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에는 어느 지방의 사경회에 특송을 하러 갔습니다. 거리가 있는지라 반주자와 동행하지 못하고 녹음 반주 파일을 가지고 갔습니다. 방송실을 담당하는 학생이 있다기에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한 여자 아이가 왔습니다. 긴 옷이 바닥에 끌릴 정도로 작은 아이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롱패딩이 중학생이라는 힌트를 줄 뿐, 영락없는 초등학생 모습의 중1 민서라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방송실 안에서의 모습은 오히려 제가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민서는 마치 숙련된 조종사처럼 컴퓨터와 음향기기를 능숙하게 다루었습니다. 예배당에 내려와 리허설을 하다가 2층 방송실을 바라보니 민서가 너무 작아서 방송실 창밖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서는 마이크로 요청하는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처리해 주었습니다.

 찬양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 방송실로 올라갔습니다. 민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민서의 머리에 손을 얹고 목사가 되고 처음으로 안수 기도라는 것을 해 보았습니다.

 그 일이 있었던 지난주는 성탄을 기다리는 마지막 주였습니다. 민서를 생각하며 밤늦게 집으로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에 저도 모르게 한 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성탄 노래 중에 제가 사랑하는 노래인 ‘In the bleak midwinter/어느 쓸쓸한 겨울에’입니다.

작곡자는 지난 번 소개해 드린 ‘성 바울 모음곡/St. Paul's Suite’을 작곡한 ‘구스타프 홀스트(Gustav Holst,1874–1934)이며 작사는 최근에 회자 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크리스티나 로젯티(Christina Georgina Rossetti, 1830-1894)입니다.

어느 쓸쓸한 겨울에,
서릿바람이 신음을 내고
땅은 강철처럼 
물은 돌처럼 얼었네
눈은 내려 눈 위에 또 눈이
그 위에 또 눈이 쌓였네
오래 전, 쓸쓸한 겨울에

하늘은 그 분을 붙들 수 없었고
땅도 버틸 수 없었네
그분이 오시면
하늘과 땅도 멀리 달아날거라네
하지만 그 쓸쓸한 겨울,
마구간에 머무르셨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천사들이 그곳에 모였다네
체루빔과 세라핌도 있었지만
그 분의 어머니만이 지극한 기쁨으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입맞춤으로 경배하였네

가난한 나는 그 분께 무얼 드려야 하나
내가 만일 목동이라면 한 마리 양을 드리겠네
내가 만일 동방박사라면 내 역할을 하련만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나의 이 마음뿐.

크리스티나 로젯티는 동시를 많이 썼습니다. 이 시의 화자도 어린아이 같아 보입니다. 민서가 매 주 쓸쓸한 방송실을 지키면서 불렀던 노래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우리들이 교회에서 촛불을 들고 불렀던 성탄 노래 같기도 합니다.

 그 날, 특송을 하고 강사님으로부터 한 곡을 더 요청 받았습니다. 옆에 있던 찬송가를 펴고 몇 장을 넘기니 찬송가 114장이 있었습니다. 3절 가사에 이르러 노래를 멈출 뻔 했습니다. 이 찬송의 가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었습니다.

주 예수 내 곁에 가까이 계셔 그 한없는 사랑 늘 베푸시고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 주사 주 품안에 안겨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아들이 말구유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어린 모습들, 아기 모습들, 세상에서 살아남고 있어 보이느라 애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내 안의 그 아이, 하염없이 엄마 품에만 안겨 있고 싶은 아가마음...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 주시기 위해 예수는 아기로, 말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음악듣기 : ‘In the Bleak Midwinter’
https://youtu.be/xRobryliBL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