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내의 생일에 멀리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엄마 아빠를 다 잊은 것 아니냐는 엄마의 농에 아들은 부모와 자식에 관한 괴테의 한 격언을 전해줬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두 가지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뿌리와 날개다.”(Zwei Dinge sollen Kinder von ihren Eltern bekommen: Wurzeln und Flügel.) 저는 이 두 가지를 받았는데 어찌 부모님 생각을 안 하겠습니까,라며 아들은 능청을 떨었다.

아들을 통해 알게 된 괴테의 이 말은 특별히 한국적 상황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아마도 한국의 부모들은 뿌리를 주는 것에 있어서는 세계 일등국가일 것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사랑하는 자녀에게 어떻게든 단단한 근거를 마련해주기 위해 희생을 마다않고 전력을 다하는 것이 한국의 부모가 아니던가. 병적일 만큼 과열된 자녀교육의 예는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뿌리에 관해서는 이렇게나 대단한 한국적 열기가 날개와 관련해서는 놀랄 만큼 전무하다시피 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이든 어머니들이 성년을 훌쩍 넘긴 아들들의 사생활을 관찰하며 참견하는 프로그램이다. 아들들의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끊임없이 그 삶에 참견하는 모습을 보면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곤 한다. 자연 속에 사는 거의 모든 동물들은 성체가 되면 부모를 떠난다. 서양에서도 아이들은 성년이 되면 대개 부모를 떠난다. 그래서 서양의 아이들은 성년이 되면 법적으로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기대에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의 부모들은 유독 자녀들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일을 거의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아이들은 나이가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여전히 서른이 된 아이, 마흔이 된 아이, 쉰이 된 아이로 남는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막 10:6-8) 결혼식 때마다 듣는 이 유명한 말씀은 예수께서 창세기의 하나님 말씀(창 2:24)을 다시 인용하신 것이다. 성인이 된 남녀 두 사람의 결혼의 본질은 ‘부모를 떠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결혼을 시키는 부모의 마음은 남의 자식을 새 식구를 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을 내보내는 것이어야 한다. 성인이 되면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모는 아이들에게 달아줄 날개를 늘 마음에 품고 아이들을 대해야 마땅하다. 그들이 받아야 할 것은 뿌리만이 아니라 날개도 함께이기 때문이다. 날개를 달아주지 않는 부모는 자식을 불행하게 만들고 스스로도 불행하게 만든다. 애정이라는 이름하에 자식의 삶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자식의 판단과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저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부모란 자식을 실패하지 않도록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실패한 자식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언덕 같은 존재여야 한다. 우리가 기념하는 어린이날이란 이렇게 뿌리와 날개를 동시에 다짐하는 어른의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젖을 뗀 다음에 아이를 주님의 집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주님을 뵙게 하고 아이가 평생 그 곳에 머물러 있게 하려고 합니다.” (삼상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