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맛있다. 며칠 전만 해도 바람이라곤 한 오라기도 찾기 힘든 후텁지근함이 대지를 덮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 기도회에 가기 위해 문을 열면 상쾌하다 못해 맛있는 바람이 겨드랑이까지 파고든다. 바람은 그리하여 애절하고 상큼한 모양새로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든다.

가뭄이 지속되고 더위가 하늘을 찌를 때는 너무한다 싶었다. ‘하늘이 너무해!’ 그랬다. 이 말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 바캉스는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랬던가, 한다.

집 주위의 잔디가 말라비틀어지다 목숨을 거두는 진풍경이 초래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는 수 없이 수도꼭지에 호스를 길게 묶어 몇 번인가 물을 주기도 했다. 그리 효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긴 그것조차 물이 부족하여 중도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자 한 방에 해결되었다.

이젠 그렇게 죽어가던 잔디가 파릇 거리며 아직은 살아 있노라고 고개를 바짝 쳐든다. 잔디밭은 아직도 지난여름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난 봄 교회 입구에 옮겨 심은 나무들은 거반 죽어 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을 들추면 죽은 잎이 피를 낭자하게 토한다.

여름 가뭄이 그치니 여기저기서 물난리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태풍도 물 폭탄도 비껴갔지만. 다른 이들이 나와는 다른 아픔을 겪는다.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창조자가 내가 아니니 내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 당연하다.

아, 결국 이렇게 잔인했던 여름은 가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가뭄 때문에 숨죽였던 풀들이 교회와 주택 주변으로 용트림을 하며 야단법석이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예초기를 들이대거나 잔디 깎기를 들이밀지만 그때뿐이다.

그러고 보면 녹록한 게 한 알맹이도 없다. 그때는 그게 문제고, 이때는 이게 문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한다. 이유 없는 무덤도 없고. 그렇다. 우리 인생은 쉬운 길로만 길이 놓여있지 않다. 그러기에 또한 살맛이 있는지 모른다. 너무 쉬우면 맛이 너무 밍밍하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골짝기가 있어야 바람이 시원하지 않을까. 골짝도 없고 등성이도 없는데 어디서 바람이 불겠는가. 인생도 마찬가란 생각을 한다. 어떤 이는 알 수 없기에 미래가 기대된다고 했다. 다른 이는 고난을 겪고 난 후에 참 행복을 알았다고 한다.

그렇다. 지난한 여름의 무더위를 겪은 지금 시원한 가을바람 한 보시기에도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것은 ‘행복’이란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들출 수가 없다. 행복한 바람, 가을바람.... 올가을 바람이 더 맛있는 이유는 혹독한 여름 더위 때문이다.

욥이 모진 고난을 견딘 후 하나님을 뵈옵고 한 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했던 게 이 심정일까.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내게 지금 맞는 바람은 그런 엑스타시의 바람이다.

▲ 김학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