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것은 이유나 근거를 찾는 거창한 질문을 단 한 순간에 정지시키고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끊임없이 이유를 찾는 머리의 모든 시도와 작동을 순식간에 철거해버리는 신비한 주문이기도 하다.

“왜 좋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로 이유를 묻는 이 질문에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숨겨져 있다. 만일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어떤 이유가 있다면 언젠가 파스칼이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 누군가를 그 자체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가 속성, 즉 그의 어떠함을 좋아하는 것이다. 잘생겨서, 착해서, 생각이 맞아서, 가족이라서... “왜 좋아?”라는 말에 이와 비슷한 그 어떤 대답이라도 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함정에 빠져든 셈이다. 나는 순수하게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떠함’을 좋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어떤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파스칼의 대답은 인간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 해?” 이 질문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의 목적을 묻는 질문을 뜻한다면 이것은 암묵적으로 다음의 사실을 의미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행동은 무언가 다른 것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가 아니라 다른 궁극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지금의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 어떤 일을 대할 때 자체의 목적으로 대할 것인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할 것인가에 대하여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향유’와 ‘사용’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향유란 그 자체 때문에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고, 사용이란 그 자체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다른 것에 무언가를 관계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모든 일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삶은 지치고 고달프며 재미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비슷하게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수많은 결심과 계획 앞에서 우리를 곤혹에 빠뜨리는 질문이기도 하다. 20세기 현대무용의 거장 마사 그레이엄은 1990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1894년생인 대무용가가 90세가 넘는 고령을 휠체어에 싣고 공항으로 들어오는 순간 수많은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무용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무용학도들을 위해 해줄 말은 없는가? 천재로부터 나오는 촌철살인의 가르침을 기대한 이 간절한 질문들에 노년의 그녀는 짧은 세 마디를 던지고 공항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Just do it.” “그냥 해.”

수천의 사람들을 보고 제자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들은 고민 끝에 최선의 해결책을 들고 예수께 나아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되겠습니다. 사람들을 해산시켜서 각자 먹을 것을 찾게 하십시오.”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 “그냥,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러자 주님을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은 다시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됩니다. 이 사람들 다 먹이려면 돈이...” 아마도 주님이 원하셨던 대답은 분명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의 머리는 지금도 항상 이유와 목적을 생산해내기 위해 분주하다. 그런데 모든 인간의 문제 역시 머리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걱정도 근심도 고민도 모두 머리로부터다. 왜 좋은가, 왜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하여 ‘그냥’이라는 대답은 때로 모든 방편과 수단을 없애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 문제를 순식간에 단순화시키는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자체로 목적인 것에는 찾아야 할 논리적 이유가 없고, 그 자체로 목적인 것에는 비로소 재미가 있다. 게다가 이 ‘그냥’은 유혹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도 탁월하다. 거창한 이유나 수단, 절차 없이 ‘그냥’ 발을 빼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둘러싼 유혹에서 도망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이유는 언제나 교만과 자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러니 새해에는 이 ‘그냥’과 좀 친해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머리를 멈추게 만드는 이 신비한 단어, 어쩌면 ‘그냥’은 심지어 믿음에 가까운 단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