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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기쁘게 할 것인가?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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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2월 09일 (금) 00:31:04
최종편집 : 2018년 02월 22일 (목) 00:26:04 [조회수 :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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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기쁘게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서슴지 않고 사람들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러한 대답의 근거로 갈라디아서 1장 10절을 든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문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 구절만을 떼어서 읽는 목사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는 상반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칭찬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일 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을 살펴보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할 일

갈라디아서 1장 10절 앞에서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과 다른 왜곡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왜곡된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고 그들이 그를 싫어한다 하더라도 참된 복음을 고수하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참된 예수님의 복음과 왜곡된 복음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그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바로 왜곡된 복음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결단코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예를 든다면, 내 이익을 위해서 이웃의 것을 빼앗는 이기적인 행동은 예수님의 복음과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직장에서 상사가 그런 일을 시킬 때 우리는 상사를 기쁘게 할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상사를 기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택해야 한다. 혹은 내 친구가 여자들과 놀아나자고 나를 유혹한다면, 나는 그 친구의 환심을 사려고 그와 함께 그런 짓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그 일을 거절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요점은 상사나 친구의 제의를 따르는 일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점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1장 전체의 문맥을 살피지 않고 10절만을 떼어내서 그 말대로 행동하려는 것은 성경 읽기의 기본을 외면한 행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오류를 범한다.


사람들을 기쁘게 해도 되는 일

우리는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고도 말한다. 어른도 칭찬을 좋아한다. 교회에서도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복음에 합당한 일을 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칭찬하고 기쁘게 해야 한다.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선한 행동을 격려하는 일이다. 그런데 칭찬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뿐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내 조카가 다니는 교회에서 연초에 1주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졌다. 그 조카는 한 시간 쯤 차를 몰고 가서 그 특별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기도회에 참여했다. 그것을 지켜본 목사가 마지막 새벽에 조카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 권사는 그 먼 곳에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조카를 칭찬하면서 가까이 살면서 불참한 교인들을 책망했다. 그런 칭찬은 조카를 더욱 분발시킬 뿐 아니라 그 칭찬을 통해서 열심을 내도록 교인들을 권면할 수 있다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 따라서 그런 칭찬은 아낄 필요가 없다.

여기서 요점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을 했을 때 칭찬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에 대한 칭찬은 많이 할수록 좋다. 그 칭찬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고 그의 열심을 인정해주는 일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칭찬에 인색할 이유가 전혀 없다.


사람을 칭찬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가?

교회에서 칭찬하기를 꺼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람을 칭찬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이 선한 일을 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로 인해서 가능한 것이었지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누가 선한 일을 했을 때에는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한 사람을 칭찬하면 그 사람이 그 일을 그의 능력으로 한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을 칭찬하면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인간 의지의 주체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예수님이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은 우리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기에게 당면하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그런 때 주님은 우리에게 그 십자가를 질 힘을 더해주시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은 아니다. 만약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신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명하실 필요가 없다. 우리가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해주시니까. 특히 본회퍼의 말대로 세상이 성숙해진 지금 인간 의지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가르침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을 우리가 칭찬하는 것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다. 동생이 형보다 잘 생겼다고 형에게 말하면, 그 형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들이 아버지보다 잘 생겼다고 아버지에게 말하면, 그 아버지가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마태복음 25장 에 나오는 왕의 비유에서 보잘 것 없는 자에게 물 한 그릇 준 것이 바로 왕에게 물을 대접한 것과 같다는 말씀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을 칭찬하는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린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찬양대의 찬양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찬양이어서는 안 된다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정성껏 준비한, 음악적으로 수준 높은 찬양대의 찬양은 교인들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한다. 교인들이 찬양을 듣고 감동하고 은혜를 받아서 아멘으로 화답할 때, 교인들뿐 아니라 하나님도 기뻐하고 영광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요한일서 4장 20절의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은 바로 사람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말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겠다.


성경에 언급된 칭찬의 예

성경에는 착한 일을 한 주님의 사람들을 칭찬한 예들이 많다. 먼저 바울은 고린도전서 16장에서 스데바나와 보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선행을 칭찬하면서 “그들이 나와 너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18)고 말하고 있다. 계시록의 저자도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2:19)라고 칭찬하고 있다.

예수님은 결코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어느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비싼 향유를 부었을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의 선행을 극찬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막 14:19)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고 그를 칭찬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알게 해주셨기 때문에 베드로가 그 고백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그에게 복이 있다고 칭찬하셨다. 그러고 나서 부가적으로 그에게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천국 열쇠를 약속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베드로가 그 고백을 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그 고백을 한 베드로를 칭찬하고 엄청난 선물을 주셨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베드로를 칭찬하신 데서 우리는 인간을 칭찬하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길을 인도하신다고 믿는다. 따라서 어느 사람이 선행을 했을 때는 그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동시에 예수님처럼 그 사람의 선행도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기뻐하는 것을 보시면서 흡족한 마음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마치면서

교회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찬양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성경의 문맥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거나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발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의지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는 데서 나온다.

선교 초기에 한국에서 복음을 전한 교회 지도자들은 믿음에 대한 열성은 대단했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 해석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문맥과는 맞지 않게 성경구절을 받아들이거나 역사·문화적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선배들의 가르침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아직도 성경을 곡해하거나 인간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목회자 양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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