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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시대의 성찬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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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2월 16일 (토) 23:46:16 [조회수 : 6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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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이면 마치 휴가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흔흔해집니다. 뭘 할까, 망설이지만 놀 줄 모르는 사람이라 시간이 남아도 익숙한 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큰 맘 먹고 가까운 산에 오를 때도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가끔일 뿐입니다. 며칠 전 푼푼한 시간을 어찌 쓸까 망설이며 습관처럼 서가를 일람하다가 <빵과 포도주>라는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이탈리아 작가 이냐치오 실로네가 1955년에 쓴 책이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빵과 포도주’는 성찬의 상징입니다.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사이프러스 나무 그늘 속에 정원이 나지막한 담장 위에 앉아 늙은 신부 돈 베네데토는 성무일과서를 읽고 있었다.” 이런 문장을 만나고 나면 괜히 동질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 고요한 장면을 깨뜨릴 어떤 사건에 대한 예감이 들곤 합니다. 큰 기대 없이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다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소설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휴일은 다 지나갔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냐치오 실로네는 파시스트 정권이 대중들을 그릇된 열정으로 몰아가는 시대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전체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세월 속에서 살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광풍을 저지하기 위해 무모한 모험에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 서늘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기독교 신앙이 세속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로마 인근의 작은 시골 마을 로카 데이 마르시와 피에트리세카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책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베네데토 신부와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학생들이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이미 성년에 이른 그들은 저마다의 근기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베네데토 신부는 칠십 대 중반에 이른 온유한 사람이지만, 불의한 권력에 굴종하거나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태도는 한결같았습니다. 그를 회유하기 위해 찾아온 보좌 신부 돈 안젤로는 현 정부와 교회의 정책에 승복한다는 내용의 간단한 선언문에 서명하면 추방은 면할 수 있다면서 “최악의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교회는 때로 나쁜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얼핏 현실적인 제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베네데토는 “덜 나쁜 악을 택한다는 이론은 정당이나 정부에겐 좋은 것이지만 교회에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전쟁을 단죄한다면 결국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자 “경애하는 돈 안젤로, 당신은 세례자 요한이 참수를 모면하기 위해 헤롯에게 협정을 제안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소? 당신은 십자가형을 모면하기 위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협정을 제안하는 예수를 상상할 수 있겠소?” 하고 되묻습니다(368). 돈 안젤로가 교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영혼들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베네데토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베네데토는 근본을 굳게 붙드는 사람입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기 원칙을 고수합니다. 현실 논리를 내세우는 이들에게는 고집불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에 굴종하지 않았기에 자유롭습니다. 비록 누이동생 마르타와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삶이 가련하지는 않습니다. 정호경 신부님은 장자 양생주 편에 나오는 제지현해帝之縣解라는 말을 ‘하나님께 매인 해방’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모순처럼 보이는 ‘매임‘과 ‘해방’이란 단어가 결합하여 신앙의 신비를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어떤 것

고등학교 시절 베네데토에게 작문과 라틴어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의사인 눈치오 사카는 현실에 적응하며 살지만 스승으로부터 받았던 가르침을 헌신짝처럼 버리지 못했기에 현실과 이상 사이의 소롯길에서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콘체티노 라구야는 권력에 맛들인 채 파시스트 정권의 수족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는 스승을 존중하지만, 현실을 돌아보지 않는 고집스러움에는 넌더리를 냅니다. 베네데토는 집권당의 깃발에 축복을 빌어달라는 콘체티노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는 겨우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권태롭고 지친 늙은 회의론자처럼“ 보이는 제자들의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난 자네들 중 많은 이들이 어떤 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자네들 하나하나를 관찰했던 것과 일치하는 어떤 개인적인 것이 있다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믿었다네. 그 뒤 자네들이 세상으로 나갔고, 지금 그 어떤 것은 대체 어디로 간 건가?”(38)


작가 스스로 ‘어떤 본질적인 것’ 혹은 ‘어떤 것‘을 볼드체로 적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합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고난과 슬픔이라 해도 말입니다. 특정하기 어렵지만 없다고도 말할 수 없기에 작가는 그것을 ‘어떤 것‘이라고 말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것을 잘 간직하며 사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간수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함석헌 선생은 ‘내 마음 다 팔았고나!’라는 시에서 전락의 쓰라림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마음 다 팔았고나!

다 팔아 먹었고나!
아버지가 집에서 나올 때
채곡채곡 넣어주시며
잃지 말고 닦아내어
님 보거든 드리라
일러주시던 그 마음
이 세상 길거리에서
다 팔아 먹었고나!”
(후략)


그 ‘어떤 것‘ 혹은 ‘마음’을 잃고도 잃은 줄 모르는 게 병이라면 병이겠습니다. 스승의 탄식을 천둥소리처럼 들으면 좋으련만 세상에 정신이 팔린 콘체티노 라구야는 오히려 스승을 힐난합니다.


