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산교회 ⓒ 당당뉴스DB

 나는 올해에도 우리 교회 교인들과 함께 기독교 선교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이번에 우리가 간 곳은 김제 지역이었는데,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금산교회였다. 금산교회는 ‘ㄱ’자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교회이다. 그동안 여러 사람에게서 그 교회가 ‘ㄱ’자로 지어진 것은 남녀유별을 강조하는 유교적인 관습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직접 가서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감명 깊었다.

출입구도 남녀가 출입하는 곳이 달랐고 강단은 ‘ㄱ’자가 굽어진 곳에 2단으로 높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교자들이 남자였기 때문에 강단과 강단 왼편에 있는 여자석 사이에 커텐이 드리워 있었고, 남자석과 여자석 사이에도 두 편을 가로막기 위한 커텐이 있었다. 이 커텐은 1940년대에 가서야 걷혔다고 한다.

이 교회의 상량에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이 상량문이 남자석의 상량에는 한자로, 여자석의 상량에는 한글로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는 선교사들이 남녀의 유별이 심한 한국에서 ‘ㄱ’자로 교회를 세운 것과 여자를 위한 공간의 상량에 한글로 상량문을 기록한 데서 당시 선교사들이 토착화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교회는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이 지방의 지주 조덕삼의 사랑채에서 1905년 봄부터 예배를 보면서 시작되었단다. 테이트 선교사는 1907년에 이 교회에서 일할 영수로 조덕삼 집사와 이자익 집사를 임명했다. 선교 초창기에 집사들 중에서 영수라는 명칭의 지도자들을 뽑아서 교회의 일을 맡겼다. 영수직은 장로보다 낮은 임명직으로써 영수들이 교회의 모든 살림과 행정을 맡았으며, 목사를 모시든지 장로를 세울 때까지는 설교를 맡기도 했다.

교회를 시작한 지 3년 뒤인 1908년에는 조 씨 문중의 재실을 뜯어서 조덕삼 영수의 과수원 자리에 지금의 ‘ㄱ’자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그 다음 해 1909년에 장로를 선출했는데, 그때 많은 사람이 조덕삼 영수가 뽑히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이었다. 마을의 지주였던, 3년 동안 자기 사랑채를 예배장소로 제공한, 그리고 이 씨 문중의 재실을 뜯어다가 자기 땅에 교회건물을 세운 조덕삼을 젖히고 이자익이 장로로 뽑힌 것이다.

이자익은 마방을 운영하던 조덕삼 영수의 마부였다. 그는 경상남도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김제에 온 타관 사람일 뿐 아니라 조덕삼보다 띠동갑 연하였다. 신분을 보아서도, 나이를 보아서도, 교회에 대한 공헌을 보아서도 이것은 정말 의외였다. 특히 머슴이 주인을 젖히고 장로에 선출된다는 것은 신분의 차이를 중시하는 당시의 사회에서 정말 큰 이변이었다.

당시 이런 경우에는 교회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상례였다. 금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수진 목사에 의하면 1893년에 서울의 연동교회에서 장로투표를 했는데, 양반은 낙선하고 천민인 갖바치 출신 고찬익이 피택되자 양반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그들이 나와서 세운 교회가 종묘 부근에 자리한 묘동교회였다.

그리고 서울 인사동에 자리한 숭동교회에서는 양반과 백정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이 교회에서도 1894년에 장로 투표를 실시했더니, 양반은 당선되지 않고 백정인 박성춘이 피택되었다. 그러자 양반들이 천민 밑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소안동으로 나가서 소안동교회(지금의 안국동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금산교회의 조덕삼 영수는 이자익 영수가 장로로 피택된 그 자리에서 이자익 영수는 자기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하다고 말하면서 이작익 영수가 장로에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자익 장로를 모시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다고 공언했다. 조덕삼 영수의 이러한 태도에 공동의회의 사회를 보았던 테이트 선교사를 비롯해서 마음조리고 있던 많은 교인들이 안도의 숨을 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것은 정말 감동의 순간이었다.

