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잡동사니에도 관심을 기울이면 생활의 발견을 만킥할 수 있음을 실증한 고성 거성국민학교 조공성 교사(50).

동해안 최북단인 화진포를 지나 통일전망대쪽으로 5분쯤 버스를 타고 가면 길 아래 아담하게 자리한 대진국민학교가 나타난다. 바닷가 마을, 전교생 400여명의 이 학교 교정엔 한여름밤엔 섬뜩하리만큼 아름다운 하얀 박꽃이 만개하고 가을엔 노랗게 여문 조롱박이 탐스럽다.

“아이들이 음악에 흥미를 갖도록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재료를 응용해 음정과 리듬을 익히게 해 보았습니다.”

그는 현재 거성국민학교에 근무하지만 전 근무지였던 대진국민학교에서 동료인 한승국교사와 조롱박으로 음악학습 지도를 시도했다. 박재배는 아직 대진국민학교가 원산지(?)라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 제일 처음 접하는 소리 만남이 탬버린이나 캐스터네츠로 굳어진다면 부드럽고 은은한 우리 가락에 길들여지기 보다 시끄럽고 요란한 금속성 소리에 적응케 될 우려가 있다고 한다.

“박씨 하나를 심으면 한 포기에 20-30개의 박이 열리고 꽃맺이에서 장과가 성숙되는 성장기간이 빨라 아이들의 관찰대상으로도 적당합니다. 교정에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자라는 과정에서 자연과 실과공부를 자연스레 겸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조교사는 파종부터 악기로 만드는 전과정을 아이들과 같이 함으로써 교사와 어린이의 사제지정이 돈독해짐을 자랑한다.

아이들의 눈길속에 여문 박은 꼭지를 떼고 알맞게 삶아 타고(톱으로 자름) 속을 파 낸 다음 겉껍질을 벗겨 그늘에 말려 사용한다. 용도에 따라 반을 쪼개거나 구멍을 뚫어 다양한 소리의 반향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게 된다.

예전엔 샘텃가나 술항아리 곁에서 표주박이 됐거나 초례청에서 신랑신부의 사랑을 묶는 합근박이 됐고 부엌에선 요긴한 세간살이가 됐던 바가지.

요즘엔 박공예 재료나 장식품으로 전락했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음악에 이용되기도 했었다.

삼국시대 생황이란 악기가 박에 구멍을 뚫어 음정이 다른 17개의 죽관을 꽃아 취구에 입김을 불어 넣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 외에 호로생이나 해금같은 악기의 진폭통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시골에서 정월대보름날에는 동네 아낙들이 모여 놀 때 물동이에 박을 엎어 놓고 손으로 두드려 장단을 맞추며 흥을 돋웠고 스님들이 불경을 외울 때 치던 목탁이기도 했다.

어느날 아이들이 조롱박 두쪽을 마주치며 노는 걸 본 순간 조교사는 소리의 결을 고를 수 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 날 이후 주변에서 눈에 띄는 조개껍질, 소라껍질, 대나무, 낚싯줄등 평범한 소재들을 놀이감에서 학습도구로 변화시키게 되었다.

조교사는 아이들에게 전혀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고 전통음악에의 길을 열어주며 한국의 얼과 멋을 심어 주는데 만족한다고 했다.

박을 심고 가꾸며 거두어 사용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신비성을 체험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워가는데 더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악기로서의 효능보다 보조악기 수준이지만 하나하나에 애정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만남이는 조롱박을 세로로 켜서 손잡이 쪽에 매듭을 엮어 박끼리 부딪쳐 소리를 내게 하며 붕붕이는 박의 꼭지부분에 구멍을 내어 입김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내는 것으로 박의 크기와 질에 따라 음정이 결정됨을 알게 한다. 싹싹이는 구멍낸 박속에 여러가지 물체(조개 조각, 자갈, 모래, 곡물등)를 넣어 흔들므로 다양한 음색을 알게 하며 이외에 달랑이, 딱딱이, 딩딩이, 칠석이, 얌전이등이 있는데 모두 부드럽고 요란하지 않아 실내수업에 적당하다고 한다.

