적인 지도자와는 구별된 지도자상을 요구하신다. 거룩함은 성직자와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된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해선 안 된다. 거룩한 가치(더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한다. 더 빨리(속도), 더 크게(성장), 더 높게(성과), 교회의 목적은 양적인 성장과 외적인 부흥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삶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데 있다. 교회지도자들이 세속적인 부귀와 영광, 인기와 명예, 쾌락과 자랑을 추구하며 사리사욕을 좇아 물욕, 명예욕, 성취욕, 권력욕을 추구하는 등 교회의 세속화는 끔찍한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교회의 세속화가 교회지도자들인 성직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인가? 땅의 것, 썩어질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성직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사실이다. 만인사제설은 이렇게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당신은 과연 거룩한 제사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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