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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일인가요?— 하나님의 일을 회칠한 무덤으로 만들지 말라 —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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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7월 02일 (월) 03:16:40
최종편집 : 2018년 08월 25일 (토) 00:45:52 [조회수 : 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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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 게 하나님의 일인가, 내가 해야 할 나의 일인가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일을 하기 바란다. 생업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어 그 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일이란 대개 교회에서 하는 일이요, 전도며, 불우 이웃을 돕는 봉사 같은 것들이다. 날마다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는 일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하나님의 일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요6:29), 곧 예수 당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어떤가. 예수 믿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일이라고 느껴지는가.

솔직히 말해 필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부정하다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제정신이고서야 어떻게 예수님 말씀을 하니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필자는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기보다 내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 어쩌랴. 예수를 믿어 복을 받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면 나를 위한 나의 일이지 그게 어떻게 하나님의 일인가 하는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크고 크신 사랑을 본다. 나를 위한 나의 일을 당신의 일로 인정해 주시니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식이 받은 복을 자신이 받을 것처럼 기뻐하는 부모의 마음도 그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방금 여력이 없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일이란 교회일, 전도, 봉사, 기도 같은 것들이라며 약간은 부정적으로 말했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 예수를 믿는 그 믿음으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교회일이나 전도, 기도 같은 것을 믿음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 같은 일들이 믿지 않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니기는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진정한 것이냐 하면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를 바르게 믿는 것이 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빌2:5 참조)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우리 각자의 안에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 그것보다 바르게 예수를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죄투성이인 인간들로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분의 마음을 그대로 품는다는 것은 가능치 않으나, 그 마음을 본받으려 노력하여 조금씩이라도 닮아 갈 수는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러니 은혜이다.

설혹 기도하고 노력했음에도 변한 게 전혀 없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과는 같지 않다. 기도와 노력 그 자체만도 성과로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작은 물고기가 거센 물결을 거슬려 올라가려 안간힘을 다 썼는데도 힘이 모자라 떠내려간다 해도 그 노력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떠내려간다 해서 죽은 물고기가 그런 것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으니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죽은 물고기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떠내려가서는 안 된다. 죽을힘을 다해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힘이 모자라 떠내려갈지라도 그리하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고 하는 아득히 멀고 높은 푯대를 보고 지레 겁부터 먹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닮아 가려 기도하며 노력하면 된다.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니 날마다 그것을 먹고, 그대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 등등의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말들을 되뇌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말씀을 하나의 관념으로 자신의 내면에 묶어 두어서는 그것을 사장시키는 게 된다.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지식나부랭이가 된다.

말씀이 어쩌고, 사랑이 없으면 어떻다 하면서 생활 쓰레기 같은 것조차 분리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내놓는다면 그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이 되는가. 명절 때마다 고속도로변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곤 하는데, 그에 일조하고도 믿음을 말한다면 그 믿음이라는 것은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아파트 현관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데에 떨러져 있는 휴지조각 하나를 줍는 것도, 좁은 인도를 걸으며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 하는 작은 배려 하나도 다 예수의 마음을 본받아 가는 아름다운 열매이다. 양보운전이나, 질서를 지키려는 마음의 자세는 그 자체로 믿음의 행위가 된다. 도덕과 윤리적인 삶을 살려는 노력은 예수의 마음에 한층 가까워지게 한다.

 

 

말씀과 역행하며 드리는 예배

 

서울의 어느 대형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대형교회라고 하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것이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말씀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교회들을 선도하는 대형 교회도 있는데, 그런 교회, 아니 그런 교회의 담임목사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느 날 한 여인이 보낸 편지가 목사에게 배달되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제가 암으로 힘겹게 투병하고 있는데, 장로인 남편은 끈질기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여자가 생긴 것입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남편은 여자를 데리고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로 옮겨 가서 지금 아주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주일 대예배 때 이를 사실대로 말한 뒤, 그 장로님께서 이 자리 어딘가에 계신다면 장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왜 예배를 드리십니까. 윤리적으로 최악인 장로님 같은 사람의 예배를 장로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심하게 책망했다.

