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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통치자는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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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7월 20일 (금) 18:07:17
최종편집 : 2018년 08월 25일 (토) 00:46:16 [조회수 :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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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권세인가

 

김종필 전 총리는 숫한 일화에,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겠다고 하면 교도소밖에 갈 일이 없다.’ ‘자의 반 타의 반’ 등의 말들로 이루어진 촌철살인의 어록과 함께 그 명암이야 어떻든 한국 정치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필자는 그의 서거 소식에 그가 남긴 어록의 어떤 예리한 말보다, 그가 인용했던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13:1)라고 하는 성경말씀이 먼저 머리에 떠올랐다.

1974년 11월 9일, ‘한국 기독실업인회’가 김종필 총리를 초청해서 ‘국무총리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며 ‘그러니, 교회가 당연히 유신 정권에 복종하는 것이 옳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했으니 박정희 유신정권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였다.

당시, 국민들은 눈이 있어 본 것도 못 본 체해야 했고, 귀로 들은 것도 못 들은 척해야 했다. 입이 있어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었다. 정권의 어두운 진실에 대한 말, 그것은 금기어였다. 정보요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쫙 깔려 있어 밤에는 쥐가 되어 듣고, 낮에는 새가 되어 들어 정권의 비난을 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끌어다 반쯤 죽여 놓았으니 왜 아니겠는가. 일본 속담에 ‘벽에 귀가 있다(壁に耳あり)’는 게 있는데, 당시의 현실이 꼭 그래 골방에서 친밀한 사람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에서조차 ‘박정희’의 ‘박’자도 꺼내는 게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그 같은 공포분위기 속에 청년시절을 보낸 필자이다 보니 김종필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그가 인용했던 그 말씀이 먼저 뇌리에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당시 필자는 일천한 신앙이었으나 그의 말과, 그 말을 듣고 ‘아멘’을 연발한 목사들에게 분노했다. 그러나 소심한데다가 겁까지 많은 필자이다 보니 이불속에서 주먹을 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 그 모두가 흘러가 버린 과거사가 되어 이 땅의 민주주의에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아직 답보상태도 아닌 퇴보의 길로 치닫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당시야 몸을 사리려고, 그래야 제 앞에 큰 감이 놓이리라는 생각에, 아부성 ‘아멘’을 읊어댔을 테니 그렇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넋이 나간 사람들이 목사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기독교가 욕을 먹는다 해도 할 말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저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고 그분의 뜻이 어떻다 하지만, 조금만 균형감각을 유지한 채 성경말씀을 읽는다면 그 같은 언어도단의 망령된 언행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에게 있어 이 같은 말은 들을 가치조차 없는 헛소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옳은 일인가’라고 아직까지도 항변을 멈추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통치자가 하나님을 거스르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롬13:1-2은 분명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니. 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의 말을 한다. 이 말씀만을 따로 떼어 생각한다면 저들의 견해에도 일리가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단들이 성경을 그처럼 부분적으로 떼어내어 전후 문맥을 살피지 않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데에서 출현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롬13:1-2에 이어지는 말씀 몇 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어 보면 이렇다.

통치자들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나 두려운 존재이지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통치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통치자는 결국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벌을 대신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기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도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롬13:3-5)

이것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도 뭔가의 말이 더 필요한가.

통치자(권세)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벌을 대신 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사람은 그 통치자를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에게 칼(공권력)을 쥐어 준 것은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이다. 통치자에게 하는 복종은 하나님의 상과 벌 때문만이 아니라 믿는 사람으로서의 양심에 거리낌 또한 없이 해야 한다.

이런데도 악을 행하는 악한 통치자(권세)에게조차 복종해야 하는가.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의) 통치자가 국민들을 탄압하며 불법을 저지르는데도 복종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리하는 것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불복하는 것이다.

혹자는 데모라든가 시위와 같은 말만 들어도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번의 촛불집회를 향해 적대감을 보이는 목사들, 기독교인들이 많음을 확인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악은 혁명이나 제도개선 같은 것으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형태만 바뀔 뿐이지 악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께서 돌리시는 것이니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염병을 던지며 극렬한 데모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이 나라에서 악이 사라졌냐고 한다. 링컨이 노예를 해방시켰지만, 노예라고 하는 이름만 사라졌을 뿐 지금도 노예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느냐고 한다. 틀린 말이라고 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에 비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장했는가. 그리고 지금 노예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해서 그들이 옛날의 노예와 똑같은 생활을 하는가.

 

크리스천은 보수여야 하는가, 진보여야 하는가

 

이 세상에서의 완전한 천국은 있을 수 없다. 조금씩 나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일 뿐이요,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의 하늘나라는 사회나 국가가 아닌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이루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께서 돌리시는 것이 사실이나, 인간들을 통해, 우리들을 통해 그리하시는 것이다.

필자는 어제 인터넷을 통하여 벧전2:18-25을 본문으로 하는 설교 한 편을 들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본문의 첫 부분인 18절 말씀이다.

이 본문이 기록되었던 당시에는 ‘사환’ 곧 ‘종’은 인격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예수를 믿고 자신들에게도 인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종 아닌 다른 사람들이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들도 그리 할 수 있는 인격의 주체로서 무엇인가를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에게 악한 짓을 하는 주인을 용서해 줄 수도, 참아 줄 수도 있는 선택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설교는 이런 내용으로 진행 되어 갔다. 필자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좋은 설교라는 생각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설교자이 입에서 뜻하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시위를 하고 데모를 하며, 혁명이나 반란을 일으키고 제도를 뒤엎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겉모습만 보고, 깊이 해석할 줄 모르니까 기독교를 꼴통 보수집단처럼 욕을 한다.

필자로서는 그 좋은 설교 도중에 왜 ‘시위’ ‘데모’ ‘혁명’ ‘반란’ ‘제도전복’ ‘꼴통 보수집단’과 같은 표현이나 개념을 끼워 넣어야 했는지 그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크리스천들은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경정신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보수가 됐건 진보가 됐건 무엇이 됐건 성경정신에 조금이라고 가까운 쪽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이 크리스천이다. 조금이라도 더 바른 길로 가려하고, 조금이라도 더 사람을 존중하고, 조금이라도 더 진실하고, 예수께서 ‘이 작은 자’라 하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쪽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크리스천이다.

‘권세’에 해당하는 ‘정권’에 따라야 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이익’에 반하거나 악행이 심할 때는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부의사를 분명히 표해야 한다. 시위도 하고 데모도 하고 촛불도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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