“학교가 삶은 아닙니다, 돈 베네데토 선생님. 학교에서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스스로를 적응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을 결코 이룰 수가 없습니다.”(39)


콘체티노 라구야의 말 혹은 논리가 낯설지 않지요? 이런 가르침은 날마다 변형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양심의 괴로움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은 이런 논리로 무장한 채 자기 삶을 합리화합니다.


전락한 사람은 그들만이 아닙니다. 베네데토의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성직자가 된 사람이 돈 피치릴로입니다. 스승의 생일 파티에 늦게 나타난 변명을 하면서 그는 ‘우리 시대의 재난’이라는 글을 쓰다 왔다고 말합니다. 베네데토가 전쟁이나 실업에 대한 글이냐고 묻자, 그는 정색을 한 채 자기는 종교적인 문제만 다룬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동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얌전치 못하게 옷을 입는 방법“(42)이었습니다. 파시스트 정권의 폭압으로 사람들의 삶이 조각나고, 전쟁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 교회는 겨우 사람들의 옷차림에만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그게 종교 본연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피치릴로는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교구의 고해자 수가 늘어나고, 영성체를 한 신자들의 수가 늘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본과 말의 전도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의 세상 통치의 기본 원리인 정의와 공의가 무너질 때, 인애와 긍휼이 가뭇없이 스러질 때, 교회가 깊은 침묵에 잠긴다면, 아니 자기만족에 겨워 지낸다면, 그 교회를 과연 그리스도의 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피치릴로는 어느 새 체제에 길들여지고 말았습니다. 그도 또한 ‘어떤 것’을 잃어버린 것이겠지요.

 

신앙을 잃은 사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베네데토의 제자 가운데 스승의 지향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피에트로 스피나입니다. 그는 학생 시설에 마지막으로 제출했던 작문 과제에서 “나는 성자가 되고 싶다. 나는 이러이러한 처지들과 지위와 물질적 편익에 따라 살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 내가 보기에 정당하고 진실해 보이는 것을 위해 투쟁하고 싶다“(47)고 말했습니다. 젊은 날의 결기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런 이상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현실 교회에 깊이 절망한 그는 믿음의 길을 떠나고 맙니다. 교회의 어떤 면이 그를 절망시켰을까요?


“그가 교회를 버린 것은 교리와 혹은 성사의 효험을 더 이상 못 믿어서가 아니라, 교회가 교회 자신이 마저 싸워야 할 부패하고 사악하고 잔인한 사회 바로 그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157)


교회가 억압의 기관으로, 권력의 화신으로, 사악한 자들의 행위를 추인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지요. 예민한 젊은이에게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추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를 떠나 사회주의 그룹, 유물론적 그룹에 가담합니다. 한마디로 유럽의 지식인들을 매혹시켰던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지요. 그 결과 그의 삶은 체포, 추방, 도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관계기관이 주목하는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도피생활로 인해 얻은 병 때문에 고향 가까운 마을에 숨어들어 잠시 숨을 고르려 합니다. 그때 의사 친구인 눈치오가 그의 도피를 도와줍니다. 눈치오는 피에트로 스피나에게 이제는 허황된 이상을 따라 살지 말고 현실에 닻을 내리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 아래서 살아야 하고, 그 조건이 자신이 택하고자 하는 것과 대립할 때는 그 조건들이 바뀌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피에트로는 자유란 선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면서 독재 체제 하에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정신으로 생각하고 자기 정신을 타락시키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자는 자유롭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자는 자유롭네.”(69)


예전에 독재체제 하에서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 가사처럼 그는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눈치오는 피에트로 스피나에게 수도복을 입혀 변장을 하게 합니다. 돈 파올로 스파다라는 경건한 가명까지 지어줍니다. 그때부터 피에트로 스피나는 요양을 위해 궁벽진 시골에 내려온 돈 파올로 스파다 신부로 살아갑니다. 그는 포사 데이 마르시 마을과 피에트리세카의 가난한 농민들 사이에 살면서 그들의 곤고한 삶에 눈길을 보냅니다. 신앙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마다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적당히 미신에 매어 있고, 또 가난을 운명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가엾기만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무서워한다우.” 마탈레나가 말했다. “집을 하나 지으면 지진이 따라오고, 건강하다가도 병들고, 토지가 좀 생기면 홍수가 따라오고, 시샘이 곳곳에 퍼져 있다우.”(188)