산 고대(꼭대기) 운동장에 서면 한눈에 바다가 보이는 거성국민학교 특수반 담임 조공성교사. 고교졸업후 공무원 생활을 하다 69년 교직으로 직업을 바꿨다. 그는 6세 때 부모를 따라 원산에서 고성으로 온 뒤 지금까지 한번도 고성을 떠난적 없이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토박이다.

조교사는 맨발에 흰고무신이 큰 걸때에 어울리는 평소 차림이다. 요즘 보기 드문 흰고무신을 신는 이유가 그의 성품을 잘 나타내 준다.

처음 교직에 자리잡으면서 당시 생활이 어려운 마을 사람들, 학부모들과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소위 생활에 층을 느끼게 될까봐 스스로 맨발에 흰고무신을 신고 다가 갔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농투성이나 보잘것 없는 민초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훨씬 격의 없이 친해 질 수 있었다고 한다. 동화되어 산다는 일이 물론 겉차림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소탈한 성품이 자고나면 골목에서 만나는 이웃아저씨 같다. 만나는 마을분들과도 걸찍한 농담을 서슴없이 주고 받는다. 가식이나 체면을 앞세우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우직함과 의연함이 배 있다.

신고 보니 고무신은 경제적(1켤레 2,500원)이고 손질이 간편하고 발이 편해 자신의 신발로 정착됐다고 한다.

“흰고무신 신고 오지 말라는데도 없고 가지 못할 곳도 없지요.”

그럴싸 그러한지 그에겐 흰고무신이 꼭 어울린다. 아직 때묻지 않은 한 시대전 이웃을 만나는 기분이다.

그는 사생활공개를 꺼려했는데 독신으로 살다가 최근(4년전)에야 결혼을 했고 슬하에 자녀는 없다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진정한 스승이 없는 현실을 개탄하지만 그런 교육풍토를 만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조교사는 교직을 택한 동기를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강조한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만족이나 명분을 찾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무엇을 배우느냐 보다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갖게 되느냐는 바탕을 중시하는 소명이 있을 뿐입니다.”

5년전부터 특수반 담임을 맡고 있다(대진국민학교에서 3년, 거성국민학교에서 2년째). 그는 지진아들의 능력계발엔 따스한 인간애의 교감밖에는 없다고 털어 놓는다.

보디 랭귀지를 통해 정감을 나누며 관심을 보여 줄때 그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고 한다.

때때로 끼니를 걸르는 아이들이 눈에 띄어 슬그머니 도와준다며 이곳 교사들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당연시 한다.

아직도 결손가정의 불우한 아이들이 많이 있는게 우리 현실이다.

조교사는 생활을 통해 교육을 실현하는 산교육의 스승이 되고자 정열을 쏟고 있다.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 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의 힘만이 사회를 개선시킬 것이라 확신하면서.

현재 9명의 특수학급을 맡는 외에 특별활동시간에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창안한 악기로 합주를 지도하며, 동요작곡도 하고 있다. 아기손, 달맞이 꽃, 소쩍새, 우리집 등을 작곡해 창작동요제에 참가하기로 했으며 리듬지도자료 출품으로 도내 교육자료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역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한 때 고성 명파리에 원전건설이 거론되었음을 상기시키자 부당한 이유를 명료하게 지적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의미가 없습니다. 고성군의 인구밀도나 전력소모로 보아 비합리적인데도 건설을 거론한 것은 방사능유출 위험때문으로 풀이 됩니다.”

리듬지도자료에 동참했던 한승국교사도 화진포 생태계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그렇게 지역의 대소사를 함께 나누며 묵묵히 자기 몫의 생활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내일을 지탱하는 원동력임을 확인케 된다.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