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폭우로 인한 피해가 많아 다들 안녕하신지 안부를 먼저 묻습니다. 진부령은 지난 화요일의 폭우로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와 곳곳에서 도로를 보수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명 사고는 없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제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은 개학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한 달 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출근을 하였습니다. 한 달 동안 아이들과 떨어지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엄마의 자리가 비어있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들이 해보고 싶다고 하는 것들을 함께 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오직 ‘육아’를 위한 휴가를 보냈습니다.

   장로님께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교회 앞에 부추와 상추를 심어 주셨습니다. 장로님은 교회 앞 작은 텃밭을 가꾸시며 산에서 교회 쪽으로 길이 난 것을 보고 “멧돼지가 내려오는 것 같은데요?”하고 멧돼지를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심어주신 부추는 잘 자라고 있는데 어째 상추가 자꾸 뽑혔습니다. 제 눈에는 누군가 밟은 것 같기도 하고 흙이 쓸려 내려온 것도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장로님께 여쭤보니 멧돼지가 밟고 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파헤쳐지고 밟힌 상추는 도저히 먹을 수 없겠다고 판단되어 장로님이 파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부추를 더 심어 주셨습니다. 멧돼지가 부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부추는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습니다.

    밤에 멧돼지가 내려온다고 생각하니 혹시나 해가 지면 멧돼지가 산 아래로 내려와 교회 앞에서 마주치게 될까봐 주위를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 꼭 등을 들고 밖을 나갑니다. 혹시나 근처에 멧돼지가 있더라도 제 손에든 밝은 빛을 보고 멧돼지가 먼저 도망갈 수 있도록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커다란 멧돼지를 마주치면 멧돼지도 놀라고 저도 놀라고 서로 두려워하는 사이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이 깊으니 멧돼지는 당연히 많겠고 산은 원래 동물들이 사는 곳이니 이주자인 제가 조심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멧돼지가 활발히 활동하는 시기와 시간을 알아보고 그 시간대에는 산 쪽으로 가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야행성인 멧돼지는 인적이 없는 곳에서는 낮에도 활동하지만 보통은 새벽시간대에 주로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위험한 동물이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는 시간대에 구지 나가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도 없거니와 밤 9시가 넘으면 잠 잘 준비를 하는 저희는 앞으로도 멧돼지의 발자국만 보고 왔다가 갔다는 짐작만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멧돼지와 저희는 이웃하며 살고 있고 어쩌면 삶의 공간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마주치지 않고도 각자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멧돼지를 만나지 않고도 멧돼지의 존재를 인정하며 멧돼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마치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두움처럼 말입니다. 제 마음 속에는 분명 어두움이 존재하고 있고 간혹 불쑥 나타나 저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어두움을 제거할 수 없고, 마음의 어두움이 모두 제거되는 것이 최선의 상태는 아닙니다. 완벽한 밝음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합니다.

   살면서 느끼는 어두움으로 인해 저는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를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며 빛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이 어두워 질 때 빛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는 것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빛 가운데 거하다 보면 마음속의 어두움도 함께 살며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삶을 공유하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어두움이 밀려와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빛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