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묘비명

내 무덤 앞에서 그 차가운 비석을 세우지 말라.

그리고 해바라기 긴 줄기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화려하던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이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라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

몇해 전에 한 선배로부터 한국을 방문 중 고등학교 동기들을

 만난 모임에서 자신들의 묘비에 무슨 유언을 남길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이제 내 나이도 그런 걱정까지 해야할 나이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씀쓸하기만 했다.

난 솔직히 이 세상에 남겨두고 싶은 말이 없다. 특별한

 미련도 없고 이 세상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 생각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겠지만. ..

저번 주 일요일에 퀘이커 모임에 참석했더니 명상시간을 끝낸 후 저번 달에 사망한

한 여신도 남편의 Ash(재) 처리 문제를 두고 감란을박이 오고갔다.

퀘이커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남편을 화장하고 나온 재를

 교회정원에 뿌렸는데, 교회 참석 여부와는 관계없이

 본인이나 가족들이 원하면 누구에게나 허용하는 교회 규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연과 생태계 보호를 삶의 한 기본으로

갈고 있는 신도들로썬 아주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영어 Human 이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라틴어 Humus,

흙에서 비롯되었고,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이라는 단어도 그 뜻이

흙이라는 걸로 알려져 있다.

흙에 무슨놈의 소유권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흙은 본래

하나님의 소유요, 우주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마케도니아 알랙산더 대왕은 악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정복하고 33세에 요절면서 부하들에게

"나는 죽어서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한 채 우주속으로

사라진다. 그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내가 죽으면

 두 손을 관밖으로 내놓고 시가 행진을 하게 하라" 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역시 천하의 알렉산더 대왕다운 유언이었다.

내가 이 함영수 시인의 시를 처음 접했던 때는 고등학교

이학년 때였을 것이다. 감동이 무척 컷었다.

그후부터 해바라기는 코스모스 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자리메김하게 되었다.

올봄에도 모스모스 꽃씨와 해바리기 꽃씨들 대량으로 구입해서

드라브웨이 주변과 정원, 숲속에 무더기로 뿌렸었다.

아깝게도 숲으로 가려져 있는 일조량 부족 탓으로 꽃 한 송이도 구경하지 못하는

쓰라린 비극을 맛보게 되었다.

햇빛은 생명체를 키우는 우주의 사랑이다.

아무리 비옥한 옥토와 물이 풍부해도 햇빛이 없으면

 꽃은 퍼어나지 않는다. 그건 진리다.

우리 인생도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이나 다를바가 없다.'

함형수 시인의 시는 이 시 외에 별로 알려진 시가 없다.

아마도 이 시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인지도 모르겠다.

또, 그분의 후손들이 함 시인의 유언에따라 묘비를 세워주었는지도

나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런 묘비라면

 나도 남겨두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곤 한다.

그에게 해바라기 꽃은 태양, 아니 사랑을 향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영혼은 아직도 프른

 한국의 가을 하늘을 노고지리처럼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10/22/2018 아침 메모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