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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에스겔38, 39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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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2월 24일 (일) 20:43:38
최종편집 : 2019년 02월 24일 (일) 20:45:40 [조회수 :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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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에스겔38, 39장)

 

0. 에스겔 38장, 39장 요약

오늘 38장과 39장은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을 나타내는 에스겔서의 하이라이트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는 이사야의 예언과 일맥상통한다. 33장부터 39장까지를 관통하는 전체적인 메시지는 단 하나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과 나라(경외, 준행, 동행, 승리)는 어떤 대적에게도 다시는 멸망하지 않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시리라는 신실한 약속이다. 에스겔이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시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1) 앗수르제국과 (신)바벨론제국

솔로몬이 죽은 후 B.C 926년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사마리아)로 분열된다. B.C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제국에 의해서 멸망한다. 남유다는 친바벨론정책으로 앗수르에게 정복당하는 것을 모면했지만 앗수르제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해서 무너지면서 B.C 587년 남유다왕국은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멸망하게 된다. 이때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이스라엘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포로로 끌려가던 중에 그발 강가에서 예언을 시작했다.

 

2) 페르시아제국(바사)과 헬레니즘제국(알렉산더제국)

남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제국은 B.C 538년 페르시아제국(바사왕 고레스)에 의해서 멸망당한다.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왕은 포로민들에게 고국으로 귀향할 것과 성전의 재건을 칙령으로 내렸다(에스라1:1) 이때 포로들은 본국으로 돌아와서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두 번째로 예루살렘성전을 수축하게 된다. B.C 338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은 그리스를 통일하고 이어서 이집트와 페르시아까지 정벌해서 세계최대의 영토인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했다. B.C 323년 알렉산더대왕의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헬레니즘제국은 다시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르시아지역의 4개의 제국으로 분열되었다. 이스라엘지역은 B.C 323년부터 프톨레미우스왕국의 식민지가 되고 B.C 198년에는 셀레우코스왕조의 통치를 받게 된다. 시리아에 기반을 둔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크 4세(에피파네스)가 성전에 파멸의 우상(제우스신상)을 세우고 유대인들에게 헬라화정책을 강요하자(단11:31, 12:11) B.C 165년 마카베오가문은 셀레우코스왕국에 반기를 들고 유대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마침내 B.C 152년에 유대 독립국인 하스몬왕조를 세운다.(하누카-봉헌절) 그러나, 다시 B.C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유다를 정복하면서 또 다시 로마제국의 지배아래 놓인다.

 

3) 로마제국

B.C 270년 도시국가 였던 로마는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카르타고와의 포에니전쟁(B.C 264년~146년)을 통해서 로마는 지중해의 유일한 지배자로 떠오른다. 당시 로마는 세 명의 실력자가 다스리는 삼두정치(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케이사르)였으나 케이사르가 정적들을 물리치고 로마의 전 지역을 장악한다. 그가 바로 ‘줄리어스 시저’이다. 줄리어스 시저가 암살당한 후 로마는 또 다시 세 명의 실력자에 의해서 통치되는데 이것이 일명 2차 삼두정치(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이다. 이들 가운데 케이사르의 후계자였던 옥타비아누스는 B.C 27년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 추앙받고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일명, ‘케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로 불리는 로마황제다. 그는 힘과 권력으로 번영과 안정을 누리며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연다. 그가 바로 누가복음에 기록된 ‘가이사 아우구스도’다. 그 후 로마제국은 12명의 황제로 통치가 이어지며 그 가운데 5번째 황제인 네로황제(AD 53년~68년)와 티투스장군, 훗날 도미티안황제(A.D 70년~91년)때 기독교는 엄청난 박해를 겪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요한계시록이 쓰여 졌다. 그로부터 200여년 후 A.D 313년 콘스탄티누스황제는 밀라노칙령을 통해 로마제국의 모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함으로 결과적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다.

 동영상

 

1. 마곡 땅의 곡은 누구인가

① (1절~6절)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 마곡 땅에 있는 곡은 누구인가? 곡은 우두머리라는 뜻인데 마곡 땅의 곡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열방’을 통칭하는 은유(대유)다. 앞장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의 출현을 뜻하는 것과 같다. 그들과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로스, 메섹, 두발 왕, 바사, 구스, 붓, 고멜, 도갈마 족속 등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그 모든 떼’로 통칭되는 모든 민족들로 구성된 대제국을 뜻한다.

