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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눈을 들어 주의 영광을 보라” (에스겔 40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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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3월 02일 (토) 21:30:48 [조회수 :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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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눈을 들어 주의 영광을 보라” (에스겔 40장)

 

0. 에스겔 40장 요약

에스겔 40장에서 48장까지는 에스겔의 최종적인 예언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하게 회복되는 구원의 대망을 기록한다. 그 구체적인 징표가 에스겔이 본 성전의 환상이다. 눈앞에 현실에서는 이스라엘성전이 무너졌지만 에스겔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목도한다.

새 성전의 높고 두터운 담과 크고 높은 문간(관문,GATE) 그리고 북문의 제단은 거룩한 성전의 목적과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누구나’ 주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은유적인 상징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영상

 

1. 에스겔의 성전

➀ (1절~2절) “사로잡힌 지 25년, 예루살렘성 함락 후 14년”

▶ 에스겔이 최종적으로 받은 예언이자 에스겔서의 대망이다. 성전회복에 대한 이상(환상, 비전)이다. 제2차 바벨론 침공으로 여호야김과 함께 포로로 끌려가던 B.C 597년으로부터 25년 후, 제3차 바벨론 침공으로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함락되었던 B.C 586년으로부터 14년 후 곧 예루살렘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파괴된 지 14년이 지난 그날에 받은 비전이다.

 

➁ (3절~4절)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하더라”

▶ 눈앞에 현실은 성전의 파괴인데 에스겔은 극히 높은 산, 놋 같이 빛난 사람, 성읍 형상을 보고 있다. 에스겔의 비전은 한마디로 눈을 들어 주를 보라 곧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라는 말씀이다. 믿음은 안목(시선)이다. 믿음의 눈이란 가치관(무엇이 소중한가)과 세계관(무엇이 세상을 다스리는가)이다. 다시 말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것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믿음의 고백을 뜻한다. 믿음의 눈을 보여주는 실 예는 민수기와 열왕기하에 잘 드러난다.

(민13장33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14장8절~9절)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수아와 갈렙의 눈

(왕하 6장 14절~17절)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엘리사와 사환의 눈

 

➂ 에스겔 성전의 비전이 증거 하는 메시지는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다.

▶ 지금 에스겔이 보고 있는 성전은 보이는 성전(땅) VS 보이지 않는 성전(하늘), 사람의 손 VS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성전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상징이다.

성전의 파괴(멸망)는 우상숭배인한 하나님을 멸시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심(겔8:6)이고 이와 반대로 성전의 회복(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준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동행하심으로 나타난다.(겔43:4)

※ 아래 에스겔 모형도 참조 – 특징 : 정방형, 성전중심, 안뜰, 바깥뜰, 담, 관문(GATE)

 

 

2. 성전 바깥뜰(동영상 참고 : https://youtu.be/SxoA4GmrJ_8)

 

➀ (5절)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이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규빗)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

▶ 담의 두께(3.3m) 뚫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견고함을 나타낸다. 담의 목적을 기록한다. (겔42:20) “그가 이와 같이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척 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범접할 수 없는 영광과 권위를 상징한다.

 

➁ (6절~16절) (6)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며 그 문 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 (7)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앞문이 있으며 (10~11) 문지기방은 좌편 셋 우편 셋 총6개로 그 문통 광이 십척이요 장이 십삼척이다.

(12) 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일척 (13~15) 지붕까지 광(높이)이 이십오척, 바깥 문통에서부터 앞문 현관 앞까지 오십척으로 매우 높고 웅장하다. (16) 창문, 빛으로 감찰

▶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문간(GATE)에 대한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문간은 관문(GATE)이다. 출입국을 철저하게 심사하는 출입국사무소처럼 마치 천국의 관문을 묘사하듯 매우 통과하기 어렵고 까다로움을 증거한다. 천국에 합당한 자만 그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리라 (계21:12~14)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➂ (17절~27절) “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가니...”

