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옆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 김현승-

가을은 기도하는 계절이고, 시의 계절이다.

나는 좋아하는 한편의 시 때문에 시집을 사곤 한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시인은 한편의 위대한 시를 남기기

 위해서 존재하며, 소설가는 한편의 위대한 소설을 남기기

 위해서 존재한다. 미술가들이나 음악가들도 마찬가지다.

등산가들의 꿈은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이트산 정상의

정복이다. 일단 그 꿈을 실현시키고 나면 곧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그 이상의 정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예술작품들도 그러하다.

그들의 최고 작품은 단 하나이고, 다른 작품들은 그 한

 작품을 위한 장식품들이다. 그리고 그 한 작품으로 그들은

 기억된다.

나는 김현승 시인의 오래된 시집 한권을 가지고 있다.

가을이 올때마다 책꽂이에서 꺼내서 이 '가을의 기도' 를

읽곤 한다. 그는 유달리 가을을 주제로한 시들을 많이

쓴 시인이다. '가을의 입상', '가을의 시', '가을은 눈의 계절',

'가을 넥타이', '무등차', ... 등.

그리고 그의 시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그의 시들은 대부분이 신과의 대화,

기도속에서 나온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암튼 김현승 시인은 내 머릿속에 가을과 기도의 시인으로

각인되어있다.

버지니아 가을은 짧다. '아! 가을이구나' 하면 금방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 버지니아 가을이다.

우리 인생의 노년기가 그렇듯이....

그리스 철인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짦고 예술은 길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말도 호랑이가 담배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오늘날과 같은 인테넷 시대, 장수 시대에는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해서 변함이 없는 진리는

" 아름다운 순간은 짧다" 가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일은 당장 즐기고 불편하고 불행한 일은

내일로 마루라" 는 개인적인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

보고싶은 사람이 있으면 당장 전화를 하던지 찾아가서

만나고, 즐거운 모임이 있으면 주저함이 없이 참석한다.

즐거움이 인연을 맺는 가장 중요한 나의 가치기준이다.

어제 오후에는 봄에 숲속에서 주어온 돌들을 쌓아

 만들어논 모닥불 터에 갈잎들과 나뭇가지들을

태우며 보냈다. 나는 한국 '박인희' 가수가 불러던

'모닥불 피워놓도 마주 앉아서....로 시작되는 유행가

'모닥불'을 무척 좋아한다. '모닥불'은 카라오키를 틀어놓고

혼자서 노래를부를때마다 빼놓지 않고 부르는 애창곡 중

하나이다..

그 노래의 노랫말처럼 마주 앉아서 서로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벗이 있었으면 더 즐거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는 혼자서 산책을 하고,

혼자서 드아리브를 하고, 혼자서 여행을 하고, 혼자서 커피와 술을 마시는 일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인생은 어차피 무소(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 뼘의 땅일지라도/조중한 것을 지키라/홀로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그대가 믿는 것을 지키라/먼 길을 가야

할지라도/그대가 해야하는 것을 하라.(인디언 푸에불로 족의 축원).

'숲속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는 숲속생활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는 것이 내가 18년 동안 숲속

생활에서 얻은 지혜다. 나에게는 나무들, 들꽃들, 잡초들, 사슴들,

다람쥐들, 산새들, 여우들, 개구리들, 거북이들, 구름들, 바람들, 하늘, 비, 천둥 번개, 눈, ........ 등

그 모든 것들이  마주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벗들이다.

특히 나와 함께 먹고 자는 개 선더(Thunder) 가 있다.

선더 이름을 두고 동네 아이들 사이에 그에 대한 해석들이

 분분하다. 어떤 아이들은 '천둥'처럼 빨리 달려서 선더라고 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천둥처럼 크게 짖어서  선더라고 했다고 하기도 하고....

선더라는 이름 지은 진실은 이렇다. 6시간 이상 운전을 해서

펜실베니아 주 아미스 농장에서 선더를 구입해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사랑은 천둥처럼 갑작스레 들이닥친다" 는

성서적 깨달음을 얻게되었다. 그래서 선더라는 이름을

 내가 지어주었다. 선더는 그 이름처럼 매일매일 나에게

 싱싱한 사랑과 기쁨을 선물하는 나의 벗이다.

LA 여행 중에 선더를 한 가족처럼 보살펴주었던 연방법원

여변호사 Jill 가족들, 동거하고 있는 남자 친구, 경찰 모리스,

딸 에비와 제시에게도 LA에서 사온 문어말림과 애들용

 선물들을 전달했다. 에비와 제시는 야생 꽃들을 꺽어 화병을

 만들어 '선더를 맡겨주어서 고맙다" 는답례로

 우리 가족에게 선물했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지금 곁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이문제)

몇 친구들에게 모닥불 사진을 카카오톡을 통해서

전달했다. 그에 대한 반응들도 각기 달랐다.

내가 "바람같은 사람" 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벗도 있어었고,

 '오우.... 모닥불 가을 냄새가 화악... 전해집니다" 하는 벗도

있었으며, " 그 재를 거름으로 쓰세요" 하는 실용적인 벗도

있었다.

농네 아이들이 선더의 이름을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 것처럼.....

0926/2018 아침 메모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