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아는 지혜

나뭇잎 위에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떳다. 새벽 두시다.

빗소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은 몇 달 전부터 새벽 2시 쯤에 잠에서 깨어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다.

나도 육제적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징표다.

어제는 모처럼 좋아하고 존경하는 대학 후배 R와 함께 오락가락 하는 비를 맞으며 골프를 쳤다.

긴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 전에 문득 R가 생각이 나서 '시간이 되면 골프나 치자' 는 맷시지를 보냈더니 당장 "좋습니다.

몇 시쯤이 좋겠습니까?" 하고 응답을 해왔다.후배 R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혼자서 가끔 찾는 'Generals Ridge 골프장에서  오전 10시에 만나자' 고 일방적으로 약속시간과 장소를

 통보했다.

한국의 이문재 시인은 '농담' 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무쳤을 때/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함께 골프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R 와 인연은 내가 이 지역 대학동창회 회장 일을 맡고 있을 때 그가 총무로 도와주면서 부터 시작 되었다.

내가 골프 동우회 회장을 맡았을 때도 그는 총무로 수고해 주었다.

그는 맡은 일들을 표나지 않게 뒤에 숨어서 묵묵히 수행해내는 타입의 인간이다.

솔직히 말해서 R와 나는 성격적으로 아주 대조적이다.

나는 외형적인 성격이고 그는 내성적인 성격이다. 나는 말이 많는 편이고 그는 말수가 없는 편이다.

나는 감성적이고 그는 이성적이다. 나는 일을 벌리는 타임이고 그는 일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타입이다.

나는 공격적이고 그는 방어적이다.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둘이다 술을 좋아하고 노래방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R를 인간적으로 주위의 지인들 그 누구보다 좋아하고 신뢰한다

(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는 모른다).

R 는 한국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에 이민을 와서

 컴퓨터 학사학위를 딴 후에 IRS에 평생 근무하다가 3년 전

60 세 나이에 조기은퇴를 했다.

내가 여짓껏 풀지 못하고 있는 그에 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는 각분야에 걸친 그의 해박한 지식의 원천이다.

특히 연예계 정보에 관한한 그는 박사급 수준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를 듣다가 의문이 생기면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당장 회답이 나온다.

그의 부인 Dr. C 는 나의 치과의사다. 그녀도 올해 60세 나이로  은퇴를 했다.

내가 R 부부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 부부가 평소에 나에게 보여준 무욕의 삶일 것이다.

 '안정에 대한 집착에서 불안감이 비롯되고, 그 불안감이 탐욕을 낳으며, 탐욕은 타인과 비교심을 낳고,

비교심은 경쟁심을 낳으며, 경쟁심은 시기와 질투를 낳으며, 시기와 질투는 불행을 낳는다.' 는 것이 나의 불행에 대한 지론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지인들을 보면 그 직업이 성직자든, 독실한  신앙인든, 철학자든, 교수든... 경쟁심과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있어 보인다.

사둔네 팔촌이 논을 사도 심한 배앓이를 한다. 인류학교 츨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유명

인사들일 수록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그들은 경쟁이나 시기 질투의 대상을

가장 가까운 인친척들이나 절친한 친구들 중에서 찾는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공자의 소인과 대인의 구분을 이렇게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

'소인은 경쟁의 상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는 사람이고 대인은 경쟁의 상대를 자기 자신속에서 찾는 사람이다' 라고.

그런면에서 내가 알고 있는 R 는 인류학교 출신 성공한 직업인임에도 불구하고 대인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만나면 늘 마음이 편하다.

R 부부는 둘이 다 그 수입이 보장된 안정된 직업을 60세에

 팽개치고 60세에 조기 은퇴를 감행했다.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들이다.

나도 조기 은퇴를 하고 싶었었다. 그래서 주치의사이자 친구인 Dr. Lennon 과 은퇴 시기를 두고 상의한 적이 있었다.

"은퇴에 가장 적합한 육재적 나이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나의 질문에 Dr. Lennon 은

" 나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은퇴에 대한 일정한 나이 기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재미를 못 느끼면 그 때를 은퇴하라는 신호를 받아들이 십시오." 하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나도 62세에 쏘설시큐리청에  조기은퇴를 신청했었다.

남은 여생을 노래를 부르며 미국 양로원들을 돌며 봉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페라가수로부터 6개월 개인지도 도 받았다.

경제적으로 바보짓이라며  나의 조기은퇴 신청을 만류하는 회계사의 반대도 만만치가 않았었다.

결국 경제적 이유 때문에 나는 조기은퇴 결심을 실행하지 못하고 5년 가까이 더 일을 했어야 했었다.

나에게 조언을 주었던 Dr. Lennon 도 올해 갑자기 나에게 은퇴를

 선언해 왔다. 그 이유인즉 " 평생 의사로만 일하다보니  내가 너무 좁은 길만 걸어온 것 같아요.

하루라도 빨리 은퇴해서 내가 걸어보지 못했던 넓은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어요." 였다.

매사에는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헤어질 때가 있고,

시작할 때가 있고, 물러날 때가 있다.

나는 그 때를 노래한 구약성경의 전도서를 사랑한다.

때를 아는 지혜야말로 늙어가면서 배워야할

 가장 필요한 지혜다.

무욕은 그 때를 깨우쳐주는 근본바탕이다.

이번 나의 여행은 때를 아는 지혜를 배우는

한 과정이될 것이다.

08/04/2018 아침 메모

버지니아 숲속에서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