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보고 있어 땅나리’ 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지요? 나리중 일찍 피는 털중나리나 참나리에 비해 어쩐 일인지 얼굴의 주근깨도 덜 보이고 빛깔도 침착합니다. 이 붉은 꽃빛은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색깔이지요. 저 자그마한 얼굴은 여섯 살 소녀의 뺨을 보는 듯 통통하고 투명하나 풍기는 느낌은 야무진 스무 살 처녀입니다.

여름하고도 젤 한복판에 꽃을 피웁니다. 더위에 강한 만큼 추위에는 약해 중부이북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한줄기 꽃대에 여러 송이가 모여 피기도 하지만 딱 한 송이만 매달고 있는 외로운 꽃대도 눈에 띱니다. 눈길이 한 번 더 가지요. 다른 나리꽃들에 비해 꽃이 작고 깜찍해서 금방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이 뜨거운 태양아래서도 표정은 더없이 해맑고 날씬한 몸매는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고자해서 일까요. 아니면 부끄러워서 일까요. 푸르른 하늘이 궁금하기도 하련만 끝까지 바닥을 응시하며 뜨거운 자신의 생을 침묵으로 지킵니다. 그 고지식함에 땀에 젖은 등어리가 어느 한순간 서늘해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