조덕삼 영수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외에도 골로새서 3:10-11, 고린도전서 12:13, 로마서 2:10-11 등 여러 곳에서 예수 안에서는 인종의 차이, 신분의 차이, 남녀의 차이가 없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에서 뿐 아니라, 흑인을 차별한 미국의 교회와 유대인을 차별한 유럽의 교회에서는 신분과 인종을 차별하고 열등한 계층의 사람들을 박해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행하는 자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조덕삼 영수야 말로 예수의 말씀을 실천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었다. 그는 그의 머슴 이자익을 장로로 모셨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장로가 되어 교회를 이끌고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자익을 평양신학교에 보내서 신학교육을 받게 했다. 그리고 이자익이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자 그를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로 모셨다. 이 조덕삼 장로는 15대 국회의원이었고 열린우리당의 상임고문이었던 조세형 장로의 할아버지이다.

우리는 가끔 산정현교회에서 자기의 제자 주기철 목사를 섬긴 조만식 장로의 덕을 칭찬한다.  조 장로는 한국의 간디라고 추앙을 받는 위대한 애국자요 신앙인이었다. 사회적인 면에서 금산 산골의 지주였고 그 산골에 있는 조그만 금산교회를 섬긴 조덕삼 장로는 조만식 장로의 옆에 세우기에 너무 작아 보인다. 그러나 당시에 제자를 목사로 섬기는 것보다 자기 집 머슴을 목사로 섬기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니었을까?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 조덕삼 장로 앞에서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금산교회에서 받은 진한 감동을 안고 교인들과 함께 김제시 만경면에 있는 만경교회로 향했다. 이 교회는 선교사가 세운 금산교회와 달리 한국인들이 세운 교회이다. 만경교회는 1913년 외서리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복음전파와 교육을 통한 민족정신의 선양을 멈추지 않은 신앙공동체였다. 그리고 6.25전쟁이 벌어지고 인민군이 동네를 점령한 후까지도 주일예배를 멈추지 않았다.

6.25때 교회 청년 5명이 ‘반공혁명단’이라는 비밀결사에 가담한 것이 빌미가 되어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혁명당에 가담한 청년들은 전주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교인들 가운데 김종환 목사와 강성진 장로 등은 만경 지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추석 이튿날이었던 9월 27일 새벽에 만경지서에서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살해당한 교인들 중 일부는 지서 앞의 우물 안에서 발견되었고 일부는 무너진 방공호 속에서 발견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김 목사와 강 장로 등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거나 망치로 뒤통수를 쳐 죽여서는 우물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너진 방공호에서는 한 살짜리 아들을 안은 최남인 집사와 시어머니 유성덕 집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반공혁명단에 참여한 청년들은 전주형무소에서 총살당했다. 그때 순교한 만경교회의 교인은 모두 15명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내 친구가 만경교회 교인들의 사체를 우물에서 끌어올리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준 일이 있기 때문에 만경교회의 순교자들의 죽음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왔다. 내 친구는 어느 날 아침 일찍 놀이터에 나가서 같이 놀 동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동네가 아주 조용하고 기다리는 동무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앉아 있으니까 주일학교 여교사와 몇 사람이 지서 우편에 있는 우물로 모였다. 지서는 그가 앉아 있는 놀이터 아래를 지나가는 도로 건너편에 있었다. 그들은 한참 만에 우물에서 사람들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끌어올려진 시신들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왜 목사님을 우물에서 끌어올리는지 궁금해서 우물로 가보려고 몇 발자국 떼어 놓았다.

그때 ‘영수야!’라고 그의 이름을 조그맣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더니 그의 동무가 저희 집 앞에서 양철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면서 어서 자기 집으로 오라고 서둘러 손짓을 했다. 그래서 동무의 집으로 달려갔더니 그 동무의 어머니가 그를 와락 껴안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거기 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거기를 가려는 것이냐!”고 그를 나무랐다. 그는 그 아주머니에게서 공산주의자들이 목사를 비롯해서 교인들을 죽여서 우물에 집어넣었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서성거리지 말고 어서 뒷길로 해서 집으로 가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는 자기도 잡혀 죽을까 두려워서 아주머니가 일러준 대로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자기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서에 잡혀 갔던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피살되었다는 말을 듣더니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 교회의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그때에 보고 겪은 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노라고 말했다.

