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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을 외치는 형제들에게... !
강만원  |  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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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3월 16일 (금) 22:01:11
최종편집 : 2018년 04월 20일 (금) 02:59:02 [조회수 : 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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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을 외치는 형제들에게... !

 

오늘날 한국교회의 일그러진 참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며 깊은 탄식을 토해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교회관련 음울한 기사들을 보면서 의식이 있는 교인들은 마음속에서 치솟는 분노와 함께, 더 이상 어떻게 할 수조차 없다는 처절한 절망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 목사들의 추악한 성범죄, 부당세습, 재정비리, 폭행, 표절, 학력사칭, 사기, 도박, 불법건축...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만큼, 세상의 온갖 범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참람한 불의가 한국교회에 만연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위선자들이 운집한 악의 소굴’이라는 조롱과 비난에 반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렇듯 참혹한 한국교회의 몰골을 보면서 교회 밖의 사람들은 교인들을 향해 위선자, 어리석은 자, ‘병신도’라고 손가락질 하며 교회에 차갑게 등을 돌리는가 하면, 교회 안의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실망과 좌절을 추스르지 못한 채 줄지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교회에 안 나가는 교인, 이른바 ‘가나안 교인’이 점점 늘어 대략 200만 명에 달했다는데..., 일부 미래학자들은 지금 추세라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한국교회에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갈 데 없는 노인들만 덩그러니 남아 텅 빈 예배당에서 소일하는 ‘늙은 교회’로 움치려들다가 마침내 ‘죽은 교회’가 되리라는 그들의 날선 판단은 결코 헛말이 아니다.

물론 한국교회의 불의와 몰락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리 목사들의 악행에 분연히 맞서는 교인들이 곳곳에 있고, 현대교회의 ‘프로테스탄트들’이 도처에서 ‘교회개혁’을 외치며 저항의 깃발을 드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교회개혁, 이를테면 그리스도 신앙에 부합하는 교회개혁을 이루기 위해서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지금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방향과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인 차원, 그리고 이념적인 측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신자로서 계명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되는 ‘원칙과 규범’이 있기 때문이다.

타락한 목사들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는 것은 물론 성도로서 정당한 행동이다. 그러나 개혁성도의 비판이 단지 도덕적인 수준에 머문다면 교회개혁운동은 하릴없이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마땅히 실천해야 되는 일반적인 사회규범이지만, 정작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순종’이 아닐 수 있다.

다시 말해, 도덕적인 악행은 타락한 목사들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육적인 행동’일 뿐 아니라, 개혁을 외치며 그들의 악행을 비난하는 우리 역시 도덕적인 기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된다. ‘믿음과 순종’이라는 본질적·영적인 가치를 뒤로한 채, 단지 도덕의 잣대로 행동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이며 ‘행위구원’의 치명적인 오류가 아닌가!

예수께서 “네 눈의 들보를 뺀 다음에 다른 사람의 티끌을 빼라”고 하신 것은 좁은 의미의 도덕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외식하는 자에 대한 영적인 계명이다. 이를테면, 타락한 목사들의 악행을 비난하는 개혁성도의 치열한 외침이 “나는 도덕적으로 너희보다 우월하다”며 은연중에 ‘자기 의’를 과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예수께서 엄히 심판하신 ‘외식하는 자’의 거짓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없다. 예수께서는 마음에 증오를 품는 것이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는 간음한 자와 같다고 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행동의 죄뿐 아니라 마음의 죄까지 비판받아야 한다면, 어떤 교인도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없다. 이처럼 너나없이 모두가 죄인이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 – 그들이 목사이든 아니든 – 의 일탈된 행동을 섣불리 ‘정죄’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부정과 불의에, 특히 목사들의 참담한 타락과 부패에 다소곳이 침묵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비판하는 ‘대상’이 지금처럼 목사들의 도덕적인 일탈행동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교회개혁의 방향과 중심이 한국교회와 목사들의 타락과 부패를 사주하는 ‘근본 원인’에 초점을 맞춰야 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면, 목사들의 도덕적인 악행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악명 높은 ‘비리 목사들’도 처음에 목회할 때는 순수했고, 성실했으며, 겸손했다! ‘개혁성도’를 자처하는 우리가 만약 그들의 ‘우월한’ 자리에 있었다면, 다시 말해 돈과 권력, 명예가 주어지는 한국교회 담임목사의 ‘권좌’에 있었다면 우리 또한 그들의 추악한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된다.

한국교회를 타락의 수렁에 빠뜨린 목사들의 비리가 단지 그들의 인격적인 결함이나 도덕적인 흠결 때문에 발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교만과 탐욕을 부추기는 ‘목사권력’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된다. 요컨대, 밝히 드러난 ‘현상’으로서 목사의 부도덕한 행동을 정죄하기 전에, 타락의 근원인 ‘목사주의’, 이른바 반성경적인 ‘목사성직자주의’를 비판하며,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목사권력’에 맞서 저항해야 된다는 것이다.

일관되게 한국교회에서 악의 근원인 ‘목사성직자주의’를 타파해야 하며, ‘목사의존신앙’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우리는 도덕적 타락과 정치적 불의에 저항하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다른 세상’이기 전에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는 ‘지금 여기서’ 주어진 사명을 오롯이 지켜야 한다.

