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입니다. 해마다 어버이날은 양가에 전화를 드리는 것만으로 지나가게 됩니다.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연휴가 길었지만 주일을 지내고 서울과 대구를 동시에 다녀오기란 불가능해보이기에 올해도 전화를 드리고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어버이날을 지나갑니다. 마음이 없고 정성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대로 자식 노릇을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쓰여서 자진납세 하느라 이렇게 글이라도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심장 수술 때에도 못 가보았고, 두어 주 전 넘어지셔서 입원하셨는데 못 가보았습니다. 자식들 가까이 두고 사는 것이 꿈이셨는데 아들만 근거리에 살고 있고 세 딸은 모두 머무는 시간보다 오가는 시간이 더 긴 곳에 살고 있으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부모님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아이들의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결국 천막을 걷어야 했지만 아이들은 운동회를 즐겼습니다. 작년에 없던 어머니 ‘피구’와 ‘지압판 위에서 닭싸움하기’에 저도 참여하였으나 경기에 임하자마자 바로 지고 나왔습니다. 학생 때도 날아오는 공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던 저입니다. 공이 오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쳐다보다가 그 공을 잡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도망 다니기가 제게는 최선의 방책입니다.

   토요일에는 얼마 전 분교 어린이들이 일심으로 청와대에 써서 보낸 편지 덕에 ‘청와대 어린이날 행사’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본교의 저학년들과 분교 6명의 학생들은 새벽 5시 30분경에 대절한 버스를 타고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전날 운동회를 한 터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씻을 수 없을 것 같아 아이들은 금요일 저녁에 모두 씻고 입을 옷가지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운동회를 마친 운동화도 깨끗이 빨아서 난로 가에서 말렸습니다. 새벽에 일어난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한 뒤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어린이가 떠난 어린이날’을 맞았습니다. 주일을 준비하면서 청와대 어린이날 행사 방송을 보기 위해서 인터넷 방송을 이리저리 찾아보았습니다. 떠나기 전 작은아이의 까치머리를 보고 “00아 머리... 너 여사님 옆자리에 앉는데...”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서 더 열심히 아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행사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니 정말로 작은아이가 영부인 옆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보고 대화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작은 아이의 까치 머리가 얌전해져 있었습니다. 분교 다른 아이들도 자리에 앉아 행사에 참여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열심히 사진과 동영상을 저장했습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아이들이 진부령으로 돌아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청와대에서 받은 선물 꾸러미를 보여주며 “너무 너무 재미있었다.”고 재잘댔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와 영부인 여사께서 어린이 한 사람씩 다 악수를 해 주셨고, 국빈을 맞을 때처럼 나오셔서 맞아 주셨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큰아이는 사자놀이가 가장 인상 깊었고 작은 아이는 의장대의 시범이 정말 멋졌다고 했습니다.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고 하더군요. 만찬장에서 대통령 할아버지와 함께 먹은 도시락 반찬도 세세히 설명을 하고 집무실을 구경하고 온 것도 자랑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한 박 터트리기 대회에서 상대편 박이 더 잘 터지게 스티커가 적게 붙어 있었던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접경지에 거주하는 흘리의 아이들은 2018년 잊지 못할 어린이날을 보냈습니다. 청와대에서 선물로 받아온 컵과 카드지갑은 사용하지 않고 잘 보관하기로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운동회와 어린이날 행사 참석을 위해서 애써주신 선생님들의 노고가 컸습니다. 진부령에 이사 와서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부족하고 불편한 부분을 말하고 잘못한 것을 되짚어 후회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고 좋은 것들을 말하자면 그것도 한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한 가지만 잊지 않으면 누운 곳이 천국이요 밟고 선 땅이 가나안입니다. 오늘 하루, 부족한 것은 주께 맡기고 이미 주신 것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이 땅에 내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