기왕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누군가의 간증 하나를 덧붙여 소개하고자 한다.

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바빠서 교회일을 포함한 하나님의 일은 할 수가 없었으나 헌금이라든가 그 외의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물질은 힘에 겹도록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리해도 교회일, 전도, 봉사 같은 하나님의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죄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일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하는 요6:29의 말씀에 접하게 되었고, 그 뜻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둠으로 감싸여 보이지 않았던 자신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신앙 아닌 것을 신앙이라고 속아 살았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한다며 나대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이제부터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밝은 빛이 비쳐 하나님의 일 아닌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잘못 보지 않고 바르게 그 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하나님은 손이 짧아서 우리에게 일을 시키는가

 

필자는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릇되게 해 온 ‘하나님의 일’에 대해 말하고, 예수를 믿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도 피력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 각자의 안에 그분의 마음을 품는 것이라는 것도 말했다. 교회일, 전도, 봉사, 기도 같은 일들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의 말도 했다.

우선 기도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7시간씩 기도했다고 자기의 책에 썼다. 항상 잠이 모자라 직장에서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기도는 왜 하는가. 아무리 열심히 오랜 시간을 한다 해도 신앙으로의 자기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좋은 기도가 되지 못한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성실한 모습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저해가 된다면 그것은 사단이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칠 일이다. 기도 자체가 목적이 되는 기도, 길게 할수록 좋다는 식으로 하는 기도는 속빈강정이 되기 쉽다.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다고 책망하시며 겉은 아름답게 보이나 안은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말씀하셨는데, 우리도 자칫했다가는 그 같은 책망을 들을 수 있다. 앞에서 나열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들도 예수의 마음을 닮으려는 신앙의 자세로 하지 않으면 회칠한 무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의 줄기를 약간 틀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서비스업, 특히 요식업의 현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손님을 맞는 예절을 교육시킨다. 말씨는 물론 인사할 때의 허리 각도까지 가르친다. 웃는 표정도 연습시킨다. 그런데 웃는 표정 연습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도 교인들에게 그런 연습을 하라고 가르치는 목사가 있다. 그런가 하면 목사 자신도 거울을 보며 그런 연습을 하기도 한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남에게 자신의 인상(image)을 좋게 보이기 위한 것인데 뭐가 나쁘겠는가.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에 더해, 아니 그보다는 나를 남에게 어떻게 보이게 하느냐에 신경을 쓰기에 앞서 내가 남을 어떠한 눈으로 보느냐에 더 마음을 쓰는 것이 좋다. 마음이 따스하고 이해심 깊은 사람은 남을 보는 눈길도 따스하고 부드러운데, 그런 눈길은 나의 이미지를 상대방의 마음에 호감이 가도록 새겨지게 한다. 연습하여 짓는 웃음보다 속마음이 그대로 나타난 진심어린 표정이 상대방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연습하여 짓는 표정은 회칠한 무덤이 되기 쉬운 면이 있다. 그러니 그런 연습보다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데에 더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 각자의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에 가서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 해도 예수의 마음과는 다른 마음으로 한다면 하나님의 일 아닌 사단의 일이 되기 쉽다. 가정주부가, 아니면 한 가정의 가장이 가정의 일보다 교회 일에 더 매달린다면 그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되겠는가.

남의 교회의 교인들을 부추겨 자기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거나, 예수를 믿으면 하는 일마다 잘되는 복을 받는다고 사기를 치는 것을 전도랍시고 한다면 아마 하나님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이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불우이웃돕기를 한다며 다들 보라는 듯이 얼굴을 내밀고, 기도를 욕심 채우기의 수단쯤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게 어떻게 진정한 봉사, 진정한 기도가 되겠는가.

이 같은 맹점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달리 있지 않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마음’으로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일이 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것이 되고, 그것이 곧 진정한 하나님의 일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힘이 모자라서, 손이 짧아서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일을 하라 시키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서 걸맞게 성장하기를 바라서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닮아가길 바라서이다. 다시 말해 믿는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길러가기를 바라서이다. 믿는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갖추어 가는 것이 누구도 아니라 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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