그럼에도 세상의 아름다운 도덕과 바른 정치이념 역시 성도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가치로되, 그 자체가 그리스도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목적은 이 세상의 아름다운 도덕과 사회정의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교회개혁을 향한 순전한 열정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다. 세습, 성범죄, 재정 비리처럼 가시적인 ‘현상’에 저항하는 교회개혁운동은 나름대로 구체적인 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분명 효과적이다. 그러나 가시적인 현상에 집중하면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개혁운동이 본질에서 점점 벗어나는 일탈과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된다.

교회개혁운동의 본질은 가시적인 현상의 배경이며 근원이 되는 반성경적인 권력, 이를테면 목사에게 집중된 제반권력이 한국교회를 타락과 부패의 수렁에 빠뜨리는 근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된다.

예컨대, 중세가톨릭의 부패가 교황을 비롯한 사제성직자주의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의 타락은 ‘목사성직자주의’라는 반성경적 '이단 신앙'에서 비롯되었으며, 목사를 숭배하는 변질된 종교주의적인 배경에서 교인들의 목사의존신앙이 태동된 것이다.

물론 타락한 목사권력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세습금지, 종교인과세처럼 교회제도를 개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지엽적인 제도개선으로는 목사권력에 속속들이 장악된 한국교회는 결코 개혁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교회개혁을 위해 한국교회의 타락을 부추기는 제도들을 개선·개혁하되, 가지에 지나지 않는 지엽적인 제도개선을 넘어 ‘목사권력’을 타파하는 근본적인 혁신에 집중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 개혁을 외치는 성도는 가시적인 현상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현행 목사제도의 근본적인 혁파에 몰두해야 된다. 목사는 모름지기 ‘말씀사역’에 전념케 하고, 목사에게 집중된 ‘교회권력’을 전면 타파하면서 성도가 교회의 지체로서 역할을 분담하는 혁명적인 변화가 전제될 때 비로소 진정한 교회개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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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239)
2018-03-18 07:12:12
.
성경에도 없는 목사는 직분이 아니라

직업이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교단은 목사들의 권익을 위한 노동조합에 불과합니다.

목사성직자주의는 목사를 무당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기-승-전 예수님입니다.

강만원 형제님의 좋은 글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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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
저자는 생각의 폭을 넓혀라 (121.152.65.215)
2018-03-29 20:31:25
글쓰신분 어디 목사님한테 사기당하셨나요??
가나안 성도들 대부분이 믿음없어서 교회 안다니는거 아닌가요?? 귀찮기도하고 부모손에 억지로 이끌리어 나왔는데 직장핑계 타지 핑계로 교회 안다니거나 교회니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복준다고 해서 한 두달 기도하고 헌금했더니만 복은 커녕 아무것도 안나오니 사기다 하며 안나오는분이 태반임 일부 물론 목 목사들 문제도 있겠죠 성경에소나오는 인물들과 목사가 매칭이 안되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자비량 목회하고 자신의 삶이 아닌 주님의 일에 힘썻는데 지금 목사들은 월급받고 차끌고 다니고 평신도들 삶보다 나아보이고 나는 죽어라 회사서 나가 돈버는데 목사는 설교도 뭐 어디 배낀것같고 맨날 정치이야기하고 그이야기가 그이야기같고 나도 할 수 있을것 같고 그런 생각 드니 점점 교회에 목사에 회의감 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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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화평 (122.35.176.192)
2018-03-24 02:48:08
목사들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지 말고 그것의 근본 원인인 교권주의를 개선하자고 하는 말은 교권주의가 도덕적 결함, 즉 행위와 직결되기 때문에 그 말이 그말입니다. 그리고 교권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성경적이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에 행위를 거론하지 않고 교권주의를 말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행위로부터 접근해서 교권주의에 이르는 것이 현실적인 일 아닐까요? 우리는 말을 위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은 행위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행위가 중요한 것이지요. 교권주의는 부도덕한 행위를 낳기 때문에 행위를 언급하는 일이 교권주의를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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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푸름이 (75.171.177.108)
2018-03-23 14:33:33
힘이 있어야 일도 하지. 그리고 힘이 있으면 당연히 견제하는 제도가 있어야 겠지. 당연한 말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듯이 하면서 한국 모든 목사와 교회를 자신이 다 알고 있는 듯 한마디로 간단히 정의해 버리는 용기에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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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
목사와 목자 (61.37.82.71)
2018-03-22 13:19:02
목자의 직분으로 예수님의 양을 돌보아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어보시고,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목사로 불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양을 치는 목자라 할 것입니다.
목사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목사님들이 잘못된 것이고,

교회 안에서 목자의 직분으로 예수님의 양을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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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지나가다 (1.221.228.109)
2018-03-28 10:16:30
그게 진짜 개혁인것 같습니다.
개혁은 다른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본질의 회복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것을 놓칩니다.

