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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말고 연보하자"성경에 '돈 바치는 예배'란 없다
신성남  |  sungnam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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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7월 29일 (일) 19:22:31
최종편집 : 2018년 08월 02일 (목) 01:23:05 [조회수 : 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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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초기 교회는 '헌금'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연보'란 말을 썼습니다(고후8:20). 한국교회 역시 60년대까지만 해도 교회 모금을 연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연보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헌금이란 용어가 새로 등장했습니다.

 

헌금과 연보의 차이

어떤 분들은 "그게 그거 아니냐?"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이 두 용어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본래 신약 성경의 연보(eulogia)는 '모금'이라는 뜻으로 '사람들 사이의 나눔'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헌금(doron, gorban)이란 '예물'의 뜻으로 '하나님께 바침'을 강조하는 의미가 강합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연보는 '사람과 나누는 돈'이고 헌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돈'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것이 더 신도들에게 약발이 좋을까요. 이 대목에서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어떤 교회들이 굳이 연보를 헌금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이유는 결국 돈을 더 걷기 위함입니다.

신도들에게 이웃과의 '나눔'을 강조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바침'을 강조하는 게 훨씬 큰 수거 효과를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교인들은 자신의 형제들에게조차 별로 나누어 주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께는 꼭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교회 헌금에 열심인 경우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는 심각한 기만입니다.

본래 과거 '개혁한글' 번역본의 구약에는 '헌금'이란 용어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누가복음 21장에 단 2번 나오는데 그것도 사실 부자들이 연보궤에 넣은 돈이므로 실제는 연보인데 이를 굳이 '헌금'이라고 억지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개혁한글' 성경엔 실제로 '헌금'이란 용어나 제도 자체가 아예 없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반면에 '연보'라는 용어는 구약에 1번 신약에 12번 도합 13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다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번역판으로 오면서 이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번역자들은 의도적으로 연보를 8곳으로 줄였습니다. 그리고는 거꾸로 연보로 번역되어 있던 곳은 헌금으로 바꾸어  오히려 헌금이란 용어는 8곳으로 증가시켰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판은 개선된 게 아니라 오히려 개악이 된 셈입니다.

 

성전 연보궤의 정신

그 대표적인 구절이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역대하34:14)"입니다. 성전의 연보궤에 보관된 돈은 분명히 연보인데 이를 구태여 '헌금'으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이게 번역자가 무식해서 실수한 건지 아니면 고의적인 건지는 성도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습니다.

예수님 당시 헤롯 성전에는 입구부터 시작하여 13개의 연보궤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제사할 때 바치는 제물과는 무관하게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걷는 돈이었습니다. 즉 이웃과 나누기 위한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연보를 바친다'는 말보다는 '연보를 낸다'는 말이 더 바른 표현입니다.

그런데 본래 제대로 잘 번역되었던 '연보'라는 용어를 개신교가 굳이 '헌금'으로 바꾼 이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의 일부 교권주의자들이 성경 원어마저 그 의미를 변개하며 종교적인 장난을 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본래 유대의 성전에는 오직 연보궤만이 있었고 제사 중엔 제물 외에 그 어떤 헌금 행위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전 제사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은 어린 양 예수님을 의미하므로 신약의 예배에서는 별도의 제물이나 예물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그러므로 오늘날 현대 예배에서 "하나님께 돈을 바치라"는 가르침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교인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의 돈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이웃을 구제하기 위한 자발적인 연보 외에는 그 어떤 돈도 성도들에게 요구한 기록은 없습니다("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롬15:26). 사도들의 초기 교회는 교인들에게 그 어떤 십일조도, 그 어떤 예물도, 그리고 그 어떤 헌금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헌금'이란 용어는 '용도 변경'의 꼼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돈을 직접 주시지도 않고 직접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다만 가난한 빈민, 과부, 그리고 나그네에게 너희들이 직접 연보를 걷어서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수 서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게 바로 구약 성전 연보궤의 목적이며 동시에 신약 교회의 연보 정신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초대교회에서 공식적인 모금이란 오로지 '연보' 뿐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물론 큰 틀에서 보면 사람들 사이에 나누는 연보 역시 주님을 섬기는 귀한 행위라고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25:35-36).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성경 원문까지 훼손하면서 '나눔'보다 '바침'을 은근히 강조하고 돈 걷기에 몰두하는 행위는 비성경적입니다. 이는 연보의 근본 목적인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에서 이탈하여 그걸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듭니다.

본래 성경의 연보는 구제를 위한 목적으로 단 한 종류밖에 없습니다. 헌데 요즘 헌금은 무려 85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단한 '용도 변경'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선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가야 마땅할 교회 돈의 95% 이상이 엉뚱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이 먹고, 마시고, 건물 짓고, 비품 늘리고, 그리고 직분자 인건비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 '헌금'이란 용어와 제도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모금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신구약 성경 어디에도 '헌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바치는 제사나 예배란 결단코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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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216.79)
2018-07-31 20:52:16
한마디로 줄이면...
捐補(연보)가 삼천포로 빠져 獻金(헌금)으로 변질되었다굽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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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이충범 (14.33.235.8)
2018-07-31 19:41:34
헌금이면 어떻고 연보면 어떻습니까?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면 되는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면 되는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것이 돈일까요? 마음과 정성이죠.
어떤 젊은이는 돈이 많아서 결국 고민하다 예수님을 떠나버렸죠.
어떤 여인은 10개월치 급여(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향유를 한꺼번에 부어드렸죠.
돈이 문제입니까? 사실 주님을 위해 우리는 생명까지 드려야 하겠지요.
순교하신 스데반과 제자들과 바울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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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윤법규 (122.101.20.78)
2018-07-30 07:11:01
그동안 잘 몰랐던것을 하나 또 알게되는군요.
원례는 연보인데 헌금이란 단어로 대체가 되었고 성경이 개정되면서 성경문구에
있던 연보가 헌금으로 변한것이군요.
위에 컬럼리스트가 지적한대로 헌금과 연보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돈을 사람과 나누는곳에 쓰기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기를 원하는것은 예물을 드리는 사람으로서 당여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하나님께 드린 예물중에 일부는 사람들과 나누는곳에 쓰이니 목적은
같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해석은 확실하게 하고 그부분을 설교할때 목회자분들이 성도들을 잘
이해를 시켜주는게 더 이치에 맞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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