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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징검돌'이 되고 싶습니다.
정성학  |  21bib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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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2월 05일 (화) 23:49:37
최종편집 : 2019년 02월 05일 (화) 23:49:49 [조회수 : 3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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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는 강 이쪽에서 강 건너편으로 가는 이들이 하나씩 딛고 강을 건너는데 놓거나, 물이 많이 고여 있는 곳에 드문드문 놓아 둔 돌멩이를 일컫습니다. 이곳에 놓은 돌을 <징검돌>이라고 부릅니다. 이 돌은 원시 시회에 아직도 다리가 일반화되지 않던 시절에 강이나 늪지대를 건너가는 중요한 길이었습니다. 이 징검다리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겨우 두 자(60cm) 정도에서부터 이보다 더 큰 규격도 있습니다. 그것은 강의 넓이나 물의 깊이에 따라 탈라질 수 있습니다.

이 징검다리가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그 돌이나 <뗏장-주로 얕은 늪지대나 물이 고인 웅덩이를 지날 때는 굳이 돌아 아니라 떼를 쌓아두어도 됨>이 없으면 누구도 그 곳을 건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징검다리에 쓰이는 징검돌은 반드시 커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잘 생길 이유는 더욱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돌은 단단하고, 반듯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징검다리의 필수 조건은 있어야 할 곳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늪이나 강을 건너기 원하는 이들이 이걸 딛고 건널 수 있습니다. 징검다리가 뒤뚱거리는 바람에 몸의 중심을 잃고 차가운 물에 빠져 옷을 버리거나 생쥐처럼 망신을 한 경험들은 누구나 한 두 번씩 있을 것입니다. 징검다리는 놓기 어렵거나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역할이나 중요도는 웬만한 다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징검다리는 봄가을로 마을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지반이 약해진 곳은 없는지를 살펴 징검돌을 다시 안전하게 놓곤 합니다.

우리나라에 한동안 유행하던 <열린 예배>를 아실 것입니다. 주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정장은 물론 머리며 신발이며 자유롭게 물들이거나 기르고 아무렇게나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예배는 사실 복음을 멀리하던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은총의 수단입니다. 마약을 하던 이들, 온갖 색깔의 머리나 노숙자들이 어우러져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는 감동적인 예배 장면을 목격하셨을 것입니다. 이 예배가 한국에 건너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열린 예배>라는 이름으로 드리던 이 예배는 너도 나도 흉내 내며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그 안에서 복음을 듣고 체험하고 고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양, 특히 미국은 모든 예배를 그렇게 질서도 예전도 없이 마구잡이로 드리는 줄 오해하게 하는 역기능도 있었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멀쩡하던 머리도 기르고, 각양각색으로 물을 들이고 바지도 찢고. 구두 대신 슬리퍼를 신고 예배하던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배자는 계속 그 곳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이 예배가 <열린 예배>, 혹은 <현대 예배>라 불리며 현대인들은 누구든지 이렇게 모든 예배를 드리며, 마치 그것이 예배의 완전한 모형처럼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열린 예배는 한국교회의 부흥에 끼친 순기능도 엄청나게 많지만 반대로 예배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게 하여 생긴 오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때에 이 예배를 열린 예배라고 부르지 않고 <징검다리 예배>라고 불렀으면 이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는 무서운 복음의 파괴력을 가졌을 것입니다.

예배는 거기가 종점이 아닙니다. 거기가 예배의 마침이 아닙니다. 그가 비록 거리의 부랑아이든지 폭력배이든지 반항아든지 상관없이 누구든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이 그 모습 그대로 나아와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처음 나올 때는 온 몸에 알콜 냄새가 진동하고 그 혈관에 마약 자국이 가득해도 그 예배를 한 번 두 번 참석하며 얼굴 표정도 달라지고 옷차림도 달라지고 마음 자세도 달라져서 깨끗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정성껏 예배하는 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흐트러진 예배의 모습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라는, 그래서 그 예배는 온전한 예배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예배라는 이름, 즉 복음의 사각 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복음을 알도록 임시로 개설된 징검다리 예배라고 불렀으면 그 예배를 통해 징검돌 하나씩을 디디며 그 강을 건널 때에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징검다리는 그렇게 어두운 강을 건너는 한 줄기 빛처럼 서툰 걸음을 지탱해주는 귀중한 돌입니다.

험한 세상에 던져진 사회 초년생들이 이렇게 좋은 징검다리를 만나면 그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가고 바르게 설 것입니다. 바른 징검다리가 흔들려 그를 믿고 디뎠던 곳이 무너지는 바람에, 인생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고 거침들이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저를 딛고 앞으로 나아갈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물론, 분에 넘치는 야무진 꿈인 줄 압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인 줄 알지만 징검다리를 꿈꾸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제가 큰 돌도 아니고 잘 난 돌도 아니지만, 제 자리에 든든히 서 있으면서 징검돌이 되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누구든 저를 딛고 나아갈 수 있고, 누구든 저 때문에 세상을 바로 갈 수 있도록 작은 뗏장이 되고 작은 징검돌이 되어 밟히며 서 있고 싶습니다. 강을 건넌 이들이 징검돌을 기억하겠습니까? 징검돌의 존재가 드러날 일이 있겠습니까? 징검다리는 그를 딛고 건너간 이가 건너편에 도착하는 것을 보는 행복으로 충분합니다.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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