교회의 제도와 직제가 이유없이 나온것도 아닌데 그것이 문제인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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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3-17 13:19:52
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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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깨진돌 (112.172.203.5)
2018-03-17 14:50:03
왔다갔다 혼미한 꽤액본부에게
이 기사가 신성남님의 기사와
무엇이 그리 다른가?
권력화한 목사제도를 논하는 것과
목사권력을 논하는 것이
그리 다른 것이라서
하나는 <엄지 척!>
다른 하나는
<진정한 "재료" 떨어졌음~^^
계속 아이템 만 남발하고 있씀~ ^^>
이란 말이냐?

이 해괴한 중생아!
그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느냐?
변명해보거라.
입과 손을 묶어 놓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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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9
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3-22 22:14:52
같은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는듯해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적인 전개, 내면에 숨겨저있는 뉘앙스... 등 각자 느끼는점이 다르겠지~^^
그리고 저쪽~ 아자씨는 주구장창 아예 그 길로 나서서 아이템 모으기 바빠 보인다. 그런것들이 내눈에는 달라보이는데...
판단은 각자의 성향과 수준에 따르는 것이니, 내가 뭐라 해야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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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깨진돌 (112.172.203.5)
2018-03-23 12:03:30
각자가 아니라
비툴어진 네가 다르겠지...
그리고 뉘앙스까지 운운하는
그대가 함 써보면 어떤가?
개혁에 관하여
구역질이 아니라...

개혁본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상 차려 보시길...
그럴 능력이 안되면
개혁본부 명패는 집어던지고
해괴한 짓도 금하시면
진정한 개혁에 도움이 될듯.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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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3-25 12:07:06
독자들이 다~ 꿰뚫어 본듯...
너에게 관심도 없지 않는가~^^
고마 쫒아다녀~~ ㅋㅋㅋ 그 시간에 알바 하나라도 더 뛰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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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
깨는돌 (112.172.203.5)
2018-03-26 12:21:27
개혁본부라 하는 꽤액본부에게
그대는 알바로 생계를 꾸리는 중생인가?
나는 개혁본부를 차려놓고 헛소릴 지껄이는
그대를 지옥 끝이라도 쫓아갈 것이니...
기대하거라!
그리고 나는 너와는 달리
국가기술자격증으로 알바하여
충분히 잘 벌어먹고 있다.
너는 빌어먹겠지만...
그리하여
너의 헛소리에는
끝까지 회초릴 들테다!
기대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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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4
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3-26 21:27:36
푸하하하하 외롭지는 않네~ ㅋㅋㅋ 잘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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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깨는돌 (59.15.221.170)
2018-03-26 22:17:45
여전히
정신이 혼미한 중생이군
개혁본부라는 허명을 지어 놓고
어찌하여
허설을 나불대느뇨?
어떤이에게는 혹평,
다른이에게는 호평.
네 말 대로 하여
기껏해야 뉘앙스 차이인데 말이다.
이 넋나간 중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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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4
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3-26 22:56:54
우와~ 헐! ^^
긍께 같은 수준끼리 놀면 되쟎녀~~~
거기가서 놀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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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무릇돌 (112.172.203.5)
2018-03-17 10:49:16
교회개혁이
단지
<지엽적인 제도개선을 넘어
‘목사권력’을 타파하는 근본적인 혁신>에
이르러야 한다는 의견에
한마디 던집니다.

기독교와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단지 <목사권력>에 기인한다고 함은
<목사권력>을 존재하게 한,
교회의 전통의 문제이며,
교회의 전통은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기인하고 의존하므로
결론에 이르러는
교회와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의
근본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집니다.

교회는 교세를 얻어가면서
신앙과 신학을 정비하고
자신들의 존재(교회권력)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교회의 문서들 중에서
입맛에 맞는 것들을
지금 우리들이 성경이라 부르는
경전으로 정하였는데
그 경전을 왜곡하여 신앙을 구조화하였고
신학과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의당 원론적인 의미에서 종교라 함은
권력을 배제한 섬김과 봉사를
그 행위(실천)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권력 혹은 목사권력이 운위되는 것은
기독교와 교회가 심하게 제도화(타락)하였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좀 격하게 말하면
기독교는 그냥 우상숭배의 하나입니다.
경전(성경) 자체를 왜곡하여 만들어낸
교회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신앙과 신학 자체의
문제에다가
종교의 근본적인 이념,
즉 자기비움(겸비)에 의한 섬김과 봉사가 실종되고
권력(탐욕)만이 난무하는 현실은
기독교가 아예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종교라는 이름도
명패에 달기 어려운 사업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명(미션)을 잊고 사업에 열중하는
기독교와 교회는
교회권력, 목사권력이
폭력적으로 또 사악하게 실현(실연)되는
사업장입니다.

기독교와 교회가
단순무식한 <예수믿음>에만 의존한다면
목사권력-교회권력은 괴물이 되어
더욱 더 힘차게 영혼들을 사냥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와 교회는 이제
처음으로 되돌아가
역사적 예수를 만나고
그로부터 <예수따름>의 새로운 각성과 실천을
실연(실현)해내지 못한다면
그냥 하루바삐 인류역사에서 사라져야 할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목사권력? 교회권력?
단순무식한 예수믿음?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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