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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제사장설을 짓밟고 등극한 제왕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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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9월 12일 (수) 19:37:09
최종편집 : 2018년 11월 10일 (토) 00:51:57 [조회수 : 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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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제사장설을 짓밟고 등극한 제왕들

농경사회의 가부장제 시대에는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진리에 못지않을 만큼 어겨서는 안 되는 철칙이었다. 아니 그것은 진리요, 진리 중에서도 최고의 것이었다. 만약 그 철칙을 지키지 못한 자식이 있다면 주홍 글씨 아닌 불효자라는 딱지를 가슴 아닌 이마에 붙이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그 시대의 그 철칙을 잘 지키는 가정들은 잘들 돌아갔다. 풍비박산이 난 것은 그 철칙이 지켜지지 않은 가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대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보니 연륜이 지식과 지혜를 쌓게 하여 나이 많은 노인들의 혜안을 젊은이들이 따를 수가 없었고, 따라서 자식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가정은 매사가 순조롭게 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순종치 않는 가정은 이웃의 손가락질과 함께 몰락해 가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나이 많은 사람들은 도저히 그것을 소화해 낼 수가 없게 되었다. 컴퓨터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게 되었고, SNS를 이용하지 않고는 다양한 의사소통뿐 아니라 폭넓은 인적 교류도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간힘을 써도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어떤 부모도 자식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다 한들 자식들이 들을 리 없다. 만약 자식들이 자기 생각을 접고 부모에게 순종만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져 낙오자가 될 것이다.


이제 부모는 자식들을 격려만 해 주면 된다. 자식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은 어렸을 때에 한하고, 장성하여 어른이 되면 부모의 할 일이란 격려뿐이다. 그 외에도 할 일이 있다면 단 하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인 이상, 인간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마음의 전달뿐이다.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의 시공(時空)보다 더 무한하고 광활한 활동무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도록 기도하며 마음을 쓸 일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 중에도 신앙이 인간의 활동을 제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불행한 일이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예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서의 ‘자유’는 ‘죄로부터의 영적 자유’를 의미하지만,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그에만 한하지 않고 좀 더 폭넓은 자유를 향유한다. 물질로부터도, 사회적 지위로부터도, 다른 어떠한 것들로부터도 자유를 누리게 된다.

물론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완전한 자유는 죽어 하늘나라에 가야만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누리게 되는 자유의 범위도 달라진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전도 잘하고 봉사 잘하는 것이 아니다. 방언하고 예언도 하며 은사를 받아 병을 고치는 것도 믿음 좋은 예로 들기에는 적절치 않다. 뜨겁게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린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믿음이 좋다 단정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이 믿음이 좋은 요인은 될 수 있지만, 그만으로 믿음이 좋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자신의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다(빌2:5 참조).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롬3:10)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그대로 다 품은 사람 또한 하나도 없다. 다만 기도하며 애를 쓰고 또 애를 써 품어 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 자유로워지는 영역도 그만큼 넓어진다.


그런데 자유를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은 욕심이다. 교회에서고 세상에서고 문제는 욕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욕심만 해결되면 문제도 해결된다.

자기는 마음을 비웠다고, 욕심을 비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개는 거짓말이다. 목까지 차고도 모자라 입으로 넘쳐흐르면서도 비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필자도 그 욕심이라는 마물이 차고도 넘쳐 입으로 흘러나올 정도였다.

여기에서 필자가 욕심을 말하며 과거형을 쓴 것은, 지금은 그것을 목 부분까지는 덜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아주 미량만 덜어낸 것만으로도 운신하기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말이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말해 주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다. 아니, 말할 필요까지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게 살기만 하면 자식들이 그런 부모를 보고 배우게 된다. 어미 게가 옆으로 기며 새끼 게들에게 그렇게 기지 말고 똑바로 가라 한 것처럼 한다면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듣겠는가.

거듭 말하거니와 지금은 어떤 부모도 자식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순종 운운하는 데가 있다. 딱 한 군데 있다. 교회이다. 다는 아니지만 그런 교회, 그런 목사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삼상15:22)다 했으니 목사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한다. 웃기는 정도에도 급이 있다면 가히 특급에 해당될만하다.

하나님께 순종하라 했지 누가 목사에게 순종하라 했는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은 하나님께 하는 ‘순종’이 그렇다는 것인데, 왜 멋대로 자기에게 ‘순종’하라 하는가. 목사가 하나님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기야 목사가 하나님께 위임을 받은 거라며 하나님과 교인들의 중간에 서서 ‘~지어다’로 축도라는 것을 마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만인제사장설’을 몰라서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도 아닐 것이다. 알고, 옳다 생각하지만 굳이 모른 척 외면하는 것일 게다. 그래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일종의 허세요, 욕심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약1:15)는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이다. 봐라, 그렇지 아니한가를. 모 교회의 세습을 두고 교회 헌법에 위배되느니 아니니 하는데, 교회의 세습을 방지하는 법이 있다는 그 자체가 교회에 욕심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가를 웅변 이상으로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사례금이라는 명목의 돈이 한 푼이라도 더 많이 제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라고, 그것도 모라라 횡령까지 하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여신도를 성욕의 희생물로 삼기도 하는 사례 등은 모두 욕심의 산물이다.

많은 목사들은 반쯤 하나님(半神半人)의 역할을 하려 들기고 하는데, 이 또한 욕심의 산물이다. 교인 중에 건축의 대가가 있는데도 그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고, ‘건축’의 ‘건’자도 모르면서 교회건축에 이러쿵저러쿵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는데도 상식적인 지식 나부랭이를 가지고 전문적 지식의 위에 서려하기도 한다. 불행한 일이다.

한 사람이 북치고 장구를 치는 것도 모자라 꽹과리에다 징까지 치려든다면 결과는 뻔하다. 목사는 신앙의 지도자이지 그 외의 건축이라든가 다른 어떠한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만능이기라도 한 것처럼 행세를 하는 것은 교인들 위에 군림하려 하는 욕심의 결과이다.


이쯤해서 글의 끝을 맺으려 한다. 신앙과 욕심은 반비례한다. 신앙이 성장하면 욕심은 줄어들고, 욕심이 많은데도 신앙 좋은 사람은 없다. 목사의 신앙이 떨어져 욕심이 커지면 교인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게 그 반증이다.

우리는 하나님 외엔 다른 누구에게도 순종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그것을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라고까지 이해할 수도 있다. 비록 그게 목사의 말이라 할지라도 옳으면 따르는 것이지 순종의 개념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성경과 배치되면 묵살하면 되고, 그 정도가 심하면 분명히 거부의 의사를 표해야 한다. 목사도 평신도들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 찌질하게 ‘이래도 예, 저래도 예’ 하는 못난이처럼 굴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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