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리칸 인디언들

-15일간 미국 휭단기7-

이제 또 한 사람의 여행자가 /우리 곁에 왔네
그가 우리와 함께 지내는 날들이/웃음으로 가득하기를.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그의 집위에 부드럽게 불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에 집에 들어가는/모든 이들을 축복하기를.
그의 모카신 신발이/여기저기 눈 위에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
-체로키 족 인디언들의 축복기도-

이번 여행에서 꼭 들려보고 싶었던 곳들이  미국 인디언 보호구역들이었다. 지난 가을 테네시  스모키 마운틴 산자락에 있는 체로키족 마을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따사하고 울컥했던  감정들이 아직도  가슴속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탓이리라.  그때 나는 마치  어린 시절 고향친구들이라도 만난 것처럼  체로키족 후예들과 어울려 북소리에 맞추어 함께 서클춤을 추었으니까.

이번 여행의 반환점인 Yellowstone를  가려면  미네소타주, 북 다코타주, 몬타나주, 와이오밍주 들을 거쳐야 했다.  이 주들은  아파치족, 타코다족, 나바호족, 체이니족.. .  등 미국 인디언들이  백인 토벌대에 맞서 끝까지  싸웠던 인디언들의  한이 서린 지역들이다. 현재 미국 인디언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의 0.9% 정도로,  한국계 1 % 보다 약간 적다. 반면에 이들 지역들은 그 비율이  노스  다코타주  8.7 % ,  몬타나주  6.7 %, 와이오밍주는  3.8 %  이며  여지저기 미국 인디언들의 유적지들이 남아있다.   

시카고에서  하룻 밤을  머물며  Minnesota 주 에서  인디언들을  상대로 24년 이상 케토릭 부제로 봉직해 온  L  부제 이름이 문득  머리 속을 스쳐갔다. L  부제를 직접 뵈온 적은  없지만  미주지역  흥사단 카카오톡에 올린 그분의 글들을 읽고 인사차 전화를 드렸더니 자신의 신앙적  회고록 ‘회고와 소망’ 한 권을 소포로 보내주셨던  개인적 인연을 가지고 있다(솔직히 그때까지 읽어보지는 못했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 고  했다.  당장 구룹 카카오톡을 운영하고 있는  뉴욕 C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를 얻은 후  전화기를 눌렀다.
“ Yellowstone 을 가는 길에  잠시  만나뵙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꼭 들리세요. 우리 만납시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사람처럼  무척 반기는 목소리로 집주소를 전화 텍스트로 보내주셨다.
나처럼 건달기가 약간 있는 분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300 마일 정도를 운전해서 이른 아침  L  부제의 농네 ’ Burger King’ 에 자리를 잡고 전화를 했다.
“그렇잖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곧 나가겠습니다”

나에게 풍기는 이부제의  첫 인상은 인자한  성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개를 닮아 후각이  남달리 발달한 사람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외모나 말 보다는 섬세한 후각으로  그들의 사람됨을 식별하는 본능적 버릇이 있다.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는 것이 내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습득한  지혜다.  만나자마자 우리들은  오랫동안 생사를 같이해온 동지 사이처럼 서스름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한두 시간을 작정하고 찾아간 만남이었는데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장장 12시간,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겨우  짙은 아쉬움을 남딘 채 헤어져야만  했었다. 가슴이 통하는 동지관계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한 번 만나도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는 사랑 관계, 아니 그 이상인 것이 사내 대장부 간의 우정관계다.

이 부제는 83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폭염속에서 손수 운전를 하시며  Minneapolis 이곳저곳 명소들과  미시시피강을 가운데 두고 인디언들과 백인들이 맞서 싸웠던 전쟁터,  그가 24년간 봉직했던 미국 인디언들의 Gichitwaa Kateri Catholic Church 를 구경시켜 주셨다. Saint Kateri Tekakwitha 는 미국 인디언 여성 최초의 케토릭 성자로 지정된 분이다.

L 부제의 대화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天命이었다.
예산 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철학과를 택한 것도, 학창시절 4.19 주역으로 참여한 것도, 케토릭 농민운동에 앞장 선 것도, 목슴를 내놓고 반독제 투사로 활동한 것도, 73년에 미국에 이민와서 한국 민주 혁명당을 창당 한 것도, 케토리 부제가 되어 북한 선교와 북한농업 돕기운동에 참여한 것도, 미국 인디언들 상대 케토릭 부제로 24년간 봉지한 것도….. 그 모든 것들이 그분에게는 하느님의 명령인 천명이었다. 그리고 한민족이 하나님께서 ‘인류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서 택한 마지막 ‘선민’이라는 확신도.