불평과 체념, 두려움이 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궁벽진 마을에 찾아온 신부에게 사람들은 고해를 하고 싶어합니다. 값싼 은총이라도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돈 파올로 스파다는 자기 교구가 아니라는 핑계로 그런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신부 행세를 하는 순간 사람들이 몰려들 거고, 그러면 그의 존재가 드러날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사제 노릇은 거절하지만 그는 은근히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려 합니다. 재산에 대한 탐욕에 물들지 않은 가난한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별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온세상의 변혁보다 그들에게 더 시급한 것은 한 뙈기에 지나지 않는 땅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돈 파울로 스파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나라, 그래서 자자손손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꿈을 심어주려 하지만 그들에게 그 꿈은 아름다우나 서글픈 꿈일 뿐입니다. 세상이 쓴 물을 다 맛본 샤탑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늑대와 양이 한 목장에서 함께 풀을 뜯고,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더 이상 잡아먹지 않게 되고, 근사한 이야기지요. 가끔씩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그 얘기를 해요.“(225)

 


‘아니다’라고 외치는 한 사람

대체 왜 가난한 농민들은 자기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는 정부나 권력자들에 대한 투덜거리면서도 전복을 꿈꾸지 않는 것일까요? 강자들에 대한 합일이라는 해묵은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도 가끔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왜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정당을 외면하고, 오히려 부자들 편에 확고히 서 있는 정당을 지지하는지 참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돈 파올로는 이탈리아 민중들이 “고통을 참고 체념으로 견디는 데 실로 무한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립과 무지와 불신, 그리고 집안 대 집안 간의 비생산적인 적의 속에서 사는 데 길들여져 온 사람들”(315)이라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이유도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개혁의 타락을 지속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개혁이나 혁명이니 하는 말에 염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열혈청년 폼페오가 동료들에게 하는 말 속에 그런 허탈함이 담겨 있습니다.


“나라를 멸망으로부터 구해 내고 개혁의 길을 열어 놓은 사람이 있었지요. 그 사람의 말은 명확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권좌에 올랐을 때, 우린 그의 행동이 그의 말과 반대되는 것에 놀랐습니다.“(260-261)


혁명을 꿈꿨던 동지 울리바의 말도 같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모든 새로운 이념들이 언제나 종국에 가선 움직일 수 없는 퇴행적인 강박관념으로 끝나게 되지.”(293) 이런 경험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역사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민중들의 허무주의야말로 파시스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허무주의자들처럼 조작하기 좋은 이들이 또 있겠습니까? 역사상의 독재자들이 부끄러운 일을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전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몸부림쳐 보아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 그렇다고 하여 세상사에 초연하게 지내지는 않습니다. 집단적 광기의 바람이 몰려오면 그들은 냉철한 판단이나 성찰을 하기보다는 몸으로 먼저 반응합니다. 그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을 가져올 거라는 전망과 결합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솔리니로 대표되는 파시스트 정권은 에티오피아에 선전 포고를 하고는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동원합니다. 체제를 선전하는 포스터가 곳곳에 나붙고, 각종 선동 문구가 적힌 전단지가 배포되고, 전속 웅변가들이 거리에서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수많은 성직자들이 사람들을 집단 마비 상태에 몰아넣었습니다. 적당히 나른하던 그 시골 마을에도 애국주의 열풍이 불어옵니다. 건장한 아들들을 둔 집들은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아들이 없는 집은 괜히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소작농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실업자들도 비옥한 농토를 갖게 될 것이라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힙니다. 속고 살아왔으면서도 그들은 다시 한 번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허망한 열정의 끝은 혐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에서 깨어 있는 사람은 돈 파올로 한 사람뿐입니다. 그는 역사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언자를 닮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여 식당에서 가져온 목탄으로 곳곳에 선동 구호를 적습니다. “전쟁을 중단하라!”, “자유 만세!”, “평화 만세!” 그 비애국적인 선동 구호를 보고 사람들은 격렬한 증오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돈 파올로를 진짜 신부로 믿고 있는 마을 처녀 비앙키나는 그 구호를 적은 사람이 돈 파올로임을 눈치채고 두려워합니다. 그때 돈 파올로는 참 위험한 말을 합니다.


“독재란 만장일치에 기초를 두고 있는 거야. 한 사람만 아니다라고 말하면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 버리지.”(354)

“그 어마어마하고 완강한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데는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 아무것도 아닌 단 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족해.”(355)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신앙에 근거한 철저한 낙관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아니다’가 강고한 질서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1:28)라고 말한 바울의 고백이 떠오른 것은 과민한 반응일까요? 가끔 말의 무력함을 절감하며 절망의 심연으로 끌려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늘을 가리켜도 사람들이 땅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을 때, 자본주의의 거대한 파도 소리가 참을 외치는 소리를 압도할 때 허탈감이 찾아듭니다.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의 입에서 터져 나온 ‘아니다’라는 외침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는다고 정말 믿어도 좋을까요?

