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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라는 토대가 흔들릴 때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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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1월 05일 (토) 01:41:18 [조회수 : 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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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가깝게 모시던 교수님은 시험지를 채점할 때마다 이름과 학번을 적는 부분을 끈으로 묶곤 하셨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학생들과의 친소 관계가 채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어떠한 형태든 편견은 공정한 판단을 가로막는다. 법원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서 있다. 눈을 가린 것은 주관을 배제하겠다는 준엄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떠돈 적이 있다. 1988년에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면서 세상을 향해 외친 말이다. 그의 외침은 우리의 안일을 깨는 쇠북소리였다. 그 때로부터 세상은 얼마나 공정하게 변했나? 안타깝게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힘 있는 이들은 죄를 짓고도 대형 로펌의 도움을 받아 법망을 빠져 나오고, 힘 없는 이들은 법의 조력을 받지 못한 채 죄인으로 규정되곤 한다. 법이 자의적으로 집행되는 일이 잦아지면 법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게 마련이고, 신뢰의 토대가 흔들리는 순간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최근에는 대법관들의 재판 거래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사법 불신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성결법전은 거룩한 삶에 대해 가르치는 중에 재판할 때에 가난한 사람이라 하여 편을 들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사람이라 하여 두둔해서도 안 된다(레19:15)고 말한다. 재판하는 이들이 사사로운 정이나 이해관계에 이끌려 법을 적용한다면 법은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재판관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불의를 미워하시고 뇌물을 받지 않으시고, 치우침이 없으신 하나님이 그들의 심판자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장로교 통합 재판국 위원들은 명성교회의 목사직 승계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일찍이 교단 총회에서 세습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심과 법과 원칙을 따랐다면서 그러한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명성교회는 법적 정당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한국교회는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소탐대실이다.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권력 앞에 굴복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촉의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에 나섰을 때 보급로의 거점인 가정을 지킬 장수로 마속을 파견했다. 길목을 지켜 적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러나 마속은 큰 공을 세울 욕심에 적을 끌어들여 역습을 가하려다가 오히려 장합의 군대에 포위되어 참패를 당했다. 이 일로 인해 제갈량은 군대를 한중으로 퇴각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갈량은 군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아끼던 마속을 울면서 참수했다. 이것이 바로 읍참마속이라는고사의 유래이다. 세상에는 울면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의 토대 위에 세상을 세우셨다고 말한다. 그 토대를 뒤흔드는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 맞서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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