이 부제가 미국 인디언들에게 느끼는 동질감은 나와 거의  비슷했다. “ 미국 인디언들은 곰을 숭배하는 토테이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신화 내용이  한국의 단군신화와 너무 유사합니다.  아마도 우리 민족과 같은 혈통적, 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내가 인디언 선교를 天命으로 받아들인 이유중 하나도  그런 믿음에서지요.” 

나는  평소의 생각을 이 부제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미국  인디언들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마치  ‘울밑에서 봉선화’ 나 ‘아리랑’ 를 듣고 있는 듯한 감정에 빠지곤 합니다. 미국 백인 작가들 작품 속에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들입니다.  나는 미국 문명의 가장 큰 비극중 하나는  미 대륙에  신화나 전설이 없어서 문명이 너무 드라이 하고 삶에 멋이 없는 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신화나 전설은 문명과 삶의 운치이자 멋입니다.

심리학자 융의 ‘집단 무의식세계’ 이론을 빌리자면  신화와 전설은 정신문화의 뿌리입니다. 또 종교심의  모태입니다. 한국인인 내가 미국 인디언들을  만나면  가족 같은 동질감,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도 그런 신화 탓이 아닌가 합니다.. 아쉬운 것은 만약 미국 백인들의 실용주의 철학과  물질문명이 인디언들의 풍부한 신화,   따뜻한 인간애 및  자연애와  조화를 이룰 수만 있었다면 미 대륙은 아마도  백인 기독교인들이 그리워하는 성경 창세기의 에덴동산처럼 살지 좋은 낙원이 되었을  겁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제한적 사실은  그렇습니다. 인디언들은   ‘우주는 신이 창조하신 선물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교유한 믿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사상인  ‘홍익인간’ 이나 붓다의 가르침이자 불교 ‘무사상’ 의 이론적 바탕인 ‘연기설’ 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또,  기독교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우주위 창조신화나 신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인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와도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기독교 믿음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인디언들은 자연을 인간들의 정복 대상이 아니라 서로 사랑을 나누는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들로 보는 점일 것입니다. “

이 부제는 나의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참고로 독자들의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내가 좋아하는 미국 인디언들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인디언 노란 종달새 기도문 중에서 –

“이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가 대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지가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을 우리는 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로 묶여 있고
모두가 한 식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시애들 추장의 연설문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의 가진 생명과 힘에 대해서
당신이 먹는 음식/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 잘못이다.”
-태움새, 쇼족 인디언-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사라진 뒤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인간이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크리족 인디언 예언자-

애석 하게도 이번 여행  중  시간에 쫒겨  인디언  유적지들이나 박물관들을 여러 곳을  둘러볼 수가 없었다. L  부제의 배려로 미니아폴이스에서 미시피 강변 인디언들의  옛 생활터를 멀리서만 바라보았고, 인디언 케토릭 교회를 찾아가 겉모습만  둘러보았다. North Dakota 주도   Bismarck City 에서   이틀간 머물면서 Knife River Indian Villages National Historic Site 와   Fort Abraham Lincoln State Park (미국 인디언 토벌 기병대와 보병 주둔 부대 기념공원) 에 남아있는 Mandan Indian Village 토굴들을 볼 수 있었다.      

Knife River Indian Village 박물관에서는 안내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는 Cherokee Tribe 후손(어머니가 인디언으로 6개월 전에 테네시에서 이사왔다고 함) Luke  와  잠시 인디언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Montana Sate 주도 Billings City 에서는 자동차 오일 Change 를 하기 위해 Jiffy Lube 에 들렸다가 옆에 앉아 있던 인디언  Reservation 에 살고 있다는 Thomas Round 와 미국 인디언들 생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라스트  네임이(Last Name)   왜 Round 냐고 물었더니 “아버지 얼굴이 둘글어서 백인들이 지어준 성이다”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기 어머니 성은 ‘ Donktalkback”   인데 부인에게 말댓꾸를 하지 말라며  지어준 성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미국 인디언들의 비극적 역사에 대해서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쓰려고 작정은 하면 아마  수천장을 써도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옥수수 꽃이 피면 옆에서 자장가를 부러주던 선하고 착한  미국 인디언들’ 그들이  왜 ‘원수까지 사랑하자’ 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기독교인들의 눈에는 박멸시켜야 할 대상인 사탄들로 보였을까?  서로 사랑은 나누는 이웃으로 공존할 수는 없었을까?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독자들의  가치관과 신앙관에 맡겨두기로 하자.

09/11/2018 아침에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