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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 30장)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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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12월 22일 (토) 16:33:38 [조회수 :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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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목사의 말씀학교]

그날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 30장)

 

0. 에스겔 30장 메시지요약

하나님께서 애굽에 심판을 행하시는 진짜 이유는 뭘까? 에스겔은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거듭 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날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날은' 심판의 날이며 동시에 구원의 날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날' 곧 인생의 마지막 날, 세상의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마지막 날,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에스겔은 열방들을 향한 최후의 심판을 통해 애굽과 같은 열방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고 의뢰하는 참된 믿음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길 원하셨던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애굽과 바벨론)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을 잘 아노라 고백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이다.

 

* 동영상

 

1. 그날에 알게 되리라

① (1절~3절) “그날이 가까웠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열국의 때이리로다”

▶ 그날은 어떤 날인가? 한마디로 심판의 날이다. 에스겔은 마지막 심판의 날을 통곡과 슬픔의 날, 여호와의 날, 열국의 때, 재앙의 날 등 다양한 언어로 묘사한다. 본문에서는 ‘구름의 날’이라는 새로운 표현을 기록하고 있다. 구름의 날이란 폭풍우 같은 진노와 공의로운 심판을 뜻한다. (계1: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심판의 날은 멸망의 날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날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출애굽기에서 애굽땅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은 애굽왕 바로에게는 무서운 심판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날인 죽음도 어떤 이에게는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인생의 종착역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영원하신 아버지의 품에서 눈을 뜨는 영생의 시작이다. 에스겔은 ‘그날에’ 드러나게 되는 이런 차이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달려 있음을 증거 한다.

 

② (4절~7절) “애굽에 칼이 임할 것이라...그들과 함께 칼에 엎드러지리라”

▶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막대기)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다. 무엇을 심판하시는가? 애굽을 붙들어주는 자(애굽의 대표적인 우상인 태양신 라(La)와 나일강의 신 하삐를 일컫는다)와 애굽의 교만한 권세(자신을 태양신의 아들인 창조주로 여기던 애굽왕을 가리킨다)를 심판하신다. ‘믹돌에서 수에네즈까지’는 심판의 대상이 애굽의 전 지역과 애굽과 동맹을 맺고 동거동락하던 ‘구스, 룻, 붓’임을 가리킨다. 어떻게 심판하시는가? 사막과 황무지로 만드심으로 하나님께서 사막에 강을 광야에 길을 내시는 창조주 되심을 증거 하신다.

 

③ (8절~9절)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 애굽을 심판하시는 목적을 분명하게 기록한다.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출애굽기에서 애굽왕 바로를 심판하시는 열 가지 재앙의 목적을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라는 말씀을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다. 왜 심판하시는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함이다. 경외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경외의 반대말은 무시와 무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2. 내가 애굽을 국문하리니

① (10절~12절) “내가 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으로...강포한 군대를 거느리고...그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황무케 하리라 ”

▶ 앞서 언급했던 심판의 주관자, 대상,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거듭해서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창세기에서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풀었다. (창41: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거듭해서 반복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속히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뜻이다.

 

② (13절~18절) “내가 그 우상들을 멸하며 신상들을 놉 가운데서 끊으며...야웬과 비베셋...드합 느헤스에서는 날이 어둡겠고”

▶ 애굽에 유명하던 도시와 성읍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그 도시와 성읍이 의지하던 우상들과 의지하던 모든 것을 친히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③ (19절) “이와 같이 애굽을 국문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이 자주 사용하는 ‘국문’이라는 표현은 재판장이 죄인을 공의로운 법에 따라 심문하고 공정하게 형벌을 내리는 재판정과 같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대를 의미한다. 왜 국문하시는 목적을 또 다시 거듭해서 증거 한다.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3.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① (20절~21절) “제 십 일년 정월 칠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 앞서 29장에서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던 때로부터 3개월 후를 가리킨다.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말씀대로 애굽에서 시행되었음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언약 곧 예언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것을 싸매지도 못하였고 약을 붙여 싸매지도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징벌은 피할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대적불가의 불가항력적인 사건임을 드러낸다.

 

② (22절~25절)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주고 바로의 팔은 떨어뜨릴 것이라”

▶ 바벨론에 의한 애굽의 멸망은 힘이 없거나 군사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바벨론의 팔을 들어주신 것이고 바로의 팔을 떨어뜨리신 것임을 증거 한다.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 삶의 주관자 되심을 증거 한다.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을 경험한 후 한나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삼상 2:6~8)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흥망성쇠를 통해 하나님께서 삶의 주관자 되심을 깨달아 알기를 원하신다.

 

③ (26) “내가 애굽 사람을...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 하나님께서 그토록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길 원하셨던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본문에 나오는 ‘그들은’ 교만한 애굽의 바로왕만이 아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의 교만도 심판하신다. 사실 하나님의 진짜 관심과 목적은 본문의 바로왕이나 바벨론왕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노라 고백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돌아오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히스기야의 교만을 통해 심판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대하32:24~25)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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