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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선, 118년만에 아내를 만났다박여선-박에스더 부부 기념비 제막식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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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4월 24일 (화) 04:13:36
최종편집 : 2018년 05월 01일 (화) 04:52:17 [조회수 : 9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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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선-박에스더 부부 기념비 제막식

메릴랜드주 엘리콧시티 베다니 한인연합감리교회(박대성 목사)주최로 지난 4월 21일(토) 오후 3시 30분, 한국인 최초 여의사였던 박에스더와 그녀의 남편 박여선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1900년에 사망해 메릴랜드주 로레인파크 공동묘지에 쓸쓸히 홀로 묻힌 남편 박여선의 묘지에 아내 박에스더가 찾아간 격이라고 할까, 박에스더의 무덤을 찾을 길 없어 합장은 불가능했지만 하나의 돌에 부부를 기념하여 118년만에 만남의 의미를 갖게 한 제막식이었다.

기념비는 볼티모어 여자 의과 대학에 유학 온 아내 박에스더의 뒷바라지에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한 박여선의 묘소에 세워졌다.

1895년 1월. 감리교 여성 의료 선교사로 ‘평양의 어머니’로 불렸던 로제타 셔우드 홀과 함께 미국에 도착한 박여선-박에스더 부부. 뉴욕주 리버티에 정착한 박에스더(원래 이름 김점동)는 의대 진학을 위해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뉴욕의 어린이 병원에서 수간호사 보조로 활동했다. 에스더는 이후 1896년 가을 꿈에 그리던 볼티모어 여자 의과 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에 입학, 조선 최초의 여성으로 서양 의학을 공부했다.

봉건시대 아내의 유학길에 동반한 남편 박여선은 영어에 어려움을 느껴 공부를 포기하고 아내 박에스더의 공부를 뒷바라지하기로 작정하여 농장에서 일하며 아내의 학비를 마련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그러나 남편 박여선은 몸이 쇠약해져 4년 후인 1900년 4월 28일 아내를 남겨둔 채 폐결핵으로 볼티모어에서 숨졌다.

박여선은 볼티모어 근처 로레인 파크 공동묘지 한켠의 스미스 성을 가진 가족묘지에 묘비 하나를 남기고 이방인으로 쓸쓸히 묻혔다. 이 묘비는 오래도록 찾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을 이국땅에 묻은 박에스더는 같은 해 11월 미 감리회 여성 해외 선교부 파송으로 다시 조선으로 귀국한다. 그러나 조선 여성들에게 희망과 빛을 선물했던 에스더도 10년 후인 1910년, 남편과 같은 폐결핵으로 한국에서 숨졌다. 에스더의 죽음은 이후 이모처럼 따랐던 셔우드 홀에 의해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되는 계기가 되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불씨가 됐다.

이처럼 한국인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는 한국 백성들의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영혼까지 치유했던, 위대한 신앙인으로서 암흑기 조국과 여성사회를 위해 헌신한 빛난 별로 기억되고 있다.

 

   
 

 