우리 교인들이 만경교회의 성가대실 옆에 있는 조그만 기념관에 들어가서 만경교회 담임목사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나는 그 우물을 보려고 만경교회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옛 지서 마당에 가보았지만, 그 우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 사람에게 물었더니 수도시설을 하면서 그 우물을 없앴다고 했다. 단지 그 파출소 옆에 있는 면사무소 앞에 서 있는 반공혁명단 추모비가 그때의 참극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선교유적지 답사를 한 날이 마침 현충일이어서 현충일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정읍시 덕천면에 있는 황토현 동학군 전적지를 찾았다. 황토현은 널따란 구릉지였는데, 황토현 마루턱에는 동학혁명기념탑이 서 있고 건너편에는 황토현전적기념관이 있었다. 그 기념관에 들어서니 큰 감나무를 방부 처리하여 전시해 놓았다. 전봉준이 말목장터 감나무 밑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조병갑의 비리를 성토했는데, 전시된 감나무가 말목장터의 그 감나무란다.

고부읍 원님인 조병갑은 자신의 둘째 첩이 죽었을 때 조문을 오지 않았다고 전봉준의 아버지를 곤장으로 쳐 죽였다. 이에 분개한 전봉준이 조병갑의 학정을 폭로하자 많은 농민이 호응하여 부패한 관료들을 척결하자는 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관군이 동학농민군을 쫓아 나서자 농민군들은 1894년 4월 6일 황토현으로 관군을 유인하여 그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동학농민군이 첫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사기가 오른 동학농민군은 정읍, 흥덕, 고창, 장성 등 여러 곳을 점령하고 전주현까지 장악함으로써 혁명의 불길이 번져 나갔다.

그러나 1894년 11월 8일 공주의 우금치에서 있었던 일본군을 포함한 관군과의 결전에서 농민군은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였다. 이후 동학군의 기세는 꺾이고 다음 해 3월 전봉준을 포함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사형 당하자 동학농민운동은 30여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막을 내렸다. 역사가들은 당시 동학농민군이 부르짖은 “민주, 자주, 평등의 정신”이 그 뒤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민주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면서 동학농민운동을 혁명으로 규정했다.

당시 그리스도교는 서학이라고 불려서 동학과 대조를 이루었다. 나는 동학혁명군이 관군에 맞서서 싸운 황토현전적지를 돌아보면서 동학혁명은 상류 계층과 농민 계층의 대립으로 인한 갈등이 그 동력이었다면, 서학인 그리스도교는 금산교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주와 머슴의 화합이 그 동력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갈등을 뛰어넘어서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서울에 온 것이 1885년이다. 레이놀즈 선교사의 조사 정혜원이 전주에 내려와서 전주천 밖 천민들이 사는 은송리에 선교사 주택을 마련하고 동리 사람들을 모아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1893년 6월이다. 이 예배 모임이 전주 서문교회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남장로교회의 선교사들이 전주선교부를 설립한 것이 1895년이다.

그런데 동학혁명은 1894년 2월에 일어났고 그들이 전주현을 장악하자 그때에 전주에 내려와 있던 선교사들이 신변의 위험을 피해서 서울로 돌아갔다. 여기서 우리는 동학과 서학이 1894년에 전주에서 맞닥뜨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반과 지주들의 학정과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일으킨 동학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많은 동학인들이 교회를 찾았다. 양반들과 지주들에게 억눌려 살다가 “민주, 자주, 평등”을 찾아서 동학혁명운동에 참여했던 동학인들은 그들이 갈구하던 신분 철폐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발견했다. 이러한 기독교의 가르침이야 말로 그들에게 길이며 생명이었다.

전주의 선교사 주택이 천민들이 사는 은송리에 자리했다는 것과 거기서 전주 서문교회가 시작했다는 사실은 선교사들이 양반들보다는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예수님이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동학혁명이 실패한 후 실의에 빠진 동학인들에게 선교사들의 가르침은 진정한 복음이었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성경 말씀은 신분의 차이로 인해서 고통 받고 있던 사람들에게 정말 반가운 말씀이었다. 한국의 교회가 놀랄 만큼 부흥한 데에는 이러한 인간 평등의 복음이 큰 몫을 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