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엄마아빠들과 함께 한 11일여행

9,아홉 번 째 이야기(5월 13일/주일) - 미국에서 '그 날 바다'를 보다

(지난 두 주간 동안은 갑작스러운 아내의 입원과 퇴원 등 몇 가지 일로 마음이 분주하여서 여행기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게으른 탓도 있지요. 너무 인터벌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후러싱제일교회의 10시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이른 점심으로 닭죽을 먹은 후 곧 필라델피아 근처의 Wayne이라는 도시로 향하였다. 오후 4시 10분에 세월호 간담회 장소인 Reel Cinemas Anthony Wayne Theater(웨인극장)에 도착하니 이미 필라델피아 세사모회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모인 인원은 80여 명, 나이 지긋한 분들이 꽤 여럿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 한인 80명이 모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 순서는 영화 ‘그 날 바다’ 관람이었다. 사실 나는 ‘그 날 바다’를 그 날 처음 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518과 관련한 영화라든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다큐 같은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관람을 피하곤 하였다. 마음으로부터 솟아나올 울분과 슬픔을 감당할 수 없겠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보지 않으려고 버틴 영화지만 이날은 어쩔 수 없이 ‘그 날 바다’를 보게 되었다. 과연 마음속에 울분이 차오르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영화상영이 끝난 후 모인 사람들의 얼굴들을 보니 모두 놀라움과 울분과 슬픔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이어서 유가족간담회가 시작되었다. 아쉬웠던 것은 극장이 좀 어두웠고 오디오시스템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가족들의 발언이 수월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이었다. 멀리 미국에 있어서 세월호분향소에라도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늘 미안했는데 이렇게 유가족들을 만나 얘기를 들으니 더 미안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멀리 타향에서라도 세월호를 위해 힘써 싸워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고들 하였다.

간담회가 끝난 후에는 200m쯤 떨어져있는 성공회성당으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겉모양도 아름답지만 소박한듯하면서도 위엄 있어 보이는 내부가 너무도 은혜로워 보였다. 마침 그곳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umc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조병우목사(신학교 1년 선배)와 그의 아내(신학교 동기)가 찾아와서 저녁식사 후 조목사의 교회를 잠깐 방문하였다.(10박 11일 동안 내가 유일하게 개인행동을 한 경우다.) 그 사이(저녁식사 후) 유족들과 필라델피아 세사모회원들이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 자리에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광주민주화운동 때 가족을 잃은 84세 된 할머니가 유족들을 위해 해 준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 날 밤 엄마들 3명은 이현옥님이 호스트 하였고 아버지들 3명은 그 날 모임을 주관하였던 Vincent Kim님이 호스트 하였다. 가는 곳 마다에서 세월호유족들을 환대하여 준 세사모회원들의 정성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그런데 필라델피아지역에서 엄마들을 호스트하여 준 이현욱님은 아직 그린카드를 받지 못한 형편이라고 하였다. 오래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몇 년 동안 그린카드를 받지 못하였던 형님네 가정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아는 터라 그의 호스트는 짠한 마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것은 결코 가지고 있는 것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극장을 빌리고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목사들의 숙소를 잡아주느라 비용이 꽤 들어갔을 것이다. 뉴욕이나 위싱턴지역보다는 모임의 규모가 작은 필라델피아의 세사모회원들이 그 비용을 다 감당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고마움 못지않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른 아침, 목사들이 묵은 호텔로 세월호가족들을 데려다주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짙게 표하였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 조병우목사의 100년된 교회사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