 박여선-박에스더 부부, 118년 만에 볼티모어에서 재회

박대성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제막식은 기념비 설립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아무도 찾아오지도 돌보지도 않던 박여선의 무덤을 12년 전 처음 찾아갔을 때, 제가 서있는 이 자리에 서서 사랑하는 남편을 보내야 했을 106년 전의 박에스더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편이 죽은 그 해 학업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가며 다시는 못 찾아 올 남편의 무덤 앞에 서서 한 없이 눈물을 흘렸을 106년 전의 박에스더의 심정을 말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두 분을 기리는 기념비 설립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이곳을 방문했던, 익명의 감리교인들의 헌신으로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에야 두 분을 향한 마음의 빚을 조금 갚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어서 최초의 한국계 주지사 부인인 유미 호건 여사(메릴랜드주)와 워싱턴 총영사관의 김하늬 영사의 축사가 이어졌다. 유미 호건 여사는 “박에스더와 같은 분들의 헌신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고, 우리 다음세대들에게도 이분들의 헌신의 삶의 이야기가 전해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제막식에 박여선이 묻혀있는 묘지 땅의 소유자로서 기념비를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한 킷 스미스(Mrs. Keats Smith)부인이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스미스 부인은 “박여선은 저의 시할아버지께서 구입한 묘지 땅에 제일 처음으로 묻힌 사람입니다. 저도 저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 이곳에 와서, 박여선의 무덤을 봤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왜 박여선이 이곳에 묻혀있으며, 스미스 일가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4년 전 박대성 목사의 연락을 받아 박에스더에 대해 듣게 되었고, 이제는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언젠가 이곳에 묻히겠지만, 박여선과 박에스더의 기념비가 있는 이곳에 묻힌다는 것이 너무 영광스럽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한인여선교회 전국연합회 김명래 총무가 여선교회와 박에스더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 뒤 제막과 헌화의 시간을 가졌다. 한인여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원들이 기념비 제막을 축하하며 축가를 부르고 워싱톤 감리교회 이승우 목사의 축도로 제막식을 마쳤다.

이번 행사는 베다니 한인연합감리교회가 주최하고 한인여선교회 전국연합회, 수도권 감리교 목회자회, 하워드 한인회, 메릴랜드 한인회, 한국일보, 중앙일보가 후원했다.

묘비 뒷면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이 비문은 이덕주 교수(감신대)와 박대성 목사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한국인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는 한국 백성들의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영혼까지 치유했던 위대한 감리교인으로서 암흑기 조국과 여성사회를 위해 헌신한 빛난 별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의 남편 박여선은 아내 박에스더의 의과 대학 공부를 위해 미국까지 동행해서 자신을 희생했던 든든한 후원자였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의학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기 직전 별세하여 이곳 볼티모어에 묻혔다.

2017년 7월 이곳을 방문했던 한국의 감리교 순례자들이 이들의 위대하고 희생적이었던 삶을 기억하고자 정성과 뜻을 모아 이 묘비를 세운다.

2018년 4월

 

Esther Pak, the first female medical doctor of Korea, was a great Methodist who not only treated illnesses of the body but also cared for the souls of the Korean people through her sharing of the gospel. She is remembered as a bright star amidst dark and troubled times, who devoted her life to her homeland and notably to the women in Korea.

Yousan Pak, husband and dedicated supporter of Esther Pak, selflessly accompanied her to the United States for her medical studies. However, just before Esther could finish her studies, he passed away and was buried here in Baltimore.

In July of 2017, a few Korean Methodist pilgrims who visited this place put their hearts and sincerest intentions into setting up this memorial stone in remembrance of Esther Pak’s and Yousan Pak’s remarkable lives of offering and sacrifice.

April 2018

   
▲ 박여선-박에스더 부부

 

 

 

 사진 및 글 제공 - 베다니한인연합감리교회

   
   
▲ 박대성 목사
   
▲ 묘지 소유주 킷 스미스 부인(좌)과 호건 여사
   
▲ 축사하는 유미 호건 여사(메릴랜드 주지사 부인)
   

▲ 인사말 하는 킷 스미스

   
 
   
   
▲ 한인여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원들의 축가
   
▲ 제막

 

   
 

 

   
 

 

   
장소 : 로레인 파크 공동묘지 (Lorraine Park Cemetery & Mausoleum) / 주소 : 5608 Dogwood Rd. Baltimore, MD 21207

 

   
▲ 박여선의 묘비. 보통 박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원래 이름은 박여선(朴汝先)이다. 선교사들이 영어로 발음하기 쉽게, 박유산이라고 불렀고, 영문 이름도 그렇게 사용한 듯하다. 1897년 당시 주미공사(駐美公使)였던, 서광범이 작성해, 조선 정부에 보고한 주미내거안(駐美來去案)이라는 책을 보면, 그 당시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21명의 유학생 이름이 나온다. 그곳에 ‘박여선(朴汝先)과 그의 처’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00년 11월에 발행된 신학월보의 박에스더 환국 소식에도 박여선이라 기록되어 있다. ('감리교회를 세운 위대한 감리교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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