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전쟁이 끝날 모양이다. 거의 70년이 다 된 전쟁이 이제 마침내 서서히 끝나가는 모양이다. 실제로는 거의 체감 없이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한반도는 지금도 여전히 전쟁이 진행 중인 곳이다. 휴전선이라 불리는, 작은 반도의 남과 북을 가르는 분리선 역시 나라의 경계가 아니라 잠시 전쟁을 쉬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분리선이다. 지금 어느 쪽이 먼저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불법이 아닌, 단지 쉬고 있다가 다시 시작한 것뿐인 위태로운 현실의 공기를 우리는 지금도 마시며 살고 있는 것이다. 종전이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나서야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전쟁 중인 우리의 현실을 알아챈다.

전쟁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에 읽고 있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쟁에 대한 민낯을 특별하게도 여성들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으로 전통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적 산문에 가깝다. 책은 전쟁에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약 200명의 여인들의 목소리를 빼곡히 담고 있다. 여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설명을 미리 보았기에 책을 읽기 전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처참한 피해를 입는 것이 여성들이니 그 피해담을 담은 얘기겠거니 지레 생각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책은 직접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여인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 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독일군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자원해 나갔던 많은 여인들은 고작 소녀의 나이에 참전했다. 임신한 여인이 새 생명의 심장이 뛰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지뢰를 끼고 날랐다는 이야기, 그것이 스탈린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이야기, 총부리에 매어놓은 제비꽃 때문에 징계를 받아 세 번 더 추가 임무를 수행해야 했음에도 꽃을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는 이야기, 생명을 주는 여성들이 생명을 뺏는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는 아이러니, 여인들의 몸과 영혼으로 체험한 전쟁은 영웅을 생산하고 의무감과 정의감에 고취되어 극적인 승패를 추억하는 남자들의 전쟁, 역사책으로 익숙한 전쟁과는 사뭇 달랐다.

“전쟁터에서는, 말하자면,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이어야 해. 그래야만 하지...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말이야. 만약 사람답게만 굴잖아?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 그래, 뭔가 하나쯤은... 아직 자신이 사람다울 때, 그 사람다웠던 모습 하나는 기억해둬야 해...” 전쟁은 그것에 아무리 아름다운 치장을 한다 하더라도 사람을 더 이상 사람일 수 없게 만드는 괴물일 것이 분명하다.

통일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눈앞에서 ‘통일’이라는 말이 실제의 사건이 될 조짐을 보이니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진다. 내 생애에 두 개의 나라 또는 정부가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는 것을 보기는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어쩌면 자유롭게 서로 말 나누고, 서로 왕래하고, 서로 장사하는 모습은 볼 수 있겠지? 전쟁발발 기념일을 앞두고 현실로 다가오는 전쟁종식의 소식에 긴장된 소원을 다시 꺼내 느슨하게 만든다. 그리고 느슨하게 된 소원은 왠지 더 진짜처럼 여겨진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