 

② (계시록17장 9절~12절)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일곱 산과 일곱 왕은 일곱이란 모든 대적을 통칭한다. ‘다섯은 망하였고’(애굽, 앗수르, 바벨론, 바사, 헬라), ‘하나는 있고’(로마제국),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또 다른 영적인 대적 통칭)

▶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해 남북분열을 거쳐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무너졌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은 바사왕 고레스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으로 2차 예루살렘성전(스룹바벨성전)을 재건했으나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타락했다.(말라기)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헬라제국의 셀레우코스왕조에 의해서 성전에 제우스신상이 세워진다. 마카비독립전쟁으로 하스몬왕조시대(B.C 167년~B.C 63년)를 열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멸망한다. 민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분봉왕 헤롯에 의해서 재건된 헤롯성전은 B.C 20년경에 착공하여 A.D 63년경에 완공 되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성전이다. 헤롯성전은 A.D 70년경 로마제국에 침공(티투스장군, 훗날 도미티안황제)에 의해서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무너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곡 땅의 곡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성전을 무너뜨렸던 제국들의 침략을 넘어서 믿었던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모든 시대와 상황에 해당된다. 삶에서 경험하는 절망의 순간 곧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과 같은 위기를 의미한다. 실패와 질병, 사고와 죽음의 문제 앞에서 모든 것이 끝장난 것과 같은 절망의 순간이다. 바벨론에 의한 멸망처럼 우상숭배의 죄악에 대한 심판과 헬라제국의 공격처럼 숭고한 신앙을 지키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환란으로 구별되지만 동일한 목적이 있다.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인도하시며 마침내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2. 두려워하지 말라

① (7절~13절)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니라...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라”

▶ ‘그날’은 언제인가? 그날은 과거, 미래, 현재 모든 시간과 상황에 해당된다. ‘과거적인 종말’은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당한 환란의 날(예루살렘성전파괴)이다. ‘미래적인 종말’은 세상과 인생의 마지막 날인 죽음이다. ‘현재적인 종말’은 삶에서 만나는 위기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이다. 과거, 미래, 현재 모양은 다르지만 이 모든 종말의 순간에 심판의 양면성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믿음의 사람에게 그날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 곧 구원의 날이라는 사실이다.(노아의 홍수)

 

② (7절)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촉구하는 메시지는 위기의 순간에 절망의 순간에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두려워하지 않는다(담대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염려하지 않고 기도한다(삶의 주관자. 힘과 지혜와 능력) 둘째, 낙심하지 않는다(포기하지 않는다, 나의 능력이 끝장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인내한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희일비 안하고 기다린다)

3) 의의 최후승리를 믿는다(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믿기에 마침내 나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다. 최후에 웃는 얼굴이 되게 하신다.)

 

 

3. 경외-준행-동행-승리

① (21절~24절) “내가 내 영광을 열국 중에 나타내어 열국으로 나의 행한 심판과 내가 그 위에 나타낸 권능을 보게 하리니...그 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줄 알겠고”

▶ 이스라엘의 멸망과 심판은 경외하지 않는 죄로 인해 벌어진 것이다. 이와 반대로 회복과 구원은 경외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 바로 경외다. 반대말은 무시와 멸시다. 하나님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의 말씀에 준행하는 것이다. 경외하며 준행하는 이들과 동행하신다. (경외-준행-동행-승리) 경외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

 

② (시편37편23절~24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음은 여호와께서 손을 붙드심이로다”

▶ 인간은 삶의 위기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마곡 땅의 곡과 같은 삶의 문제 앞에 너무 연약하고 감당할 수 없는 방해도 많다. 번지점프의 줄처럼 내가 붙잡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는 거다. 이걸 믿는 믿음이다.

 

③ (로마서 8장 31절~39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대적이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마침내 승리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가에 달려있다. (경외-준행-동행-승리)

 

 

4. 긍휼로 부어주시는 믿음

① (25절)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찌라”

▶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어떻게 갖게 되는가? 나의 공로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심으로 구원하신다. 경외하는 믿음은 언제 주시나? 삶에서 만나는 해결할 수 없는 환란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받게 된다. 고난 중에 원망하고 낙심할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구해야한다. 환란은 그것이 죄악으로 인한 심판이든 의를 위한 핍박이든 알 수 없는 고난이든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때, 경외하는 믿음을 받을 때다.

 

② (26절~29절)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거하고 두렵게 할 자가 없게 될 때에 부끄러움을 품고 내게 범한 죄를 뉘우치리니...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바치게 하신 시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창세기를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아브라함은 99세까지도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믿음이 없었다. 하지만 100세에 불가능한 이삭의 출산을 통해서 비로소 아하~하나님이 삶의 주관자시구나,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절실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죽어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기다린 게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다려주셨다. 그의 믿음은 아브라함이 쟁취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왜 믿음의 사람에게 환란과 시험(마곡 땅의 곡)을 허락하시는가? 경외하는 믿음을 통해서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창세기22장 12절~18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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