 

신은 어디 계신가?

베네데토 신부는 성의를 벗고 비밀리에 자기를 찾아온 피에트로 스피나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피에트로는 자기는 오래 전에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베네데토는 그런 피에트로를 꾸짖지 않습니다. 그가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신앙은 어쩌면 참 신앙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신부인 자신도 현실의 어둠이 지극할 때면 신에 대한 의심에 사로잡힌다고 고백합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은 왜 우리를 버리는가? 이런 질문 앞에 설 때마다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그런데 회의의 격랑을 겪어낸 베네데토는 제자를 새로운 인식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학살을 알리는 확성기와 타종 소리는 분명 신이 아니었네. 우리가 날마다 신문에서 읽는 에티오피아의 마을에 대한 포격과 폭격은 물론 신이 아냐. 하지만 적의로 찬 동네의 어떤 가련한 사람 하나가 한밤중에 일어나 숯덩이나 페인트로 동네 담벼락에 ‘전쟁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쓴다면, 신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사람 뒤에 임재하고 계시네. 누군들 위태한 상황에 대한 그 사람의 분노와, 적이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 속에서 신의 빛을 발견하지 못하겠나?”(381)


신의 빛은 저 화려하고 장엄한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속절없이 유린되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분노 속에서 드러나는 법이라는 말이겠지요? 신은 어쩌면 위험을 무릅쓰고 악을 악으로 폭로하고, 약자들을 품어 안으려는 사람들의 등 뒤에서 가만히 그들을 지탱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도화된 종교는 일쑤 악을 추상적 관념으로 대치하곤 합니다. 현실의 악을 악으로 폭로하는 일은 위험하기에, 불의한 현실을 ‘마귀‘의 역사라는 추상 속에 가두곤 합니다. 보는 자인 피에트로 스피나는 깊이 애정을 느끼던 크리스티나를 염두에 두고 쓴 메모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위에 창궐하고 있는 악을 뚜렷이 보고 있다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내세나 기다리는 것으로 위안하고 있을 수만은 없소. 대항해서 싸워야 할 악은, 마귀라고 불리는 그 서글픈 추상적 관념이 아니오. 악이란 수백만의 인간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이오. 우리에게도 역시 직접적인 책임이 있소.”(435)

 

아픔의 성사

신앙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참다운 신앙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은 바로 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삼이사들이 얽혀 살아가는 생의 현장에서 이웃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이 아닐까요?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초월의 세계를 암시하거나 가리키는 모든 행위는 일종의 성사聖事입니다. 세상에는 성사의 도구가 된 이들이 있습니다.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다가 붙잡혀 고문 끝에 죽은 무리카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인 무리카 노인은 비통한 감정을 애써 감추며 조문하러 온 사람들에게 술과 빵을 권하며 담담하게 말합니다.


“나를 도와, 이 빵을 만든 곡식의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탈곡을 하고 빻은 건 바로 그 앱니다. 어서 드십시오. 이건 그 아이의 빵이에요.”

“나를 도와, 포도나무의 가지를 치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따들여서 이 포도주를 빚은 건 바로 그 앱니다. 드십시오. 이게 그 아이의 포도주요.”(442)

 


성례전을 집행하는 성직자들이 낭독하는 전례문의 문학적 변형입니다. 무리카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를 기억하는 행위인 동시에, 그가 지향했던 세계를 긍정하는 일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피에트로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으깨진 곡식과 포도가 사람들을 살린다는 취지의 말을 합니다.


“빵은 많은 이삭의 낱알들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가 됨을 의미합니다. 포도주는 많은 포도알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그것 역시 하나가 됨을 의미합니다. 비슷한 것들이 똑같이 모여 뭉치는 하나의 결합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진실과 형제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함께 어울려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지요.”(443)


작가는 일상의 음식인 빵과 포도주가 성찬의 빵과 포도주로 변하는 것은 타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을 거칠 때, 진실과 형제애를 가슴에 품을 때라고 말합니다. 으깨지고 짓밟힌 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부둥켜안을 때 거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게 바로 성찬의 신비 아니겠습니까? 소설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눈 덮인 산으로 도망치는 피에트로를 돌보기 위해 거친 산길을 달려가는 크리스티나의 죽음을 암시하며 끝납니다. 이냐치오 실로네의 글을 읽으면서 이미 상투어로 변해버려 더 이상 사람들의 존재를 타격하지 않는 종교적 언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작동하지 않는 신앙이란 허위의식이거나 자기기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앙의 언어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의 깊이를 싱싱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합니다. 작가들은 우리를 그런 도전 앞에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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