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주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한 청년의 허망한 산재사망 사고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힘겹게 취업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열악한 업무환경에 대한 기사를 보니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정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애끓는 심정의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저희 집 작은아이에게는 베스트 프렌드 현석(가명)이가 있습니다. 25Km 가량 떨어진 아랫마을에 사는 또래 남자아이입니다. 작은아이는 주말이면 종종 그 집에 놀러가서 시간을 보내고 옵니다. 겨울 전까지는 개울에서 미꾸라지도 잡고 자전거를 타며 마을을 돌아다니고 수영을 합니다. 날이 추워지면 방 안에서 게임을 하다가 잠시 밖에서 장난감 총 쏘기 놀이를 합니다. 작은아이는 지난주에도 현석이의 초대로 아랫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현석이의 집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저희 집에서 금지된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작은아이는 현석이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 종일 게임만 하지 않겠다는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바깥놀이는 꼭 구색을 갖추어서 하고 옵니다.

   저희 부부는 두 달 전에 현석이의 생일에 식사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날 남편과 제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에 작은아이가 현석이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주일날 데리러 가려고 전화를 해 보니 현석이 아빠가 다시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였습니다. 현석이의 엄마는 중국 한족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중국 사람들은 쉽게 가정으로 사람들을 부르거나 초대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식사초대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거나 혹은 친구가 되고자 할 만큼 상대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의미 있는 초대라는 것을 알기에 두 번 씩이나 식사 초대를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고 호의를 거절하는 것이 될 것 같아 식사자리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6시가 좀 넘어서 현석이의 집에 도착해보니 작은아이와 현석이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상 위에는 갈비찜, 잡채를 비롯한 한국음식과 새우탕수, 건조두부 야채볶음 등 중국음식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푸짐한 저녁상은 다음날에 있는 현석이 할머니의 생신 상이었습니다. 현석이 엄마는 지역 학교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생신날은 월요일이라 퇴근을 하고 오면 생신 상을 차리기가 바빠 하루 전인 주일날 상을 차린 것입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 현석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먼저 식사를 마치셨고, 마을의 어르신 한 분과 친척 한 분, 그리고 현석이 부모님과 저희 부부가 함께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함께 간 큰아이는 현석이 엄마가 만든 중국음식을 무척 잘 먹었습니다. 현석이 엄마의 음식은 다채로웠고 저와 남편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는 동안 현석이 할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오신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저희에게 들려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전쟁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중퇴하셨고 휴전이 된 후 자녀들을 기르기 위해 농사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슬하에 4남매를 두었으며 자녀들이 자라고 보니 학업성적이 우수해서 더 나은 학업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춘천으로 이사를 했답니다. 낮선 곳이었지만 자녀들이 열심히 공부하니 본인도 흥이 나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용직 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셨답니다. 그렇게 자녀들이 자라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자신들의 삶을 찾아가면서 현석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도시에서 살던 현석이의 아빠가 고향으로 내려와 함께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하시면서 현석이 할아버지께서는 집이 따듯한 것을 두고 “사람이 집이 따듯해야해. 집이 따듯하면 다 된 거야. 집이 추우면 안 돼.”라며 손수 팬 장작으로 난방을 한 집을 자랑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식 자랑과 한겨울을 데울 장작 자랑은 둘러앉은 밥상을 더 훈훈하게 했습니다. 교회에 속한 교우도 아니고 친인척도 아닌 가족으로부터 식사초대를 받아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맛있는 저녁 식사와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겨울 저녁이 훈훈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 이국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현석이 엄마의 넉넉한 환대가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저도 현석이 엄마의 좋은 벗이 되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녀를 위해서라면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은 어른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