▶ 동쪽 문을 통과해서 내부로 들어가서 바깥뜰에 이르렀다. 박석, 30개의 방들, 일곱 층계의 계단(거룩하게 구별), 주목할 점은 동쪽 문간(관문)과 동일한 관문이 동쪽, 북쪽, 남쪽에 각각 세 개가 있다는 것이다. 진행방향은 동문→북문→남문 순으로 진행하며 장(크기)과 광(넓이)을 기록한다.

 

 

3. 성전 안뜰

➀ (28절~37절) “그가 나를 데리고 남문으로 말미암아 안 뜰에 들어가서...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 안뜰은 그 중앙에 성전이 있는 곳이다. 안뜰로 이어지는 문간(관문)도 동일한 모양과 크기로 총 세 개다. 에스겔은 남문→동문→북문 순으로 이동한다. 문마다 독특한 역할이 있는데 이후에 자세히 기록된다. 동문은 왕의 문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가시는 문으로 그 외에는 굳게 닫혀있다. 북문은 아주 특별한 역할을 하는 곳인데 번제와 희생제물이 들려지는 장소다. (34절)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외부에서 바깥뜰 7개+바깥뜰에서 안뜰 8개+안뜰에서 성전까지 10개), 3중 구조의 담, 3층 구조의 계단이다. 성전까지 들어가려면 관문만 통과하는 게 아니라 총25개의 층계를 올라야 한다. 신앙의 성장과 영적인 성숙으로 합당한 자들만 거룩(회개)와 성숙(계단)을 요구한다.

 ▶ 성전정화 (막11: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정결한 자, 준비된 자, 경외하는 자(제사장, 레위인 ; 직분 아니라 합당한 자)를 요구하신다. 성전의 타락은 제사장들의 타락이다. 천국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에게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4. 북문의 기능

➀ (38절~43절) “그 문 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

▶ 북문의 특별한 기능은 그 앞에서 성전에 바쳐진 제물을 드리는 곳이다. 번제물 씻는 방, 번제, 속죄제, 속건제를 드리는 제단, 갈고리에 희생고기가 걸려 있다. 희생제물은 반드시 흠 없는 것, 반드시 죽어야하고 반드시 각이 떠져야 한다. (겔8:3)에 따르면 과거에는 바로 이곳에서 투기의 우상, 가증한 일, 곤충 짐승 태양 우상숭배가 자행되었다. 에스겔의 비전을 통해 이곳에서 희생제사의 회복, 경외=예배, 예배의 타락, 예배의 회복을 증거하고 있다.

 

➁ (44절~47절) “안 문 안 뜰에는 방 둘이 있는데...남향한 이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요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이 쓸 것이라...레위인들 가운데 가까이 수종드는 자”

▶ 제사장의 방은 성전을 지키고 돌보는 제사장들과 제단을 지키고 돌보는 제사장들의 방이다. 성전의 타락은 제사장들의 타락이었다. 제사장의 본문은 하나님의 수종(예배)드는 거룩한 사명이다(노블레스오블리제) 이후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타락한 제사장들을 척결하시고 거룩한 제사장들을 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리사욕과 부정부패, 우상숭배와 타락한 지도자들을 정결하게 하신다.

 

➂ (48절~49절) “그가 나를 데리고 전문 현관에 이르러...”

▶ 에스겔은 북문을 통과해서 안뜰에 위치한 성전현관문까지 들어간다. 성전의 중심부다. 모든 성곽과 바깥뜰, 안뜰의 중심에 성전이 위치하고 있다. 성전은 임재의 상징이다. 성전의 파괴(멸망)는 우상숭배인한 하나님을 멸시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심(겔8:6)이고 이와 반대로 성전의 회복(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준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동행하심으로 나타난다.(겔43:4) 성전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곳인데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시다. (계21:22)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중심, 교회의 머리되심을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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