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끝이 났습니다. 2월의 강원도는 동계올림픽 분위기로 열기를 띠었습니다. 아이들은 본교와 분교가 함께 24일에 있은 봅슬레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 평창에 다녀왔습니다. 키가 작은 탓에 선수들의 머리만 보였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올림픽 관람이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지난주에 조카들이 진부령에 방문하여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강릉 올림픽파크에 다녀왔습니다. 다양한 경로로 동계올림픽 관람 기회가 있었던 저희 아이들과 달리 경기도와 충청도에 거주하고 있는 조카들은 동계올림픽의 분위기를 느낄 겨를이 없었기에 2천원의 입장권으로 즐기는 올림픽파크가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습니다. 입장권만 구매해서 들어간 올림픽파크에서 춤도 추고 스케이트도 타고 이것저것 관람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조카들에게 남편은 ‘멋쟁이 이모부’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지난주의 가장 큰 이슈는 동계올림픽이 아닌 마을탐방이었습니다. 올해에는 눈이 적게 와서 놀 거리가 없는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8살, 6살, 4명의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마을탐방을 간다며 마을로 올라갔습니다. 분교 운동장에서 세 시간을 논 후 집으로 돌아가자는 어른들의 요청을 마다하고 더 놀겠다고 한 네 명의 아이들은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장장 5시간을 놀았습니다. 어른들 없이 마을 회관 앞에서, 보건소 앞에서, 정보화마을 광장 앞에서, 폐쇄된 옛 건물 앞에서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냇가를 발견했고 얼음 놀이를 하기 위해 냇가로 내려갔습니다. “얼음이 너무 깨끗하고 예뻐서 내려갔어요.”라고 하는 것이 가장 큰 5학년 조카의 말입니다.

   냇가로 내려간 아이들은 얼음 위에서 놀기도 하고 냇가를 따라 내려오면서 얼음 기둥도 보고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을 만끽했습니다. 그런데 신나게 놀던 중 겨울 가뭄이 심해서 물이 깊지 않았지만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은 곳을 밟은 8살 조카가 차가운 물에 발이 젖었고, 역시 깨진 얼음을 밟으면서 신발이 젖고 넘어지며 손을 다친 6살 조카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5학년짜리 조카와 3학년인 저희 집 큰 아이는 동생들이 다치고 울기 시작하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려고 보니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냇가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턱이 너무 높아서 동생들이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5학년 조카와 3학년 큰아이가 함께 팔로 의자를 만들어서 동생들을 앉게 한 후 올려 보내기 위해서 노력했고 어렵사리 8살, 6살 동생들이 돌부리를 붙잡고 인도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생들이 올라가면서 돌이 빠지고 흙이 흘러내려 정작 본인들은 냇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5학년 조카는 인도에 서서 형과 누나를 보며 울먹이는 동생들에게 “너희들 자꾸 울면 다시는 엄마 못 만나.”하고 엄포를 놓고 한 자리에서 기다리게 한 후 동생들이 올라간 반대편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올라오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던 3학년 큰아이를 끌어올려 무사히 4명은 냇가에서 인도로 올라왔습니다.

   인도로 올라와서 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 보였고 아이들은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에서 저희 집까지는 2Km 떨어져 있으니 아이들 걸음으로 빨라도 30분은 걸어야 했습니다. 발이 시린 동생들이 울자 5학년 조카는 동생들의 양말을 벗기고 자기 신발을 신긴 후 자신이 동생의 젖은 신발을 신었습니다. 춥다고 우는 6살 동생에게는 잠바를 벗어주고 “울면 엄마 못 만나.”를 반복하며 울음을 달랬다고 합니다. 온 몸에 흙이 묻고 신발은 젖고 잠바도 동생에게 벗어준 5학년 조카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동생들을 달래며 걸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찾아 마을로 간 이모부(남편)를 만났습니다. 남편의 말로는 아이들의 몰골이 상거지였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긴장이 풀리면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특히 동생들을 타이르며 돌아온 5학년 큰조카가 엉엉 울었습니다. 외동인 5학년 조카는 “엄마, 오늘 동생체험을 정말 제대로 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만나서 즐겁게 놀던 것은 ‘동생놀이’였고 두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동생들을 달래고 돌보는 것은 ‘동생체험’이었습니다. 지친 아이들은 따듯한 방에서 몸을 녹이고 식사를 했습니다.

    큰 조카는 사건이 있은 당일 퇴근한 저에게 자신들의 모험담을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길을 다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까 내일 또 마을탐방을 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로 다음날 3시간의 마을탐방을 또 다녀왔습니다. 큰 조카는 올 겨울 진부령에서 마을탐방을 하며 위기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을 달래고 인솔하는 통솔법도 터득했습니다. 가장 어린 동생에게 마른 신발과 외투를 양보하는 따듯한 마음을 보임으로서 가장 큰 형이자 오빠로서의 위신도 세웠고 울지 않고 따라오면 엄마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던 약속도 지켰습니다.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난감한 상황을 함께 헤쳐 나왔습니다. 함께 오래도록 이야기 할 수 있는 추억이 생긴 것입니다. 누구도 자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싶지 않고, 누구도 자녀를 어려움에 내버려두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모험담을 들으면서 육신의 부모는 우리이지만 키우시고 돌보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려움이 닥쳐오지 말기만을 기도할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롭게 헤쳐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서로 협력하고 도우며 의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