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그 날에 내가 하늘과 땅에 징조를 나타내겠다. 피와 불과 연기 구름이 나타나고,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붉어질 것이다. 끔찍스럽고 크나큰 주의 날이 오기 전에, 그런 일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호소하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안에는 피하여 살아 남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이 살아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 울고 계시는 주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성령강림주일인 오늘,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든 우리 마음에도 은총의 단비가 내려 생명의 신비와 기쁨을 한껏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한 주간 내내 우리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된 살육이었습니다. 지난 5월 14일은 이스라엘 독립 7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동시에 그 날은 1967년에 벌어진 제3차 중동 전쟁 때 이스라엘에 의해 요르단의 영토였던 동예루살렘을 점령당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대재앙(Nakba)의 날이었습니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동일한 날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날 미국은 텔아비브에 있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랑스럽게 대사관의 현판식을 거행하고 있던 그 시간에 세계 최대 규모의 감옥이라 할 수 있는 가자지구(Gaza Strip)에서는 이스라엘군의 실탄 사격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났습니다. 며칠 사이 사망자만 60여 명에 이르고 부상자는 수천 명에 이릅니다. 고귀한 인명이 그렇게 희생되었습니다. 평화의 꿈은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어쩌자고 바람을 심어 광풍을 거두는 일을 멈추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쟁의 땅에서 울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은 아벨의 피가 스며든 땅이 하늘을 향해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억울한 피는 그냥 스러지는 법이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신원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땅에서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주님의 마음도 찢겼을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눅19:42)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평화를 미워하는 이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가득 찬 부패와 폭력을 보며 사람 지으셨던 것을 후회하셨던 주님의 심정을 알 듯도 합니다.

∙ 갈라진 세상을 깁는 성령님
세상이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택하심을 입은 이들은 더욱 더 평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아슬아슬한 평화의 나무에 물을 주고, 흙을 돋워주고, 바람을 막아주어야 합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마른 뼈의 골짜기가 떠오릅니다. 생기 하나 없는 죽음의 계곡, 그곳에는 마른 뼈들만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가 바람을 향해 대언하자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그 뼈들이 서로 맞춰져 하늘 군대를 이뤘습니다. 우리는 이 비전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숨이 불어오면 역사는 새로워집니다.

오순절에 골방에서 기도하고 있던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생기 충만하게 변했습니다. 그들을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과 공포는 저만치 물러갔습니다. 그들은 골방 문을 박차고 나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예수의 십자가의 의미와 부활의 신비를 전했습니다. 메시지는 단순했습니다. 예수는 불의한 이들의 음모로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행2:24)고, 마침내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예루살렘에 순례차 왔던 이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제자들이 하는 말이 각자 자기들이 살던 지역의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성령 강림절에 일어난 가장 놀라운 일은 사람들이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어 소통하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언어 현상이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성령은 민족, 피부색, 문화, 종교,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어 저 근원의 세계를 열어주었다는 데 주목하고 싶습니다.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원초적 언어‘(primitive language)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기들의 울음소리도 일종의 원초적 언어입니다. 부모들은 그 울음의 의미를 알아차립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소통하게 하는 힘입니다. 성령은 낯설었던 사람들을 이어줍니다. 성령이 임하면 공감과 사랑이 발생합니다. 너와 나를 가르던 장벽들이 무너집니다. 개별적인 자아를 넘어 공동체를 이루게 만듭니다. 욕심과 이해관계에 따라 세상이 조각나 있는 지금이야말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야 할 때입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말하면서 그 위대한 사역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엡2:14—16)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입니다. 생명이 풍부해집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설 땅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요14:26)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게 만듭니다.

∙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성령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세상은 조각조각 갈라져 있습니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할 때마다 세상은 전장으로 바뀌곤 합니다. 그 속에서는 누구도 샬롬 혹은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경쟁자처럼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늘어나도 행복감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주전 6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요엘 선지자는 자기 시대의 아픔과 절망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꼈던 사람입니다. 요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이어진 포로생활, 그리고 그 이후의 재건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예언을 했습니다. 그때 거듭되는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웃을 너그럽게 대할 마음의 여백은 사라지고, 원망과 질투가 온통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삶은 불확실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비전은 사라졌습니다.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바로 그때 요엘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백성들을 독려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역사를 바라보아야 차이와 불화가 해소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기 때문입니다. 요엘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욜2:13)면서, 백성들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이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겪는 일로 인해 아파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욜2:28-29)

하나님의 영이 임한 곳에서는 모든 차별이 사라집니다. 죄로 얼룩진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몸과 마음에 밴 다양한 편견들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꿈꾸시는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그려집니다. 세상에서는 전쟁과 폭력이 그치지 않겠지만, 주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은 결국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구원받은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를 절묘하게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롬14:8). 유한한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된 채 살아간다면 이미 우리는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은 절망에 빠졌던 이들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힘입니다. 성령은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서먹함의 장벽을 허물고, 친밀한 사귐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야말로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요,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용기의 뿌리이고,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우리를 선물로 내 줄 수 있는 마음의 원천입니다. 성령이 우리들 가운데, 그리고 위태로운 분단 상황 가운데 살고 있는 이 민족 위에 임하시기를 빕니다. 성령강림주일 아침, 저는 감리교 교리적 선언에 나오는 성령에 대한 고백으로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완전하게 하시며 위안과 힘이 되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