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한 폭염 속에 찾아간 그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꽃들이 자리 잡은 곳은 시원하고 촉촉한 물가가 아니라 계곡 건너편 척박한 석회질 바위 위였지요. 예전에 찾아갔던 옥천 병아리풀의 호텔급 터에 비하니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그곳은 ‘자생지보호’라는 간판이 서있고 바위지만 이끼가 제법 깔려 있었으며 얇지만 흙도 폭신해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잎과 꽃, 그 앉은 자태에서 여유로움이 풍겨나더군요.

작은 꽃들 앞에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각시~애기~좀~왜~벼룩~... 병아리도 그중의 하나이지요.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돌틈이나 풀숲에 숨어있는 병아리풀은 존재를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분홍빛 병아리 벌어진 입에는 노오란 구슬이 물려져있지요. 작아서이기도 하지만 노른자를 물고 있어 ‘병아리풀’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 해봤습니다.

꽃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피어납니다. 어느 해는 추석 즈음에 만났는데 아래서부터 피는 꽃차례 그대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었습니다. 생명이 있으니 당연히 감내해야할 숙제이나 매달려 있는 다음세대가 참 버거워 보이더군요. 그 와중에도 화려하게 빛나는 진분홍 꽃빛은 돌틈에 몸 붙이고 부릴 수 있는 가장 큰 객기인 듯 여겨져 기특하기도 합니다. 오늘 강원도 비소식이 더없이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