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말복이 지나고 진부령은 기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틀 전부터 여름 이불을 정리하고 따듯한 솜이불을 꺼냈습니다. 아직도 휴가를 오는 이들이 많아서인지 속초는 많이 붐비고 진부령을 오르내리는 차들도 많습니다. 주말에 속초 해변에서 에어쇼를 한다고 하여 속초에 갔다가 차가 많아 에어쇼가 끝나도록 남편은 차에서 내리지 못했고 저와 아이들, 그리고 교회 청소년들만 해변에 먼저 내려 에어쇼를 감상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에어쇼에 다들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삼 개월 전 16세 베트남 소녀가 엄마를 만나기 위해 저희 마을에  왔습니다. 어린 나이에 미혼모로 아이를 낳고 한국으로 재가했던 엄마와 연락이 닿아 함께 살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였는데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엄마의 판단과 소녀를 한국으로 불러 함께 살아도 좋다고 동의한 현재 가족들의 배려가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소녀는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한동안 언어를 습득하는데 목표를 두고 공부를 할 계획입니다. 현재 이 소녀는 흘리분교의 비정규 수업에서 함께 한국어를 배우기도 하고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 파견한 교사를 통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들을 잘 돌보고 지원해주시는 장로님께서 소녀를 교회로 인도하셨는데 저와 교회 교우들은 베트남어를 모르고 그 소녀는 한국어를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의사소통이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교회 청소년들이 핸드폰으로 번역이 가능한 앱을 찾아서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번역하여 그 소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다른 나라에 가게 되어도 그 소녀와 같은 입장이 되겠지요.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함께 어울릴 수가 없고 그러다보면 점점 더 언어습득은 어려워 질 것입니다. 이방인이 공동체 안으로 걸어들어 올 용기를 가지려면 먼저 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들의 배려와 돌봄이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공동체는 어떤 사람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고 배타적이라면 이방인은 공동체에 소속되기도 전에 상처를 받고 떠나갈 것입니다. 부디 16세 어린 소녀가 우리 문화에 잘 적응하고 학업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런가하면 마을의 한 할머니는 눈으로 풍이 오셔서 시력이 급속히 나빠지셨습니다. 주일 예배 후 항상 식사를 하고 가셨는데 근래 몇 주는 식사를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함께 식사하는 것도 불편하다고 하셨습니다. 주일예배가 모두 끝난 후 반찬을 싸서 방문을 해 보니 할머니는 봇물 터지듯 눈이 잘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들을 쏟아내셨습니다. 며칠 전에는 나물을 먹으려고 무치셨는데 그릇 위에 파리가 앉아 있는 것 같아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셨답니다. 그런데 그 잡은 파리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무쳐놓은 나물을 그냥 다 버리셨다고 합니다.  바깥일을 하려고 해도, 텔레비전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려고 해도, 필요한 물건을 하나 찾으려고 해도 이제 모든 것이 예전같이 않아 속이 상하십니다.

   저를 보며 하시는 말씀이 “젊을 때가 제일 좋아. 돈 없어도 돼. 젊은게 최고야.” 하시길래 “할머니 그럼 혹시 다시 젊어지면 뭘 하시고 싶으세요? 제가 지금 젊으니 할머니 말씀을 참고해서 그걸 한 번 해 볼께요.” 했더니 “젊어지면 열심히 일해야지. 어떤 사람은 이제 자식들 다 커서 돈도 안 들어가고 혼자 편하게 사니까 얼마나 좋으냐고 하는데, 아니야 그건 틀린 말이야.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자식들 키울 그때가 제일 좋아. 이제 내가 갈 데가 어디가 있어. 눈도 안 좋으니 더 못 다니고 다시 좋아질 가능성은 없어. 이제 내가 갈 데는 한 곳 뿐이야.” 하십니다.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도 큰 복입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은 그저 가서 이야기만 들어드려도 좋아하시는데 제가 자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죄송합니다.

    오래 떨어져 살다가 만난 엄마를 제외하면 먼 이국땅에서 친구 한 명 없는 16세 베트남 소녀는 외로움과 낮설음을 이겨내며 한글을 익히고 있습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상심한 할머니도 마음을 달래며 한의원에 침도 맞으러 가고 해질녘 차가 없는 시간에 산책을 하며 건강을 챙겨나가고 있습니다. 삶의 전환점, 혹은 위기상황에 있는 이들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녀는 설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던 할머니는 연로해지실수록 믿음이 자라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에 마음이 유연해지고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보면 저도 소망이 생깁니다. 저도 늙어갈 것이고 낮선 상황에 처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을 찾으면 믿음의 공동체가 가족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저희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감싸주고 돌보는 가슴이 따듯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하루 젊음의 가치를 알고 부지런히 일하며 믿음의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