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대단했던 폭염은 입에 올리기가 꺼려지지만 꽃을 보고는 꺼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숲 가장자리에서 볕을 고스란히 받아야하는 이 닻꽃은 개체수가 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찍 피었다 서둘러 지고 있었습니다. 한해살이나 두해살이풀들은 뿌리가 살아있는 여러해살이풀들과 달리 그해의 기후에 다음해의 생이 달려있는 것이지요. 위기가 닥쳐와 조급하게 삶을 마무리하려는 그 가녀린 생이 안쓰러웠습니다.

유난히 화려한 빛깔도 아니고 현란하게 눈에 뜨이는 모양도 아닙니다. 꽃받침이 네 갈래로 갈라져있고 갈라진 조각이 뾰족합니다. 그 모양이 배를 정박할 때 사용하는 ‘닻’을 꼭 닮았습니다. 8월, 뜨거울 때 산에 올라 꽃을 보며 바다를 생각할 수 있어서일까요. 전국에서 이 꽃을 보려고 먼 길을 달립니다. 남쪽 땅에서 이 꽃을 볼 수 있는 곳은 가평 화악산과 인제 대암산입니다. 멸종위기 2급 식물목록에 올라있지요.

햇살은 뜨거워도 산위에서 만나는 바람은 여름의 끝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북쪽의 들녘은 누렇게 변해가고 있더군요. 그 뜨거웠던 햇살이 필요했던 곳이 있었구나..생각하니 더위를 견뎌온 시간이 억울하거나 고통스럽지만은 않습니다. 씨앗 맺기에 목숨을 다하는 한해살이풀들의 수고로움만 하겠습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조금씩 기후가 뜨겁게 변해가면 닻꽃처럼 북쪽이 고향인 꽃들은 점점 만나기 어려워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