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개학을 앞 둔 작은 아이가 몸이 좋지 않아서 학교에 갈 수가 없다며 저녁에 울었습니다. 코감기가 있었지만 열이 없었고 3일 동안 집에서 잘 쉬었으며 낮에는 총 쏘기 놀이를 잘 하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며 거실에 누워서 울고 있으니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아프지 않으니 학교는 가야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 앞에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는 의미를 찾지 못했는지 일어나 앉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학동안 일기를 한 번 밖에 안 썼는데 이** 선생님이 혼내면 어떡해요?”

   개학이라고 하니 작은 아이는 방학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것이 생각이 났고 당장 다음날 선생님을 만나기가 두려워 아프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학교에 가서 솔직하게 선생님께 “방학동안 노느라고 일기를 쓰기가 싫어서 못 썼어요.”라고 말씀드리고 혼을 내시면 “다음부터 잘 쓰겠다.”고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꾀병도 통하지 않고 엄마가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중재해 주기를 요청한 것도 거절당하자 작은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일기장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한 번 아니고 세 번 썼네.” 허더니 방학 마지막 날 일기를 썼습니다. 제목은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는 ‘코감기’로 했습니다. 일기를 쓴 후 마지막에 당구장 표시를 하고는 “수학 익힘 책과 받아쓰기는 다 했지만 일기는 많이 못 썼어요.”하고 선생님께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작은 아이는 밝은 얼굴로 학교에 갔습니다. 저녁에 퇴근해서 물어보니 선생님이 아직 일기장을 보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방학 내내 “일기 쓰자”하면 “내일 쓸게요”하고 미루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눈물을 훔치며 선생님의 감성에 호소하는 일기를 쓴 작은아이의 겨울방학은 끝이 났습니다. 부디 ‘쓰지 않은 일기’로 인해 알찬 것을 배우는 방학이었기를 바랍니다.

   주말에 서울 지역아동센터에서 함께 일하던 선생님 한 분과 초등학교 6학년 때 저와 처음 만났던 학생 한 명이 성인이 되어 함께 찾아왔습니다.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에서 물 회를 먹고 바닷가 찻집에서 차를 마셨습니다. 집에 가져갈 말린 오징어를 사고 싶다고 해서 손님들을 태우고 아야진 항구에 가서 손님들은 건조중인 생선을 사고 저도 주일 식사에 쓸 코다리를 샀습니다. 3만원에 15마리의 코다리를 사니 무척 풍성한 식사거리가 준비되었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와서 손질을 해보니 반 건조된 생선은 잘 잘리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만든 양념장도 어딘지 2%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두 손님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든 제 인생 첫 코다리찜이 주일 식사에 올랐고 다행히도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못 먹겠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은 요리는 간이 생명인데 간을 잘 맞추려면 자꾸 해봐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손님이 와도 날이 추워서 마땅히 갈 곳이 없고 주일에는 예배가 있어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면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됩니다. 아동센터 선생님은 해마다 한두 번 주말에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예배를 드리고 갑니다. 이 선생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지만 저희 집에 오면 두말할 것 없이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옵니다. 함께 온 학생은 이제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고 3월이면 대학에 입학합니다. 원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꿈이어서 중학생 때도 요리 관련 교육지원을 원했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꿈꾸는 삶을 향해 발을 내디딥니다. 한 때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어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을 소화시키기 위해 방황하던 청소년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찾아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 방문 시에는 자신이 주일식사 준비를 하겠다고 철썩 같이 약속을 했으니 저도 철석같이 믿고 기다려 보려고 합니다.

   학생은 자신은 어릴 때부터 눈이 작아서 웃으면 앞이 안 보였는데 중학생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은 웃어도 앞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깔깔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실제로 이 학생은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눈이 작습니다. 웃으면 눈이 실선 그림 같다며 웃고, 이제 미용을 위해 눈이 커져보이도록 수술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너무 예뻐지면 곤란한데”하고 말하자  작은아이가 “걱정마, 누나. 그런 일은 없어”라고 하여 또 웃었습니다. 멀리서 온 지인이 주고 간 웃음이 온 집안에 가득 찼습니다.

    찾아와 준 이들에게 감사하며 생각해보니 지나온 날들 저는 타인을 대함에 있어 허물과 실수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호불호가 있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환대한 사람들은 그 환대를 긍정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반성해 보자면 하나님은 저처럼 사람을 구분하여 받아들이지 않으셨고 누구라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좋아하는 사람을 선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선호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환대도 배우고 익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