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가 이 꽃을 만드실 때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처녀치마를 만나고 스친 생각입니다. 저리 화려한 빛깔의 꽃술을 보십시오. 신비스런 보랏빛에다가 수술보다 길게 삐져나온 암술이 무척이나 유혹적이지 않습니까. 정승부인의 금박 물린 치마도 부럽지 않을 열두폭 치맛자락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묵은잎에서 꽃대가 올라오는데 꽃봉오리는 꽃대를 올리기 전부터 빼꼼하게 보입니다. 세상 밖이 너무나 궁금해 머리를 맞대고 내다봅니다. 수줍어서 일까요, 나무 밑에 숨어서 살고 있습니다. 물소리를 무척 좋아하나 봅니다. 꼭 계곡 옆에 자리를 잡고 있네요. 올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가운데서 만났습니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제 빛깔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양이 어찌나 안쓰럽던지요.

해마다 그 언덕배기 같은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누굴 그리 애타게 기다리는 걸까요. 치마폭 사이에 계절을 움켜쥐고 있는 건 그 기나긴 기다림 때문일 겁니다. 고운 소식이 묻어있는 향긋한 봄바람이 얼른 불기를 바래봅니다. 분명 쌓인 눈도 녹여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