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는 꽃보다 그 쓰임새 때문에 더 유명합니다. 싸립문부터 논밭으로 밥이며 새참을 머리에 이어 나르던 광주리와 소쿠리, 곡식낟알을 까부르던 키, 마당을 쓸던 싸리비와 지게에 올려놓던 지게바구니..제가 기억하는 것이 이정도니 생활 속 싸리의 사용처가 참 넓었겠습니다. 찾아보니 화살을 만들 때나 기름이 적었던 시절 횃불로도 사용했다네요.

6월 즈음부터 피기 시작하지만 꽃을 만나기 힘든 꽃궁기인 늦여름이 되어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분홍빛과 자줏빛이 교묘히 섞여있는 그 빛깔은 햇볕이 머물면 한층 더 화려해집니다. 가을 한복판까지도 피어납니다. 콩과 식물이어서 중요한 원소인 질소를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답니다. 물론 혼자만의 능력은 아니고 뿌리혹박테리아라는 미생물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튼 콩과 식물만이 갖고 있는 놀라울 특징입니다. 20여종의 싸리중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싸리, 참싸리, 조록싸리 세 종류 정도이어요.

태어나고 자란 산골 고향집에서 제몫으로 병아리를 길렀습니다. 모이도 주고 저녁이면 우리에 가두어두고... 우리에 가두는 것은 간단합니다. 구구구..소리를 내며 모이를 뿌려주면 병아리들이 줄줄이 모여들어 머리를 박고 다투어 모이를 쪼아 먹습니다. 이때 싸리가지를 엮어 만든 우리를 그 위에 씌워주면 끝이지요. 할아버지께서 어린 손녀의 키에 맞추어 아담하게 만들어 주신 그 둥그런 병아리우리는 싸리에 얽힌 고운 추억입니다. 그 추억이란게 휙휙 소리를 내며 종아리를 내리친 싸리회초리의 아픈 기억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