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언제부터인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15년 전 쯤이었을 것이다. 워싱톤을 방문한 신경림 시인과

어울려 함께 소주를 마셨던 적이 있다. 한국과 워싱톤 간의

 싯 차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무척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며 느끼는 그에 대한 소감은 그 때의

지친모습이 그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된다.

그당시 나는 충청도 충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 출신으로 가난 속에서

온갖 고난의 길을 걸어온 그의 시나 저서를 통해서

 다소는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중 하나인 '고향길' 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분으로 정서도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의 저서 '시인을 찾아서', 수필집 '시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 간의 만남',

그의 시선 모음인 '갈대는 속으로 울고 있다', ' 이 세상 모든 사랑의 시' 등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신경림 시인은 ' 너무나, 너무나

 인간적인 시인'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이들 '글이나 시는 그 사람의 인격이다' 고 한다. 나는 그 말을

" 얼굴이 예뻐야 여자냐?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하는 유행가

가사만큼이나 신뢰하지 않는다. 글과 시가 아름답다고 해서 그작가의 삶이나 인격이

아름답다는 보장은 없다. 그 연관성을 증명하는 과학적 통계도 없다.

마치 "얼굴이 못 생긴 여자가 마음이 아름답다" 는 증거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내 경험으로는 "얼굴이 생긴대로 논다" 는 말이

맞을 경우도 많았었다. 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가끔 나의 글을 읽는 케롤로부터

'당신은 글과 실제 삶이 서로 다른 위선자다" 라는 비난을

 받을 때마다 변명할만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다.

특히 그녀가 기분이 나쁘다거나 부부싸움 할 때는

 심지어 '사기꾼' 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곤 한다.

또 나는 '외유 내강' 이라는 말도 신뢰하지 않는다.

씨앗들은 '외유 내강' 이 아니라 '외강 내유' 다. 그게

자연적이다. 밖으로 유연하고 도덕군자인 척하는 남성들 중에

집안에서는 폭군일 경우가 많고, 집안에서 마누라에게

꿈쩍 못하는 남성들 중에 밖에서는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소인배일 경우가 많다.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내가 직접만나 본 신경림 시인은 연약해 보이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갈대와 같이 강인한 인간이었다.

젊은 시절 쓴 시 한 편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문학상을

 받은 것을 두고 무슨 대단한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평생을

 우려먹고 사는 졸장부 시인도 아니었다.

그는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인간다운 사람이었다.

옛날 옛적이야기다.

하루는 하느님께서 제일 수고를 많이 하는 천사 한 명을

택해 버지니아 숲속으로 일주일 동안 포상 휴가를 보냈다.

그 천사는 아름다운 버지니아 숲 풍경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반해버렸다. 하늘로 떠나긴 바로 전 날 그는 버지니아 숲길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의 구도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지구 여행에 대한 감사표시로 그들의 소원 하나씩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번째 구도자에게 "당신 소원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변함없이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일시에 아코칸 강변에서 풀을 뜯고 있는

평화로운 한 마리로 소로 변신해 버렸다.

두번째 구도자에게 동일한 질문를 건냈다. 그러자 그는

"무심을 갖고 싶습니다" 하고 그의 소원을 청했다.

그러자 그는 일시에 크리트톤 다운타운에 있는 한

오래된 교회 앞 베드로 돌상으로 변해버렸다.

세번째 구도자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건냈다.

그러자 그는 "평생을 이렇게 인간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천사는 그에게 선물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 후 천사는 지구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잔뜩 품고

하느님 앞에 서게 되었다.섰다. 눈치가 빠르신 하느님은

천사의 아쉬운 마음을 알아차리시고 천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구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 속에 가득한 듯 한데

만약 지구에 내려가면 누구와 함께 살고 싶으냐?"

그러자 천사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 평생 그 인간적인 사람의 벗이되어 보내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09/23/2018 아침 메모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